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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형효순
작성일 2008-09-06 (토) 06:50
홈페이지 http://blog.daum.net/crane43
ㆍ추천: 0  ㆍ조회: 2801      
별것도 아니네
별것도 아니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형효순





'엄마가 뿔났다'라는 텔레비전 연속극에서 주인공인 김혜자는 한 달이나 휴가를 얻어 집을 나갔다. 그것도 버젓이 방을 얻어 살림살이까지 싣고 이사를 갔다. 나는 그 여자에게 박수를 보냈다. 일인 다역으로 지친 그 모습이 나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윤리 도덕 사회적 관습에 얽매어 아프다는 내색 한 번 하지 못하고 숙명인 양 살아온 게 우리 세대들이다. 우리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인데 그 여자는 용감하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면 저마다 책 한 권으로는 모자란다. 인생 구비구비 힘들지 않고 살아온 여인이 몇이나 될까? 나 또한 모두가 잠든 밤, 옥상에 올라가 셀 수도 없는 별들을 헤아려 보고, 내리는 빗줄기에 참기 힘든 성화를 떠내려 보내면서 이순을 맞게 되었다. 잡초처럼 강인한 것이 여자인가?
결혼이라는 법적승인을 얻어 모든 것이 낯선 시집으로 옮겨 용감하게 인생의 씨앗자루를 들었다. 눈물을 섞어 이곳 저곳에 자신의 영역 표시를 해가면서  당당해질 때까지 쉴새없이 자신에게 인내의 풀무질을 했다. 여섯이나 되던 시동생들은 어른이 되어 제각각 살아가고, 아들과 딸이 결혼해서 귀여운 새 생명을 안겨줄 때마다 삶이란 이런 것인가, 기쁨과 쓸쓸함이 내 몸을 넘나들었다. 젊음이 가는 것이 슬픈 일은 아니지만 즐거운 것도 아니다. 끝없이 나를 필요로 하는 가족에게서 도망치고 싶은 우리 세대를 '뿔난 엄마'가 대변하고 있다.

지난 여름, 헝클어진 마음을 다스릴 수 없어 시동생과 시누이에게 도와 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누군들 그 여자처럼 휴가를 받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자라는 곡식은 내 발자국 소리를 들어야 하고, 일년 농사를 휴가라는 명목으로 망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얻은 37년만의 내 방식대로 휴가를 얻었다. 어머님이 서울 아들네 집으로 가셨다. 모처럼 얻은 남편과 둘만의 한 달 살이가 시작되었다. 무엇부터 해볼까!

단 둘이 겸상을 차려 놓고 밥을 먹고 싶었었다. 어른이 없는 밥상은 성의가 없어졌다. 공연히 남편의 눈치를 보니 별로 재미가 없다. 라디오 볼륨을 집이 떠나가게 틀어놓고 청소도 해보고 싶었었다. 청소기를 들고 소리를 질러 노래 불러보고 싶은데 길갓집인지라 시어머니 보내놓고 좋아서 그럴 거라 흉을 볼까봐 그만 두었다.
어제는 마침 비가 내렸다. 부침개를 부쳐서 술 한 잔 따라놓고 남편과 마주하고 싶었다. 다 챙겨놓고 전화를 했더니 시내에 있다면서 혼자 실컷 먹으라고 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술을 혼자 마셔보니 없는 청승이 찾아왔다.
친구들을 불러다가 편안하게 밥도 해먹이고 종일 수다를 떨고 싶었다. 전화번호를 찾아 여기저기 부지런히 물어보니 아들아이 딸아이 키우느라고 정신이 없단다. 아직도 자식들의 전쟁같은 삶에 동참하느라고 쉴 틈이 없었다. 병원에서 꼼작 못하는 친구도 있었다. 애꿎은 전화기에 대고 힘든 인생푸념들을 했다.
아침밥을 짓지 않고 우유나 빵을 먹고, 커피를 느긋하게 마시고 싶었다. 이걸 먹고 논두렁 깍을 수 있겠느냐고 남편이 싫은 소리를 했다. 하루 정도 굶어도 죽지 않는 것이 사람이긴 하지만 60여년 길들여진 뱃속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내가 더 밥이 먹고 싶었다.

남편이 1박 2일로 여행을 갔다. 혼자 남은 집이 궁전같아 공연히 안방으로 건넛방으로 거실로 돌아다녔다. 한 번도 입지 못했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오늘은 밭에도 가지 않고 빨래도 하지 않고. 밥도 하지 않고,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책도 읽도, 글도 쓰는 멎진 내 모습에 설레기까지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김치가 떨어졌어 오후에 갈께 김치 좀 담가줘요."
내가 김치 담그는 사람이냐고 속으로 고함치면서 알았다고 대답하는 자신이 미웠다. 딸 네가 왔다가 갈 때까지 추리닝 차림으로 더 바빴다. 나이든 부부가 나란히 손을 잡고 강변을 여유롭게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그럴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산책길을 나섰다. 금강마을을 지나 운교마을 앞을 거쳐 오롱굴 논 물꼬까지 보고 오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아직 멀었는데 멀쩡하던 날씨가 수상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던 베이징올림픽 육상선수들처럼 뛰었다. 겨우 널어 놓은 고추를 가까스로 걷어들였다. 쏟아지는 소나기가 야속했다. 어머님이 계셨으면 헐떡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젊은 날 참을 수 없는 성화가 끓어오르면 산에 망태를 들고 올라가 나무를 한다는 핑게로 목청껏 노래를 불렀었다. 그러면 가슴 속에 얹힌 것들이 내려갔다. 오늘은 집에서 불러도 될 것같아 폼을 잡고 노래를 부르는데 주민세 고지서를 가지고 온 반장님이 넋을 놓고 나를 보고 있었다. 괜한 짓을 했다. 면사무에서는 왜 아직도 주민세고지서를 이장님 편에 보낼까? 숨어 사는 죄인 마냥 눈치를 보아가며 하던 4년 대학공부, 버젓이 거실에다 책상을 내놓고 공부를 하고 싶었다. 힙겹게 책상을 내다놓고 종일 놀기만 했다. 밤에 목욕탕에서 거실로 에스라인 배우들처럼 용감하게 들어오다가 커다란 거울 속에 비친 나이든 여자의 몸을 보고 흠칫 놀랐다. 부지런히 옷을 입었다. 남편이 없기를 다행이었다. 그리도 해보고 싶었던 일들이 이제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관객없는 무대처럼 쓸쓸했다. 이미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내 젊은 날은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 아직 살아온 세월을 잊지도 못했는데.
홍윤숙 님의 '장식론'을 중얼거려 보았다. 열병처럼 돋아나던 심화의 불꽃을 삭이지 못하고 그렇게 갈구하던 자유가 무엇이었을까. 공연히 없는 구속을 스스로 만들어 그것을 내 주위 사람들에게 덮어 씌우고 나는 무한히 참고 사는 성인군자인 양 내세웠던 것은 아닐까!
어머님이 서울로 가시면서 네가 살면서 무엇이 그리 힘들었느냐고 섭섭해 하셨다. 지금 그 말씀에 뚜렷하게 반박할 이유도 없으면서 겨우 한 달 휴가로 36년 동안의 긴 세월을 보상받으려 했을까! 지나간 것을 지나간대로 흘려 보내지 못하고 그 세월 속에 가라앉은 앙금을 켜켜히 간직하고 비명을 질러댔던 내 자신이 어리석었다. 벗어버리면 가벼울 때 묻은 옷을 무슨 미련이 많아 그렇게 끌어안고 힘들어 했을까? 단 둘이 사는 것은 별것도 아닌데.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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