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친구 B로부터 바보소리를 세 번이나 들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그 친구한테 미소를 보냈다. 누군가는“바보소리를 들으면 성공한 거야!” 라고 했었다.
21세기 IT산업의 최선봉이자 애플사의 최고 경영자인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대학 졸업축사에서“계속 바보스러워라!”라고 역설했다. 2009년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의 자화상에 붙여진 이름“바보야”를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나는 진짜 바보인지도 모른다. 나 자신도 혼란스럽다.
나는 농사짓기가 재미있다. 농사를 짓는 동안에는 인내심도 기를 수 있다. 농사는 주인이 빨리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수확하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흘러야 된다. 때가 되어야 싹은 올라오고, 줄기가 자라고, 알이 굵어지며 제대로 영근다. 그리고 병충해 방제도 제대로 해야 한다. 즉, 내 중심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을 채워야만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복잡한 일들이 내 머리를 휘저을 때도 나는 밭에만 가면, 머리가 개운해진다. 그곳에서 생명이 태어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소품종 다량이 아니라, 다품종 소량체제를 고집하여 고추, 생강, 마늘, 양파, 돼지감자, 가지, 고구마, 깻잎, 초석잠, 옥수수, 감자, 배추, 무우 등 20여 종의 작물들을 소량으로 조금씩 심는다. 700여 평 중에서 100평 정도는 주차장과 주방기구를 갖춘 방과 부엌, 3동의 창고로 만들었으며, 나머지 600여 평의 밭에 온갖 농작물들을 심었다.
밭농사의 제일 골치덩어리는 비온 뒤의 바랭이 풀들이다. 바랭이 풀은 비집고 나올 틈만 있으면 어디든 뚫고 나온다. 증식의 여왕처럼 이쪽에서 시작하여 저쪽까지 뻗어나가는 번식력은 놀랄 만하다. 이 잡초들은 하룻밤 지나면 정성스럽게 가꾸는 농작물을 마구잡이로 침범하여 쑥대밭으로 만든다. 이런 현상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 법칙을 생각나게 한다.
B는 이런 풀들을 제초제로 깨끗이 해결했다고 자랑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절대 제초제를 쓰지 않는다. 하루 시간을 내어 밭 한쪽부터 차근차근 풀을 하나 하나 손으로 직접 뽑기 시작한다. 밭두렁 잡초들을 다 뽑으려면 꼬박 이틀은 걸린다. 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B는 항상 이런 나를 보고 “넌 바보야, 요사이 너같이 농사짓는 사람이 어디 있니?” 하면서 조롱하기 일쑤다. 나는 차마 농약을 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온갖 병충해들의 온상이 되기도 하고, 종종 새들이 파먹은 농작물들을 수확하기도 한다.
나는 정말 바보인지도 모른다. 시중에 있는 농약들을 이용하면 좋으련만. 이런 나를 본 B는 계속 놀려댄다. “넌 바보임에 틀림없어.” '그래, 난 바보야!' 속으로 뇌까리면서 하늘을 바라보면 내가 진짜 바보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오늘도 나는 또 행복한 바보짓을 계속하고 있다. 그 누가 뭐라든지 나는 바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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