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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신기정
작성일 2008-06-13 (금) 17:37
ㆍ추천: 0  ㆍ조회: 4122      
돌려 씹던 껌
돌려 씹던 껌
                             행촌수필문학회 신기정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이 껌을 좋아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막내가 숨겨 놓은 껌 한 통을 차례로 과자를 먹듯 삼켜버렸다. 혹시 탈이 나지 않을까 염려를 하노라니 껌에 얽힌 옛 기억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내가 처음으로 껌을 맛본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가까이 있던 미군부대에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눠준 것이었다. 변변한 과자가 없던 때라 향긋한 껌의 향기와 맛은 마약보다 더 진한 유혹이었다. 단물이 다 빠지도록 씹어도 닳지 않는 것도 신기했다. 풍선껌이라면 입술이 부르트도록 불고 다닐 수 있는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쉽게 구할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이 껌을 대신할 것들을 찾았다. 그 첫째가 삐비(삘기)였다.


띠의 어린 순인 삐비는 이른 봄 언덕배기에 널린 좋은 간식거리였다. 씹으면 솜털 뭉치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촉촉한 단맛이 났다. 우리는 껌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각각을 삐비 뭉치와 함께 씹어 한 개 이상의 껌처럼 즐기곤 했었다.


그 다음으로는 약간 덜 익은 보리나 밀이 껌 구실을 했었다. 알맹이가 통통해지고 가시가 약간 노란빛으로 익어갈 무렵이면 우리는 보리밭을 서성거렸다. 명목은 깜부기[smut]에 걸린 까만 이삭 뽑기였지만 알맞게 익은 보리나 밀을 지푸라기 불에 구워 먹는 것을 즐겼다. 그을린 이삭은 가마니에 놓고 비벼서 껍질을 벗겼다. 여기에 설탕이나 사카린(saccharin)을 적당히 넣으면 최고의 간식이 되었다. 밀알은 씹을수록 보리보다 더 끈적거려 아이들은 껌을 만든다며 오래도록 씹었다. 치약을 섞어 껌처럼 입안이 화해지는 느낌을 맛보기도 했다.


우리가 맛본 껌들은 한 통 단위로 파는 보통 껌보다는 낱개로 팔던 풍선껌이 보통이었다. 가지고 있던 용돈이 적었기 때문이다. 풍선껌은 누가 더 크게 부는가를 겨루는 도구였다. 당시 풍선껌은 딱딱하고 결도 곱지 못해 조금만 씹어도 잇몸과 턱이 아팠다. 하지만 워낙 귀한 것인지라 단물이 빠진 껌을 비밀의 장소에 붙여 놓았다가 다음날 다시 씹곤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 되자, 해태와 롯데 등 국산 껌이 늘었다. 맛보기는 쉬워졌어도 여전히 소중하게 다뤘다. 다만 껌의 보관처가 비밀장소에서 벽이나 책상 모서리로 바뀌어 가끔 식구끼리 돌려 씹는 일까지 생겼다. 맹인가수 이용복의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하는 '어린시절'이라는 노래를 변사또와 이방의 대화로 바꾼 불후의 명곡이 탄생한 배경이다.

(사또) 여봐라 이방.

(이방) 왜 불러 사또.

(사또) 왜 반말이냐?

(이방) 하면 좀 어때

........중략.......

(사또) 어제 먹던 이브껌 어느 벽에 붙였나?

(이방) 붙이기는 왜 붙여 돌려가며 씹었지.


껌을 돌려가며 씹을뿐더러 벽에서 떼어낼 때 함께 떨어지는 벽지까지 그냥 씹는 경우도 있었다. 종이를 떼어내려다 함께 떨어져 나갈 껌이 아까워서였다. 요즘 아이들의 시각으로는 엽기 그 자체일 것이다. 완전한 소유를 위해 입안에 문 채 잠이 들어도 가끔씩 질겅질겅 씹어 껌의 존재를 확인했다. 입을 벗어난 껌이 이부자리며 머리카락에 엉겨 붙으면, 등잔불 심지를 뽑아 석유를 떨어뜨린 뒤 비비면 끝이었다.


형제들끼리 껌 하나도 잘게 나누어 혀끝으로만 그 향기와 단맛을 즐기던 가난했던 시절. 나눠먹고 돌려 씹던 껌 덕분에 가족애가 더욱 굳건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작은 껌으로라도 함께 불어 올린 희망이라는 풍선이 있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건 우리 세대만의 별스럽지만 아름다운 추억이다.


*삐비 : 삘기(띠의 애순)의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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