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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형효순
작성일 2008-06-08 (일) 12:45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3859      
촌년과 웬수 오만 원
촌년과 웬수 오만 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라원 형효순



고부간의 갈등은 백 년 전이나 백년 뒤에도 변함이 없지 않을까? 한 남자를 서로 사랑해야 하는 두 여인들의 미묘한 감정차이가 서로 상대방의 신경을 건드리는 까닭이다. 긴 세월 함께 살면서 언제나 좋기만 하다면 오히려 이상할지도 모른다. 농촌의 고부간이야 할 일들이 많아 역할분담이 되니 오히려 불편이 없다. 하지만 어쩌다 다투는 날에는 그 속내가 시어머니나 며느리 모두 끓는 물 속 같다. 고부간의 불화는 이혼으로까지 이어지는 예가 많다. 지금 '사랑과 전쟁'이라는 KBS-TV프로그램을 보아도 시어머니의 개입으로 헤어지는 부부가 많다.

조선왕조 오백년 동안 참고 살아온 며느리의 한을 이야기하자면 지면이 부족하리라. 왜 시어머니는 끊임없이 며느리를 미워해야 했을까. 내 자식을 사랑하는 여자이고, 집안을 이어갈 손자손녀를 낳아주며, 손발이 부르트도록 살림을 하는데도 며느리를 왜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여겼을까? 얼마나 미웠으면 가시가 다닥다닥 붙은 풀이름이 며느리밑씻개였을까. 오줌소리까지도 트집이었다. 우리 딸은 금쪼록 은쪼록하고, 며느리는 굴레펑펑 굴레펑펑 소리가 난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 딸이 시집가면 바로 시어머니에게서 그대로 돌려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지금 50~60대만 해도 귀머거리 삼년, 봉사 삼년, 벙어리 삼년의 시집살이를 한 사람들이다. 요즘 며느리들이 들으면 ‘전설의 고향쯤’으로 알 것이다.

나도 시어머니가 된지 벌써 3년이나 되었다. 한 집에 살지 않는 탓도 있지만 며느리와 감정이 상한 적은 없다. 요즘 세상에는 며느리가 밉다는 시어머니는 별로 없다. 저희들끼리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생각한다. 보답을 바라는 마음도 갖지 않는다. 오히려 김치를 담가주고 밑반찬을 만들어주며 아이까지 길러줘야 하는 시대다.
시어머니 노릇은커녕 어쩌다 찾아간 며느리 집은 가시방석처럼 불편하다. 눈치가 보여 열흘을 버티고 내려오면 대단한 사람이라고들 한다. 아들을 장가보내면 그날로 사랑하는 마음마저 비워야 한단다. 그래서 생긴 우스갯소리가 하나둘이 아니다.
딸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고, 며느리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며, 아들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고 한다. ‘시’자가 들어가는 시금치나 시래깃국도 먹기 싫다는 며느리들의 말은 이미 오래전에 나온 이야기다.

언젠가 라디오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다. 함께 산 시어머니에게 용돈을 드린 며느리가 가계부에는 ‘웬수 오 만원’이라고 기록한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농촌에서 사는 시어머니에게 용돈을 보내드리고 가계부에는 ‘촌년 십만 원’이라고 쓴단다. 아들을 낳아 온갖 정성을 쏟아 기르고 가르쳤는데 장가를 보낸 뒤 효도는커녕 ‘촌년’이란 별명을 하나 얻게 된 서글픈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며느리에 대한 퍼주기 식 사랑도 점검해 보아야 할 때이다. 명절날 억지로 싸준 음식은 집에 돌아가 보따리 째 쓰레기통에 버린다고 한다. 늙은 시어머니가 만든 음식을 먹지 않으려고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시골에 가지 않으려고 한단다.
 지금의 젊은 며느리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확실하게 밝힌다. 안되는 것과 못하는 것도 당당하게 말한다. 거의 직장을 가지고 있어서 아기자기한 고부사이의 정을 쌓을 시간도 없으니 만나면 남 같기도 할 것이다. 말세라고 한탄만 할 일이 아니라 현대에 맞는 바람직한 고부관계를 만들 수 있도록 함께 연구해야 할 것 같다. 어느 분의 글처럼 며느리나 시어머니 자격증도 없이 시작된 인연이니 젊은 며느리들만 나무라지 말고 ‘웬수’나 ‘촌년’이 되지 않도록 노후준비를 잘 해야 할 것 같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평행선이다. 결코 만나서 한 점을 이룰 수 없다면 적당한 평행선을 유지하면서 서로 상처를 주지 않는 관계로 살아야 할 것이다. 원래 묘한 것이 고부사이이다. 한 남자를 두 사람이 똑같이 사랑해야 하는 운명이니 어찌할 것인가.

36년을 한 집에서 살아온 우리 시어머니와 나는 이제 눈빛만 보아도 서로의 심정을 알아차릴 만큼 가깝다. 너무 허물이 없어 가끔 다투기도 한다. 친정어머니보다 더 긴 세월을 함께 살았으니 그 미운 정 고운 정이 어디로 가겠는가. 승패를 가릴 수 없는 고부간의 기 싸움 때문에 언제나 힘든 사람은 남편이다. 어머님은 아직도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시고 나는 이제 자잘한 잔소리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요즘 미국 산 쇠고기수입논란이 날마다 보도되자 미국은 옆에 있지만 북한은 마음대로 못가니 가장 먼 나라로 아시는 시어머니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도 해본다. 하지만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에서 샌드위치노릇을 하는 남편의 신세는 언제나 고달프다. 자식을 살리려고 가짜 어머니에게 자식을 양보하겠다고 하는 진짜 어머니처럼 슬기로운 판단을 내려야 할 것 같다. 요즘은 솔로몬의 재판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할 일이려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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