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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은종삼
작성일 2008-08-31 (일) 04:34
홈페이지 http://blog.daum.net/crane43
ㆍ추천: 0  ㆍ조회: 3364      
응급실의 하룻밤
응급실의 하룻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은 종 삼


나는 지난 2008년 8월 19일부터 20일까지 대학병원 응급실의 ‘침대 화장실’에서 급한 볼일을 보았다. 참 희한한 경험이었다. 시원하고, 짜릿한 전율마저 느꼈다.

점심을 잘 먹고 활기차게 걸어서 은행에 갔었다.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어지럽고 숨이 차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맥박은 사정없이 뛰었다.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5분정도 지나니 좀 나았다. 다시 걸음을 걸으려고 하니 힘이 들고 숨이 찼다. 이대로 쓰러지는 것이 아닐까 겁마저 들었다. 그러나 조상님이 언제나 지켜주시고 천지신명(天地神明)이 나를 보호한다는 평소 믿음이 있어서 마음이 안정되었다.
전북은행 본점 앞 긴 의자에 앉아서 혹시 근처에 병원이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다. 마침 길 건너 한 2~300여 미터 가까이 〇〇노인병원이 있었다. 참 다행이었다. 그런데 신호등을 두 번이나 받아야 했다. 평소 같으면 아주 가까운 거리지만 상황은 천리처럼 느껴졌다. 겨우 걸어서 병원에 들어가니 안도감이 들었다. 쓰러지더라도 일단 병원이니까. 상황 설명을 했더니 심전도 검사를 해보고 ‘부정맥’이라며 빨리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소견서를 써주는 것이었다. 일반병동으로 가면 오래 기다려야하니 꼭 응급실로 가라고 재차 강조하며 택시를 타라고까지 당부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대학병원응급실에 들어가서 소견서를 보이니 즉시 환자침대에 누우라고 하더니 의료응급구조원이 와서 재빨리 응급처리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발 빠르게 의사 간호사들이 와서 코에 녹색 줄로 된 산소 호흡기를 코에 꽂고 팔에는 링거 주사기를 두 개, 가슴에는 세 곳에 심전도 검사기를 붙이고, 피를 뽑고, 주사를 놓는 등 한참 분주히 움직이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응급처치가 되었다. 나는 졸지에 응급환자 신세가 된 것이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멀쩡했는데 상태는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가슴은 압박감으로 호흡이 금방 멈출 듯하고 너무 빠른 맥박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그렁저렁 한 두어 시간이 지났다. 나는 집에 알리지도 않고 상황이 호전되면 그냥 퇴원하려는 속셈이었다. 10여 년 전부터 이런 경험이 세 차례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시간이 지나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회복되었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아무래도 한 밤은 지새워야 할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근처에서 근무하는 사위에게 연락을 했다. 응급실로 급히 오라고 하니 놀란 목소리로 교통사고냐고 물었다. 나는 대충 상황을 말했다. 사위, 딸, 아내, 아들이 차례로 도착했다. 순간 가족은 물론 남들에게 언제나 당당했던 나는 금세 기(氣)가 꺾였다. 아내에게 애써 태연한 척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가난하고 못생기고 신체장애가 있어서 기가 죽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같은 경우 기가 죽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제 남의 도움이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당장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없게 되었다. 빚진 죄인, 도둑질한 죄인뿐만 아니라 병든 자도 죄인임을 실감했다.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이 도착하기 전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말할 사람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실례를 무릅쓰고  옆의 환자 보호자에게 물을 사달라고 해서 갈증을 면했다.  

병원 응급실은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의사와 간호사는 교도관(矯導官)이고 보호자는 간수(看守)나 다를 바 없었다. 내 몸에 감겨진 여섯 개의 줄은 오랏줄이었다. 70여 병상은 넘쳐나는 응급환자로 빈자리가 없었고, 병원 응급차량뿐만이 아니라  119 응급소방차량도 꼬리를 이어 찾아 들었다. 웬 환자도 그리 많은지……. 대부분 70대 이상의 노인들이었다. 94세 된 노모를 60대의 아들이 보호하고 있었다. 거의 시체나 다름없는 환자들이었다. 내가 수련하는 궁도장(弓道場)과 노인복지관에는 미수(米壽)인 어른을 비롯하여 7~80대 노인들이 젊은이 못지않게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생을 어떻게 살아 왔느냐에 따라 응급실에서 인사불성(人事不省)으로 누워있기도 하고 건강하며 즐겁게 노년의 삶을 펼쳐 가기도 한다. 새삼 내가  불쌍한 노인들과 함께 누워있다는 현실이 부끄러웠다. 응급실은 수 십 명의 근무자와 함께 환자, 보호자, 문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낮과 밤도 없었다. 여기저기서 울부짖는 신음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탁한 공기가 불쾌감을 주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어린아이가 들어 왔다. 돌 지난 지 석 달된 내 손자만
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마치 세상에 태어난 것을 원망(怨望)하는 절규 같았다. 눈물이 흘렀다. ‘신이시여! 저 어린 생명을 감싸 주소서!’하고 두 손을 합장했다.

오줌을 누고 싶었다. 간호사에게 말했더니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면서 화장실 출입도 제한했다. 플라스틱 오줌통을 갖다 주고 가리개를 쳐주었다. 침대에서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졸지에 침대가 ‘화장실’이 된 것이다. 오줌은 그런대로 해결이 되었으나 대변이 문제였다. 다행이 뱃속은 편안해서 다음날 이른 아침에 대변을 보게 되었다. 의자에 기대어 밤을 새운 아내는 아기들이 사용하는 작은 청색변기를 가져왔다. 그리고 가리개를 쳐주었다. 나는 오줌통에 오줌을 먼저 누고 변기 바닥에 화장지를 듬뿍 깔아놓은 다음 엉덩이를 조금 들어 올리고 대변을 보려고 했지만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한참 만에 가래떡 같은 대변을 누었다. 참으로 상쾌했다. 화장지로 몽땅 덮어버렸다. 그리 구린내도 나지 않았고 종이 휴지처럼 보였다. 아내는 휴지통을 버리듯 화장실에다 버렸다. 아내한테 미안하였다.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을 침대에서 처리한 순간이었다. 먹고 싶은 욕망은 참을 수 있지만 배설(排泄)은 참을 수 없는 것. 동물의 원초적인 욕구 해결마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곳이 곧 ‘병원 응급실’이었다.

세상은 삼라만상이 고요히 잠들어 있을 시각, 깊은 밤하늘엔 별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배가 출출했다. 응급실에서는 아예 급식을 하지 않는다. 아내는 눈치를 챘는지 뭘 좀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전복죽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이 늦은 시각에 나를 위해서 죽을 끓이고 있을 집은 아무 데도 없을 것이다. 사위가 구해보겠다며 나갔다. 꽤 시간이 흘렀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 때문에 온가족이 동원되어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이내 사위와 딸이 내 앞에 하얀 일회용 용기에 담겨진 전복죽을 펼쳐놓았다. 한 입 떠 넣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참으로 별다른 맛이 있었다. 사위는 죽을 파는 집은 모두 문을 닫았고 늦은 밤까지 영업을 하는 참치회집에 가서 죽을 구해왔다고 했다. 참 기특했다. 나는 ‘전복죽’이 아니라 가족의 ‘사랑 죽’을 먹은 것이다.
점차 몸은 회복되어 갔다. 새벽녘에 사돈어른이 문병을 오셨다. 나는 웃음으로 맞았다. 곧 퇴원할 것이라며 사돈은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따스했다.

인과응보(因果應報)라 했던가. 나의 이 몰골은 반드시 원인(原因)이 있을 것이다. 곰곰 생각해 보았다. 지금 벌써 네 번째다. 이런 증상이 일어났을 때를 더듬어 보았다. 대체로 세 가지 원인을 찾아냈다. 첫째로 심신(心身)의 과로다. 지친 몸을 돌보지 않고 쫓겨서 일을 계속할 때였다. 둘째로 불안, 분노 억울함 등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일 때였다. 셋째로 과음했을 때였다. 이 세 가지는 심장에 무리를 주고 심장이 힘드니 혈액을 원활하게 공급하지 못하여 산소부족으로 숨이 차는 것이다. 원인을 찾았다. 이 세 가지를 이겨낸다면 건강을 유지하고 천수(天壽)를 누릴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응급실의 하룻밤은 나에게 생생한 현장체험과 함께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내 건강을 챙기는 것이 가족과 사회에 대한 봉사의 첫걸음이요 최고의 선(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소중함, 아내의 사랑, 나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의료인과 이웃들에 대한 고마움도 절실히 깨달았다.

이튿날 아침, 초음파 검사 뒤 ‘증상 없음’ 판정을 받고 만 하루 만인 20일 오후 2시 20분 퇴원수속을 마쳤다. 드디어 감옥, 아니 ‘인간지옥’에서 풀려 난 것이다. 진료비계산서를 보니 총 8십만 천 원, 그중 환자 본인 부담금이 40만천 원이었다. 응급실 하루 현장체험비, 아니 ‘침대 화장실’ 사용료라고나 할까. 아무튼 병원비가 아깝지 않았다. 대오각성(大悟覺醒)비는 무료(無料)였으니까.  

나는 맹세코 엄동설한 눈길을 걷다가 화장실 없는 하얀 집 문을 두드릴지언정 80만 원짜리 ‘침대 화장실’에는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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