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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곽창선
작성일 2020-06-16 (화) 05:54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40      
보릿고개
보릿고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곽창선









진료를 받으러 군산 나들이에 나섰다. 전군도로를 따라 김제 공덕을 지나는데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 모습이 보였다. 어렸을 때 마당에 모닥불을 피우고 생보리를 구워 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춘궁기에 검게 구워진 보리를 손바닥에 비벼 후후 불어 입에 넣으면  그지없는 별식이었다. 얼굴이 온통 숯검정으로 지저분해진 모습을 보며 깔깔 웃던 일이 어제일 같기만 하다. 그 모진 고통의 세월을, 꿈을 꾸듯 돌아보고 있으니 추억은 그리움의 산실인가 싶기도 하다.



흔히 인생길에 들어서면 넘어야 할 고개 셋이 있다고 한다. 넘어야 하는 고개, 퀴즈풀이 스무고개, 춘궁기에 겪어야 하는 보릿고개다. 그 중 가장 넘기 힘든 고개가 보릿고개로 알려 졌다. 보릿고개는 대략 음력 3-4월쯤 보리가 누렇게 익어 갈 무렵이다.    



가을 추수로 긴긴 겨울나기를 하고 나면 춘 삼월이다. 기다리던 봄에 기쁨은 잠시뿐, 또 다른 고난이 어머니 앞에 가로 놓인다. 식솔들의 끼니를 이어야 하는 걱정이다. 가을 추수한 곡식으로 긴 겨울을 지나고 나면,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순간부터 어머니들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부족한 식량으로 겨우 끼니를 해결하고 나면 항상 부족해서, 본인은 빈 솥에 물을 부어 득득 문질러 숭늉으로 배고픔을 달래야 했다. 그래도 주린 배를 동여매고 밤낮으로 일터에 나가 초근목피로 배를 채우며, 오직 자식들을 먹이기 위한 희망으로 견디신 어머니들이다. 종종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며 웃으시던 그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인기리에 방송을 마친 트롯 경연은 어머니의 고달픈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코로나 저주로 극심한 심리적 압박을 받아오던 시기에 방송된 효자 프로그램이었다. 실의에 빠진 온 국민을 TV속으로 끌어 모아, 천부적인 끼와 재치가 넘치는 재간꾼들의 묘기가 선보일 때면, 온 식구가 웃고 즐기던 한마당이었다. 데스메치(Death mach)로 한 장면 한 장면이 극적으로 연출되며 흥미를 더 해가는 맛에, 다음 시간이 기다려지는 프로그램이었다.



소년 가수 J 군의 보릿고개가 중반을 넘기고 있을 때 무대 중앙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한 사나이가 시선을 끌었다. 의아해 하는 순간 MC의 재치 있는 부연설명으로 눈물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눈물의 주인공은 가수 진성이다. 60년대를 살아온 우리 고장 부안출신이다. 흐느끼듯 한을 휘어 넘는 가락에 자신의 과거의 삶이 되살아오기 때문이었으리라.



당시 봄이 되면 누구나 끼니 걱정을 하던 시절에, 그는 조실부모하고 병마와 싸우시던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평소에도 굶기를 밥 먹듯이 해 왔으니 춘궁기에는 오죽했을까? 그는 회고담에서 앞집 할머니가 쥐어 주는 고구마 하나에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종종 뒷산에 올라 진달래 먹고 초근목피로 고픈 배를 채우며 흥얼흥얼 주어들은 노래로 외로움을 달래고, 십대 초반 어린 나이에 상경해서 문전걸식으로 끼니를 이어가며 무명가수의 한을 달래 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꿈은 이루어진다 했던가? 굶주린 고통이 아로 새겨진 경험을 바탕으로 노랫말을 짓고 곡을 붙였다. 하늘도 무심치 않았던지, 유명세를 타며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대표곡 '보릿고개'의 탄생 비화다.



 가사는 춘궁기의 절절한 사연이요 어머니들의 희망과 한숨을 그려 낸 한 편의 드라마다. 노랫말에서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로 배를 채우시던’ 부문은 당시 어머니들의 모습을 너무 잘 묘사해 찡한 울림을 준다. 어찌 그리도 적절하게 묘사했을까? ‘아이야, 우지 마라. 배 꺼질라’ 숨길 수 없는 엄마의 바람이요 자식 사랑이었다. 가사의 내용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겐 무슨 말인가 싶을 정도로 생소한 느낌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 온 나도 그 깊은 맛을 실감하지 못하고 그저 스칠 뿐이니 신세대에겐 동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우리는 전래로 험난한 보릿고개를 숙명처럼 안고 살았다. 더구나 반상班常의 사회 구조에 따라 서민은 양반의 도구로 쓰였고, 권력에 취한 조정 관리들은 이들의 보릿고개를 보살피지 못하고 착취와 만행을 일삼다가, 급기야 ‘농민항쟁을 불러 왔고, 경술국치와 동족상잔’ 이란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



봄이면 역병처럼 번지던 보릿고개가 사라진 것은 불과 50년 전의 일이다. 신의 가호였던지 60년대에 들어서며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불철주야 의식주 해결을 위한 노력 끝에 오천년의 恨한인 보릿고개를 벗어 날 수 있었다. 논과 밭에서 공장과 공사판에서 또는 이역만리 타국에서 몸이 망가지도록 노력한 수고의 댓가요, 가정에서는 치마끈을 질끈 동여맨 어머니들의 숭고한 가족사랑의 결과물이다. 이 모두가 ‘보릿고개를 물리친 원동력’ 이었다.



선대들의 피나는 노력 끝에 보릿고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오천년의 질긴 인연의 고리를 끊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기쁨도 잠시 무심한 세월 속에 선대들의 숭고한 노력이 빛을 잃어가며 대대로 내려온 논공행상이 재발하고 있으니 유감스럽다. 선대들의 공은 사라지고 과오만 남아서 적폐로 규탄을 받고 있으니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 시절 한 고비마다 공과功過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한 시대의 성과물을 지금의 잣대로 폄하하고 질타해서는 파쟁이 대를 이을 것이다. 이해하고 보듬어 가는 길이 한恨 많은 보릿고개를 영원히 추방하는 길이려니 싶다. 累누가 있었다면 시정하고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트롯 '보릿고개'를 감상할 때마다, 어머니들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어 효도의 시간이 된다. 서럽고 고달프던 그 시절 참고 견딘 숭고한 엄마들의 모습이 마냥 그리워지는 이유다.

                                                                     (2020.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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