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전용창
ㆍ작성일	2019-05-10 (금)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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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추천: 0 ㆍ조회: 484

엄마도 울고 가을이도 울고
엄마도 울고, 가을이도 울고

꽃밭정이 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목요야간반 전 용 창

해질무렵 ‘가을이’와 ‘깜이’는 장난치며 놀고 있었다. 서로 뛰기도 하고, 앞발을 내밀어 건들어 보기도 하며, 얼굴을 마주하고 혀로 핧아주기도 한다. 임실군 신덕면 조월리 경각산 자락 J 친구 집 마당풍경이다. 앞마당에는 갖가지 꽃들이 피어있고, 뒤쪽은 경각산이 자리잡고 있다. 풍광이 아름다운 명당에서 모자간에 이렇게도 다정한데 어떻게 이들을 떼어놓는단 말인가? 더구나 내가 왜 이런 악역을 자초하고 이곳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선한 일을 한다는 게 그만 그들에게 못할 짓을 하고 만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어린이날에 이어서 어버이날로 아빠 엄마가 주는 맛있는 고기를 먹으며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하루가 지난 오늘에는 부부간에, 모자간에 생이별을 해야 한다니 이런 슬픈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고등학교 동창으로 절친한 친구 K, J, B 삼형제는 노년에 함께 모여 살자던 약속을 지켰다. 3년 전에 고래등같은 ‘경각산’ 끝자락에 천여 평을 공동으로 사들여 뾰족한 다락방이 있는 알프스형 하얀 집 세 채를 나란히 지어서 K, J, B 순서대로 입주했다. 모두 자녀들을 출가시켰기에 부부만 살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 새로운 가족으로 시집온 게 ‘가을이’다. 가을에 찾아온 반가운 손님이라고 해서 가을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그 뒤 6개월이 지나서 꽃피는 봄에 데릴사위로 들어온 게 ‘봄이’다. 그렇게 하여 가을이와 봄이는 서로 부부가 되었다. 둘이는 행복하게 살며 사랑을 하고 자녀 셋을 낳았다. 둘은 출가를 시키고 지금은 홀로 남아서 엄마와 스킨십을 하는 게 까만 털 머슴아인 ‘깜이’ 다.

다섯 가족이 있을 때는 즐거웠으나 둘을 출가시킨 마음이 시집보낸 딸처럼 어찌나 서운하고 허전하던지 다시는 그런 아픔을 감내하지 않으려고 세 가족이 상의하여 내린 결정이 아빠와 아들을 남겨두고 엄마를 입양시키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다. 때마침 내가 형님처럼 지내는 지인이, 키우던 개를 잃고는 서운하여 다시 구한다기에 내가 앞장서서 중매를 나섰다. 나는 형님 집의 꽃밭을 사진 찍어 메시지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그분이 동네에서 부부금슬이 가장 좋다고도 했다. 그랬더니 입양하겠다는 답신이 왔다. 나는 서둘러 그분과 함께 찾아갔다. 차 대접을 받고 가을이에게 다가갔다. 가을이는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 양 꼬리를 치며 다가왔다. 친구는 마지막 만찬인 소시지를 주었다. 가을이는 얼른 받아먹었다. 친구 사모님은 가을이가 떠나는 모습을 도저히 볼 수가 없는지 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가을이가 떠난다고 전하니 배웅을 하려는 듯 다시 나왔다. 맨처음 온 게 ‘가을이’니 얼마나 정이 들었을까? 가을이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몸매에 검은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룬 얼룩무늬 털옷을 입고 있었다. 눈동자는 빛났고 얼굴은 예뻤다. 나는 가을이를 한 달 이내로 다시 데리고 와서 엄마와 아빠, 남편 봄이, 아들 깜이의 상봉 자리를 꼭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형님은 운전하고 나는 가을이를 품에 안고 뒷좌석에 앉았다. 창문을 열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봄이와 깜이를 마지막으로 보도록 했다. 차가 집 앞에서 멀어지자 사모님은 눈물을 훔치는 듯 눈가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가을이에게 말했다.

“가을아, 아저씨가 꼭 데리고 올게 너는 울지 마.”

나의 손은 가을이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 차가 불재고개를 넘어서 태봉초등학교에 이르자 가을이가 안절부절못했다. 아마도 자기가 낯선 곳에 왔다는 것을 직감한 것 같았다. 일어나 두 발을 창문틀에 대고는 밖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렸다. 내 바지에도, 뒷좌석에도, 가을이의 눈물이 툼벙 툼벙 떨어졌다. 내가 큰딸을 시집보내고 뒤돌아오며 흘린 눈물 같았다. 아니 영화 ‘뿌리’ 에서 엄마 흑인 노예가 자식들과 서로 다른 곳으로 팔려가며 흘리는 눈물과도 같았다. 동물의 세계도 이렇게 정이 많은 것일까? 늦은 저녁시간에 형님에게 전화했다.

“형님, 가을이가 울거나 칭얼대지 않아요?”

“조용히 잘 있어. 가로등도 있어서 어둡지도 않아.”

"형님, 가을이가 울면 안 돼요.”

“걱정하지 마.”

‘잘 자라 우리 가을이/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 양도/다들 자는 데~’ 나도 모르게 가을이를 위하여 모차르트의 자장가를 콧노래로 부르고 있었다.

(2019.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