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설날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무주리조트에서 가까운 콘도에 입주했다. 시골집은 비좁아 4형제를 비롯한 17명이 하룻밤을 지내기는 불편하다. 4형제 중 둘째와 막내가 콘도 두 채를 모두 책임졌다.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까치설날의 저녁상을 물리치고 윷놀이를 했다. 화투는 아예 모르고, 술판은 남의 이야기다. 윷놀이도 말판에 말을 놓다보면 감정이 상할 수 있다. 더욱이 시중의 윷은 동글동글하다. 가끔은 이게 엎어진 건지 뒤집어진 건지 실랑이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큰 소리가 터지고 심하면 싸움이 되기도 한다.
내 윷은 가죽나무로 손수 만들었다. 윷이 떨어질 때, 엎어졌는지 뒤집어졌는지 볼 틈도 없이 바닥을 내리친다. 그러면 웃음이 터진다. 말판과 말이 필요 없고, 윷과 숫자를 기록할 종이와 펜이면 된다. 4형제부부와 조카들이 합세하여 여섯 팀이었다. 점수는 둘이 합산하여 50점으로 했다. 많으면 지루하고 적으면 싱겁게 끝난다. 모는 5점, 윷은 4점, 걸은 3점, 개는 2점, 도는 1점인데, 같은 도라도 ‘십자가 도’는 6점이다. 그 도가 나오면 ‘할렐루야’를 외쳐야 한다. 그리고 벌칙은 정하기 나름인데, 우리는 ‘개’를 무효라고 했다. 윷은 몇 번이든지 자유롭게 던질 수 있지만, 개가 나오면 그 판에서 던진 것은 다 무효로 처리했다. 50점으로 정했으면 정확하게 그 점수로만 끝내야 한다. 예를 들면, 47점에서는 걸로 끝내야하지만, 세 번의 도로 끝내도 무방하다. 49점에서는 반드시 도로 끝내야하고, 도 이상은 어떤 경우에도 무효다.
첫판은 아내가 잘 던져서 제일 먼저 49점을 확보했다, 남은 것은 오롯이 도, 도하면 1등이다. ‘둘 중 하나는 도가 안 나오겠나?’싶어서 쉽게 여겼던 것이 윷을 화나게 했나? 12명이 세 번을 돌 때까지 도가 숨어 버려서 그만 우승을 놓쳤다. 동생과 계수씨들의 폭소가 터지는데 천정이 들썩들썩했다.
둘째 판에 들어갔다. 웬일인지 초반부터 개를 뒤집어썼다. 던지면 개가 나왔으니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맏형으로서 웃음을 선사할거니까 던지면 개가 나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좌우지간 던지면 개가 불거졌다. 개를 키우니 개를 사랑하는 탓이려니 싶어서 스스로 위로를 했다. 그 바람에 모두의 배꼽이 풀려서 난리북새통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기도 했다. 한 번은 2등이요, 두 번째는 꼴찌였다. 아내 앞에서 난 무척이나 겸연쩍었다.
우리의 웃음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엊그제는 친구들 세 부부가 모여 윷놀이를 했다. 여지없는 본색에 역시 개가 대세였다. 세 팀 중에서 세 번 모두 꼴찌였다. 어쩌면 그렇게도 던지는 쪽쪽 개가 나온단 말인가? 별별 짓을 다해서 윷을 던져도, 나동그라지는 것은 두 다리를 쭉~ 뻗은 개였으니 폭소가 터졌다. 상대 팀도 얼마나 난감했으면 개를 살리고 걸을 무효로 제안했을까?
네 번째 판에 들어갔다. 개를 만드는 제조기(?) 앞에서 감히 누가 우쭐댄단 말인가? 던지면 개, 두 팀이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압권 우승이었다. 좀 싱거운 면이 있었지만, 개로 이기긴 내 생전 처음이다. 네 번째만의 우승에 승리를 만끽하며 배려에 감사했다, 상대는 힘찬 박수를 보내주었다.
마지막 판이다. 승리의 기쁨도 잠깐, 그렇게도 잘 나오던 개가 달아나고 걸이 바닥을 깔았다. 나 때문에 걸을 무효로 정했는데, 걸이 쏟아지니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열 번을 던질 때까지 오롯이 걸,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아내가 잘 던져서 44점을 만들었다. 한 팀은 48점으로 개, 우리는 6점의 ‘할렐루야 도’로 1%에 희망을 걸었다. 두 번을 돌아서 내 차례가 되자 아내는 하이파이를 청했다. 나도 ‘할렐루야!’를 외치며 힘차게 윷을 던졌다. 이게 웬일인가? 눈이 뒤집혔다. ‘할렐루야 도’가 대문짝처럼 보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기적 앞에서 아연실색했다. 우리 모두는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웃고, 또 웃었다.
그 작은 놀이에서도, ‘자만과 교만은 금물이었다. 요행이나 기적을 바라지 마라. 욕심을 내려놓으면 가정이 행복하다. 남을 배려하고 사는 게 덕이다.’는 교훈이 내 안을 채웠다. ‘개’와 ‘걸’로는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할렐루야 도’로는 승리를 가져왔으니, 금년은 하나님의 한량없는 축복을 기대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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