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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김길남
작성일 2008-09-05 (금) 19:50
홈페이지 http://blog.daum.net/crane43
ㆍ추천: 0  ㆍ조회: 2994      
내가 걸어 온 배움의 길
내가 얼어 온 배움의 길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김길남


 

요즘은 조기 입학도 하고 검정고시제도가 있어서 나이에 비해 빨리 대학에 들어갈 수도 있다. 학교의 문턱도 밟지 않고 학사학위까지 받을 수 있는 제도도 있어 배움에 목마른 학구파들에게 환희의 불빛이 되고 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내가 걸어온 배움의 길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일제 식민지시대에 유년기를 맞은 나는 아버지께서 한문을 배워야 한다고 하여 서당공부를 시작했다. 7세부터 9세까지 이웃마을의 서당에서 천자문, 사자소학, 명심보감을 배웠다. 천자문을 배우는 어린이부터 통감을 배우는 청년에 이르기까지 층층이었다. 10일에 한 번씩 강을 받는데 그동안 배운 내용을 선생님 앞에서 외우고 뜻을 설명하는 시험이었다. 잘한 사람을 장원이라 하였다. 나도 여러 번 장원을 하기도 했다. 서당도 민족정신을 기르는 곳이라 하여 일제가 모두 폐지시키는 바람에 그 마저도 다니지 못하고 해방을 맞았다.

해방 뒤에는 지식인들이 야학당을 열어 글을 가르쳤다. 나도 야학당에서 한글을 배우고 셈 공부를 했다. 이러한 공부는 간단하여 몇 달 되지 않아서 한글은 모두 익혔고 셈도 잘 할 수 있었다. 더 배울 것이 없는 것 같았다.

13살에야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식민지 시대에 학교에 다니지 못한 아이들이 한꺼번에 입학한 것이다. 한 마을에 사는 박 선생님의 도움으로 2학년에 들어갔다. 간단한 한글 쓰기와 셈 문제로 입학시험을 보았는데 쉬운 문제였다. 늦깎이 학생이 되어 학교에 다녔다. 반 선생님이 담임을 하셨고 나를 몹시 귀여워해 주셨다. 공부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쉬웠고 시험을 보면 좋은 점수를 맞았다.

이해 겨울에 아버지께서 병을 앓다 돌아 가셔서 가정에 어려움이 시작되었다. 38세의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가 가게를 꾸려나가야 했다. 해방 뒤 혼란기에 그렇게 되었으니 고생은 불 보듯 훤한 일이었다.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으로 올라가야 정상인데 나는 또 월반을 하여 4학년이 되었다. 서 선생님이 담임을 하였으며 특히 주산을 열심히 가르쳤다. 처음으로 주산을 배웠지만 연습을 많이 하여 빨리 불러도 주산을 놓을 수 있었다. 예쁘고 공부를 잘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나와 수석을 놓고 경쟁을 하였다. 주산도 잘 놓아 서로 겨루니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5학년은 두 반이므로 서로 겨루었다. 공부는 물론이고 운동경기도 누가 이기느냐가 관심거리였다. 처음 담임을 하셨던 선생님은 가시고 새로 오신 방 선생님이 맡으셨다. 정통 사범교육을 받은 선생님이라 달랐다. 우리들에게 대통령이나 장관도 될 수 있다는 꿈을 심어 주었다. 이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쓰고 있다.

교실은 겨우 책걸상과 칠판만 있었다. 공책도 없어 종이를 사다 매어 쓰기도 하고 연필의 질도 낮아 글씨가 써지지 않으니 침을 묻혀 쓰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려면 크레용과 도화지가 있어야 하는데 살 돈이 없어 미술시간이 두렵기도 하였다. 놀기를 좋아해서 운동장은 항상 어린이들로 붐볐다. 공놀이, 자치기, 제기차기를 신나게 했고 여자들은 고무줄놀이를 많이 했다.

6학년이 되었다. 어린이회장을 선거하였는데 다른 반 친구를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초등학교에서는 이상하게도 급장이나 회장을 놓친 일이 없었다.

6월 25일 북한이 남침을 하였다. 역사시간에 신라와 백제가 싸우는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폭음이 들렸다. 이리역에 폭탄이 떨어진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 때문에 학교는 쉬었고 수복이 될 때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수복한 뒤에 개학하였는데 학교는 어수선했다. 선생님들이 부역을 했다하여 많이 바뀌었고, 어디로 갔는지 소식을 모르는 선생님도 있었다. 우리 담임은 그대로여서 다행이었다.

다시 열심히 공부를 했다. 중학교에 가야 하기에 누구나 학업에 정진하였다. ‘지능고사’라는 책이 있었는데 문제와 답이 적혀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둘러 앉아 한 사람이 문제를 읽으면 답을 말하는 식의 공부를 하였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상식도 늘었으며 실력이 향상된 듯했다.

학제가 변경되어 9월이던 새 학년이 4월로 바뀌게 되었다. 중학교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으로 분리되었다. 중학교 입학시험도 국가고사를 보게되어 1951년 봄에 김제 중앙초등학교에서 군 전체 학생이 모여 시험을 보았다. 그 결과 나는 398점을 맞았다. 7월에는 초등학교졸업식이 있었다. 내가 울면서 답사를 한 기억이 난다.

9월에 중학교에 입학했다. 처음에 전주사범병설중학교에 지원하였는데 생년월일을 원서와 호적이 다르게 써서 떨어졌다. 점수는 4등이었는데도 아깝게 낙방하였다. 통학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에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다음에는 통학하기 좋은 이리동중학교에 원서를 내어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입학식 날이 되었다. 운동장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 선생님이 오셔서 난산초등학교에서 온 김길남을 찾았다. 교무실로 따라 갔더니 입학생 대표선서를 하라고 했다. 알고 보니 내가 1등을 하였기에 시키는 것이었다. 기쁘기도 하고 어리둥절했으며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맞은 쾌거였다. 촌놈이 운동장에 모인 전교생 앞에서 선서를 하고 중학생이 되었다.

입학식 때까지 등록금을 내지 못했다. 벼를 수확하려면 아직 두 달이나 더 있어야 하니 마련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입학식 다음날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아직 등록을 못 했으니 수석을 한 나에게 등록금을 면제해달라 사정하였다. 사정은 딱하나 그런 제도가 없어 못해 주겠으니 벼를 수확하면 등록하고 다니라고 하셨다. 큰마음을 먹고 용기를 내어 찾아 갔으나 허사였다. 나는 등록을 못했다고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가을에 벼를 수확한 뒤에야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3개월이나 놀았으니 공부가 뒤졌다. 다른 과목은 그래도 따라가겠는데 영어공부가 안 되었다. 그 뒤 영어는 포기하고 겨우 낙제나 면하는 처지가 되었다. 수학과 과학은 재미가 있어서 열심히 하였다. 수학은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학제변경으로 6개월 만에 1학년을 마치고 다음해 4월에 2학년이 되었다. 가정은 더 어려워져 겨울방학 뒤에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2학년 몇 반인지도 몰랐다. 보릿고개를 보내고 여름이 되어 논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친구가 찾아 왔다. 초등학교 때 6학년 담임이 보내서 왔다고 했다. 중학교에서 연락이 오기를 곧 출석하지 않으면 퇴학시킨다는 것이었다. 중학교를 포기할까 생각했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달라졌다. 어머님이 놀라시고 학교에 가라하여 다음날 담임을 찾아 갔다. 극빈자로 학비를 면제하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다니라고 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늘이 나를 지옥에서 구해준 것 같았다. 중학교의 배려로 학업을 계속하게 되었다. 마침 통학하는 기차가 다녀 삼십릿길을 십리만 걷게 되었다. 그 뒤 어머님이 장사를 하셔서 생활이 나아지고 학교는 걱정을 않고 다닐 수 있었다. 하늘이 내린 은덕이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 때는 특수반이 있었지만 나는 특수반에 들어 갈 수 없었다. 2학년 성적을 평균하여 우수자를 뽑았는데 장기결석으로 1학기 시험을 보지 않아 성적이 없으니 별 수 없었다. 특수반 아이들이 뽐내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였다. 일제고사를 보면 내 성적도 특수반 못지않게 좋았으므로 일제고사 보는 것이 나에게는 즐거움이었다. 내 실력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무기명으로 소원을 쓰라고 하여 일제고사를 자주 보자고 했더니 별스런 놈이 다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러 번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중학교를 마치게 되었다. 졸업할 때는 우등상도 탔고 전주사범학교에 합격하여 기뻤다.

다른 사람이 9년 걸려야 다니는 초․중학교를 6년 정도 다니고 마쳤다. 초등학교 4년 중학교 2년 정도 다녔다. 어려운 시절에 그렇게라도 학업을 마쳐 나의 평생 버팀목이 되었다. 변칙으로라도 초․중학교에 다니지 않았으면 교직에 설 수도 없었을 것이고 나의 일생이 변했을 것이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선생님들과 장학제도에 감사하기 짝이 없다. 어렵게 학교를 마친 것이 어찌 꿈만 같지 않겠는가.
                           ( 2008. 8.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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