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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정근식
작성일 2019-07-29 (월) 17:59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88      
예불을 드리며
예불을 드리며 / 정근식







 대웅전을 들어서는데 벌 한 마리가 따라 들어왔다. 은은한 독경소리에 방해가 될 것 같아 집으로 가라고 손을 휘저었더니 아내의 머리 위를 한 바퀴 돌고는 법당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내와 함께 부처님에게 합장을 했다.  

직장생활로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했다. 전세만 살았다. 아내는 평소 작은 평수라도 좋으니 내 집에서 살아 봤으면 하는 노래를 불렀다. 얼마 전 8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큰애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어 아파트를 구입하기로 했다.

 아파트값이 이사를 가기 전보다 두 배 이상 올랐다.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며칠을 끙끙대던 아내가 아파트를 살 계획을 세웠다며 메모지를 내밀었다. 기존 전세금에 중간정산 퇴직금과 은행대출을 포함한 금액이었다. 아내가 계산한 금액은 구입하고자 하는 아파트 가격과 대충 비슷했다. 은행이자는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아르바이트를 해서 해결하겠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급매물이 있어 원하는 가격에 계약을 했다. 그런데 계획한 자금 중에서 퇴직금 중간정산을 받지 못해 삼천만원이 부족했다. 아파트는 최대로 대출을 받아 추가대출을 할 수 없었다. 제2금융권을 찾았으나 허사였다. 잔금을 지불해야 할 날은 코앞이라 답답해하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빌려 주시겠다는 것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 자존심을 세울 여유가 없었다. 어머니는 하얀 봉투에 수표를 넣어 주셨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왠지 미안했다.

다음날, 집으로 들어서는데 가져온 아내가 돈을 달라고 했다. 와이셔츠 주머니에 있다고 하자 아내는 세탁기로 뛰어갔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을 시간도 없었다. 빨래는 온통 흰 종이가루로 덮여져 있었다. 세탁물은 깨끗하게 탈수까지 되어 있었다. 아내는 평소 빨래를 할 때 호주머니를 뒤지지 않는 버릇이 있다.

아내의 눈은 젖어 있었고, 엉엉 소리도 내었다. 놀란 애들이 방안에서 모두 뛰어 나왔다. 심각한 사태를 파악한 애들은 소리 없이 자기 방으로 숨어 버렸다. 한 달에 아르바이트로 사오십만원을 벌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삼천만원이면 도대체 몇 년을 벌어야 하는 금액인가? 그 동안의 이자는 어떻게 하고.  답답했다. 아내는 빨래 사이를 뒤적거렸지만 수표는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잔금을 주기로 약속한 날이다.  

인터넷을 뒤졌다. '수표분실'을 치니 보상받는 절차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법원에 공시 후 4개월 뒤에 법원에서 판결을 받아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더구나 단돈 만원도 아까운데 비용이 30%라고 했다.

그렇다고 저렇게 울고 있는 아내에게 핀잔을 줄 수도 없는 일.  나는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자 지쳤는지 아내의 울음소리는 작아졌다.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놓고 종이가룻를 모으기 시작했다. 호주머니 하나하나를 뒤져가며 휴지조각까지 모두 모으고 있었다. 종이가루를 모아 어쩔려고?


얼마쯤 지났을까.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세수를 했는지 얼굴도 말끔했다. 아내는 빨래를 베란다로 가져가 훌훌 털기 시작했다. 바닥에 모아놓은 종잇가루도 미련이 없다는 듯 둘둘 말아 휴지통에 던졌다. 표정도 부드러워졌다.

봉투는 가루가 되었지만 수표는 돌돌 말려 양말속에 숨어 있었다. 세탁기 안에서 회오리 물결과 처절하게 싸움한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지만, 찢어진 부분 하나 없이 색깔만 바랬을 뿐 누가 보기에도 수표였다. 특히 금액 부분은 유리테이프로 붙여져 있어 선명하게 보였다.

다음날 출근을 하자마자 은행으로 달려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수표를 내밀었다. 아가씨가 씨익 웃는다.

"마음 고생 많으셨죠? 가끔 세탁기에 돌린 수표가 들어옵니다. 수표가 돈보다 더 질겨요."

하면서 입금한 통장을 내밀었다. 그제서야 마음의 평화가 찾아 들었다.

합장을 하고 일어서는데 같이 들어온 벌이 방석 위에서 나처럼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아직 준비된 예불이 끝나지 않았는지 내가 일어선 뒤에도 한참을 엎드려 있었다. 저 벌도 나만큼 많은 번민을 가지고 있나 보다. 예불을 마친 벌이 부처님의 머리 위로 다시 날아올랐다. 부처님의 몸에서 빛나는 황금빛에 비친 벌의 모습이 부처님의 모습처럼 인자하고 거룩하게 보였다. ‘열심히 일하는 꿀벌과 퉁퉁 눈이 부어 오른 진실한 아내여. 당신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나는 다시 합장을 하고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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