어떤 꼬마가, 체리를 파는 손수레 앞에서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측은히 여긴 아저씨는 마음껏 한 주먹 집어가라고 했지만 꼬마는 미적댈 뿐 말이 없었다. 답답한 체리장사는, 말 못하는 아이로 여기고 양손에 하나 가득 집어 주었다. 꼬마는 냉큼 옷자락을 벌리며 꾸뻑 절하고 아주 명랑한 목소리로,
“아저씨, 고맙습니다!”
하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어 물끄러미 처다 보던 체리장사가 꼬마에게 물었다.
“꼬마야, 아저씨가 가져가라고 할 때는 왜 안 집었니?”
꼬마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아저씨 의 손이 더 크잖아요?”
꼬마의 욕심인지, 고마운 마음인지 알쏭달쏭하다. 한 해의 정점에 이르면 이런저런 일로 진정 고마운 분들이 유난히 생각난다. 그 고마운 분들이 적지 않지만, 잊을 수 없는 몇 분들이 떠오르곤 한다.
1968년 2월에 중학교를 졸업했다. 극도로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가 없었다. 재수하라는 부친의 말씀을 어기고 무주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그 당시 등록금은 5,000원이었다. 그 5천원 때문에 부모 앞에서 떼를 쓰며 징징거리는데, 신작로 버스정류소 소장이며 큰 가게를 하는 집사님이 오셨다. 우리 이야기를 듣자마자 걱정 말고 가게로 오라는 게 아닌가? 집사님의 은혜로 고등학교를 잘 마쳤다. 언젠가는 집사님의 자녀에게 등록금을 지불해서 은혜를 갚겠다고 했지만, 고마운 마음뿐이지 여지껏 빚을 지고 산다. 이제는 ‘사랑의 빚’이라는 합리성에 빠져 있다.
총신대학교에 진학했다. 2학년까지는 근근이 학비를 조달했으나 3학년이 문제였다.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없어 고민이 컸다. 밤 시간과 새벽은 물론이요, 금식기도까지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학비(32만원) 때문에 전전긍긍하다가 1,2차 등록기간을 놓쳤다. 내일 3차 등록일이 지나면 끝난다. 낑낑거리다가 하늘에 맡기기로 했다. 그래도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촌놈이 서울에서 공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생각이었다. 그 순간 가난의 슬픔이 밀려오면서 눈물이 뺨을 적셨다. 총신대 정문에서 오른쪽은 숭실대로 가는 길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게 웬일인가? 힘없이 걷는데 누가 날 불렀다. 입학하고 외로울 때, 무주촌놈인 나를 퍽 챙겨주었던 제일 친한 친구였다. 한 학기를 마치더니 등록금을 벌어온다며 사우디아라비아로 훌쩍 떠난 친구였다. 그가 내 앞에 나타나 깜짝 놀랐다. 만나자마자 등록금부터 물었다. 내일이 마지막 등록일이라고 하자, 아침 일찍 돈을 가지고 온다는 게 아닌가? 내게서 일어난 기적적인 일이었다.
전주에서 은혜림교회를 섬기던 때였다. 임실에서 돼지 3,000여 마리를 키우는 장로님이 계셨다. 나는 양쪽 어금니가 일찍 망가져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여산 출신이면서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논산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원장이 있다. 목회자가족에게는 50% 혜택을 준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요, 멋진 의사다. 그렇다 해도 임플란트 비용 300만원은, 우리로서는 너무 비쌌다. 어쩌다 장로님께 그런 얘기를 했더니 선뜻 주시는 게 아닌가? 음식을 씹을 때마다 장로님과 논산치과원장의 고마움에 감사하곤 한다.
또 한 분은 최근의 일이다. 목회자의 아내로서 83세이신 사모님이다. 지금도 책 읽기를 좋아하시기에 내 수필집 “단, 하루만이라도”를 드렸다. 그걸 읽고 또 읽는데 감동이 북받쳤다며 그렇게 좋아하셨다. ‘나에게 눈물과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 책’이라며 어떤 책도 두 번 이상 읽은 적이 없는데, 세 번째 읽고 있다는 게 아닌가? ‘2집은 언제 나올 거냐?’며, 책값일부(100만원)를 성탄절 선물로 주셨다. 얼마나 고마운지 감개무량해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이 밖에도 알게 모르게 고마운 분들이 참 많다. 책으로 펴낸다 해도 다 기록할 수 없다. 아침예배시마다 고마운 분들에게 평강을 기도한다. 인생길에서 도움을 받거나 은혜를 입은 일이 많은데, 마음에 차오르는 흐뭇하고 벅찬 감정을 어찌 잊겠는가? 오늘도 그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한다. 욕심으로 얻어낸 고마움이 아니라,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운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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