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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이의
작성일 2008-09-02 (화) 16:44
홈페이지 http://blog.daum.net/crane43
ㆍ추천: 0  ㆍ조회: 2938      
내 탓이로소이다
내 탓이로소이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이의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바람결에 귀를 기울이던 어느 날, 갑자기 오른쪽 무릎이 아프다고 엄살을 떨기 시작했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절뚝거리며 1주일이나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왼쪽 무릎도 올봄에 그랬으니까. 하지만 온갖 치료법을 다 동원해도 별 효과가 없었다. 그렇다고 집안에만 있을 수 없어 이마트라도 가려면 지하도 계단이 무서워 무단 횡단도 서슴지 않았다. 그랬더니 나는 상습 교통법규 위반자가 되기도 했다.
정형외과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반듯하던 다리가 무릎서부터 휘어들어 O자 모양으로 변하고 있었다. 올봄 어느 날 엄마 키가 줄어들었다고 놀리던 딸의 말이 얼핏 떠올랐다. 언제부터인가 다리를 뻗으면 무릎과 무릎사이가 붙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멀어지더니 지금은 3.4cm쯤 떨어진다. 그리 크지도 않은 키가 더 작아지다니 안타깝다. 나이가 들면 척추 마디마디가 내려앉아 키가 줄어든다는데 다리까지 휘어졌으니 더 그래 보였던 모양이다. 진단 결과는 더 늦기 전에 수술을 하는 것이 좋다는 소견이었다. 아무리 그런 소리를 들어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버틸 작정이다.
근 70여 년을 사용했으니 고장이 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 잘못이다. 내 몸은 내가 아니라 내 것이고 내가 주인이다. 주인인 나는 나를 위하여 일하는 내 지체를 건강하게 지켜주고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지금 무릎을 침으로 찌르고 부항을 뜨고 사혈까지 하는 갖은 고문을  혹사시켰으니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잠까지 설쳤다.
급한 성질 때문에 빨리빨리 걷는 것만이 내가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인 양 착각 속에 살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힘이 있던 때에는 내 다리도 따라주어 언제나 그러려니 믿어버린 무심한 마음이 방심죄에 해당될 듯하다.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무릎도 전만 못하다는 걸 왜 깨닫지 못했는지! 어쩌다 다리가 무거우면 좀 쉬엄쉬엄 가면 좋으련만 오히려 짜증을 내고 무리를 했으니 무릎 어찌 버틸 것인가. 이토록 호되게 혼이 나고야 철이 좀 드는 것 같다. 나이가 들었으면 거기에 걸맞은 운동을 해야 하는데 젊은 사범을 본떠 절하기수련을 했으니 무릎이 비명을 지를 수밖에.
내 것인 내 무릎에 조금이라도 관심과 애정을 갖고 보살폈더라면 이렇게까지 병이 나지는 않았을 텐데, 나의 무지와 무심이 부른 화근이다. 수련시간이면 곧 잘 ‘고맙다고맙다’하는 말뿐이었고, 실제로는 당연히 그 자리에서 나를 위해 일 잘하는 도구로 취급했으니 자책을 면할 길이 없다.

만물은 사랑을 먹고 산다. 어떤 물질도 홀로 아름다운 빛을 낼 수는 없다. 하물며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사랑의 손을 거치면 예술품으로 거듭난다. 이렇듯이 서로서로의 관심과 배려는 생명을 잉태시키고 사랑을 먹으면서 성장해 간다.
베란다에 놓여있는 화분에 적당히 물을 주고 가끔 영양이나 공급해 주면 되는 줄 알았다. 내가 보살피기 시작한지 두 해를 넘겼는데 동양, 서양란 할 것 없이 꽃은 한 화분에서만 어렵게 피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들여다봐도 새 싹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었다. 봄이면 화분이 하나 둘 줄어들었다. 전문가들한테 조언을 구하니 온도 관리를 잘못했다고 한다. 그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만 추위를 피해 집안에 들여 놀 공간이 마땅찮았다. 지난봄에는 더 늘어난 난들까지 잘못 될까봐 아침저녁으로 사랑의 마음을 담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난 기르는 방법까지 숙지하며 물주기 거름주기에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을 선택했고, 모든 생물의 기본 권리인 종족번식을 못하는 난들이 안쓰러워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며 위로했다. 사랑의 힘은 과연 위대했다. 여기저기 화분에서 뾰쪽한 새싹이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올봄에도 귀한 꽃을 피워 그윽한 향기에 취하게 했던 분에서도 늦게 연초록의 싹이 솟아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지 그들과 함께하는 공간이 행복했다.

우린 보통 보고 듣는 것만 믿고 산다. 내 것인 지체의 소리도 못 알아듣는 귀머거리 인간이 바로 나다. 내 것을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을 줄 것인가. 나를 지금껏 존재하게 해준 내 몸을 보이지 않는 곳까지 정성을 다하여 마음의 눈으로 보살피고 어루만져 그 동안의 수고를 위로하고 격려하리라.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내 몸 구석구석에게 감사하고 고맙고 사랑한다고 들려주어야겠다. 그러면 내 몸도 기뻐하겠지?

                      (2008. 8월.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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