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변명옥
ㆍ작성일	2018-11-08 (목)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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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즐거움
먹는 즐거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변명옥

TV를 켜면 여기도 먹방, 저기도 먹방, 온통 먹방 프로그램이다. 어쩌면 저렇게 맛있게 먹을까? 아마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한 끼는 굶고 나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입이 터지게 밀어 넣고 먹는 젊은 친구를 보며 한 편으로 부럽기도 하지만 소화가 잘 될까 걱정도 된다. 나는 티나지 않게 음식을 조심조심해서 먹는 편이다. 지독히도 무더웠던 지난여름 코카서스 3국 여행을 떠났다.

항상 준비하던 매실 엑기스 대신 덜 숙성된 매실 장아찌를 가져갔는데 덜컥 배탈이 나고 말았다. 조심조심했는데 아무래도 더위에 많이 먹었던 달고 시원한 수박 때문이지 싶었다. 아이고, 큰일이다. 평균 3∼5시간 버스로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데 중간에 설사라도 나면 어쩌지? 준비해 간 누룽지는 아르메니아 현지 가이드 주어 보내고 음식은 매끼 나오는 고기와 야채뿐이니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푸짐한 양고기 구이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뜨거운 녹차로 속을 달래고 있으려니 구경이고 뭐고 한국으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밤에 4∼5번 화장실 출입을 하고 아침에 일어나니 침대에서 일어설 기운도 없었다. 정말로 '오! 마이 갓'이었다. 같은 방을 쓰는 친구가 준 지사제 2알을 먹고 아침 점심을 굶고 다니니 같이 다니는 일행들이 더 걱정을 했다. 보나 마나 내 얼굴이 죽을상이었을 것이다. 배가 살살 아프니 모든 것이 귀찮고 괴로웠다. 아르메니아에서 점심메뉴로 내가 평소 먹고 싶어 하던 양꼬치 구이가 나왔지만 혼자 멀리 떨어져 앉아 있으니 산타클로스처럼 푸근하게 생긴 주인 할아버지가 손짓으로 왜 밥 안 먹고 있느냐고 물었다. 배가 아프다는 시늉을 했더니 “차차” 하면서 그것만 먹으면 만사 오케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 할아버지가 돌았나?’ 빈속에 독한 술을 먹으면 어쩌라고’ 하며 시큰둥한 표정을 지어도 잠시 후에 다시 와서 또 ’차차‘ 했다. 그래도 안 먹겠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 때 차라리 ’차차’를 먹었으면 고생을 덜 할 뻔했다. 다행이 일행 중에 내과의사가 있어 촉진을 하더니 장염 같다며 약을 주셨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뱃속이 조용해졌어도 겁이 나서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그 의사선생님이 “드세요. 약 또 드릴 테니 염려마세요.” 하며 안심을 시켜도 내 뱃속은 내가 잘 안다. 70년을 같이 살아왔는데…. 어찌나 장이 예민한지 국내에서도 물만 갈아먹어도 꼭 트집을 잡는다. 그런 내가 몇 십 나라를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매실 엑기스 덕분이었다.

처음 해외 여행지인 중국을 돌아다닐 때는 장이 막혀 장을 잘라내는 수술을 한 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그 때는 매실엑기스의 효능을 몰라 그냥 갔다. 중국은 한 여름인데도 들르는 식당마다 갈색의 중국 전통차를 펄펄 끓여 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뜨거운 차 때문에 곤욕을 치렀지만 나는 식당에서 뜨거운 차를 마시고 조심하며 음식을 먹어서인지 탈이 나지 않았다. 하루는 저녁메뉴로 사브샤브를 먹는다고 하자 그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음식이라 반응들이 그저 그랬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1인당 작은 손난로 한 개가 놓여졌다. 육수에 소고기와 돼지고기, 양고기, 닭고기, 오리고기를 얇게 저며서 각종 야채와 같이 나왔다.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처음 맛보게 되는 양고기는 누린내가 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식사가 시작되자 30명이 넘는 일행들이 저녁을 망쳤다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고기를 찍어먹는 육수가 어찌나 맛있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나를 오빠 내외와 남편이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신없이 먹다보니 일행들의 눈치를 보게 될 정도로 맛이 있었다. 다음날은 일정이 빡빡해서 저녁 늦은 시간에 식당에 들어갔다. 딤섬이 주 메뉴였다. 배가 고파 쪼르륵 소리가 날 정도인데 시간이 걸려서 나오는 음식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5가지 고기와 야채로 각각 만들었다는 만두의 크기가 한 사람당 엄지손톱 크기만 한 게 아닌가? 내가 배고프다고 한 개 더 먹으면 다음 사람이 맛도 못 보게 된다. 많이 먹지 않는(장 때문에) 나지만 짜증이 날 정도였다. 차례차례 나오는 만두는 속 재료에 따라 크기도 모양도 달리 나왔지만 한 개 더 나온다든지 덜 나오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16번의 만두가 나오면서 크기도 커져 우리나라 만두 크기도 있긴 했지만 딱 한 개씩만 먹을 수 있었다. 신기하게 나도 모르게 배가 불렀다. 마지막에는 정말 콩알 크기의 만두가 국물과 함께 나오자 국자로 떠서 먹었다. 콩알만두는 조심해서 떠도 딱 한개만 뜰 수밖에 없어서 마지막에 먹는 사람은 콩알도 없는 경우가 있었다. 여기서 가이드가 ‘콩알만두 한 개 드신 분은 큰 행운이 깃드시고 2개 드신 분은 2배로 행운이 오고 한 개도 못 드신 분은 대복이 옵니다.’며 너스레를 떨자 모두 웃고 말았다.

인도의 ‘난’의 담백한 맛에 놀라고 처음에 ‘뭐 이런 맛이 있지?’ 했던 인도 음식의 맛을 알아갈 무렵이 되자 인도를 떠나게 되었다. 인도에서 우리의 추석과 비슷한 명절이라 참깨강정을 보고 반가워하며 여러 번 손이 갔던 기억이 난다. 먼지가 뽀얗게 일던 길가의 화덕에서 금방 구운 ‘난’을 먹어보라고 나누어주던 아저씨의 순박한 검은 얼굴과 인심이 그립다.

케밥은 터키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알고 있었다. 기다란 쇠꼬챙이에 고기를 둥글게 말아서 구운 다음 칼로 빙 돌려가며 얇게 저며 먹는 모습을 TV에서 보기만 했다. 고기를 그렇게 구워먹는 것만이 케밥으로 알았다. 터키여행 중 야채와 고기를 황토로 구운 항아리에 넣고 밀봉을 한 다음 흐물흐물할 때까지 끓여서 손님이 보는 앞에서 뚜껑을 깨고 국자로 나누어 주는 요리도 케밥이라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장 폐쇄로 인한 수술로 장을 두 군데 잘라낸 나는 장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고통을 잘 안다. 물도 못 마시고 거의 두 달 동안 링거로 수분과 영양분을 섭취했다. 식사 때만 되면 음식 냄새가 구역질이 나올 만큼 싫어 병실 밖으로 나가서 시원한 공기만 마셨다. 먹을 수가 없으니 세상만사가 귀찮고 시들해졌다.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라는 말의 심오한 뜻은 제쳐두고라도 사람은 먹어야 기운도 나고 깊은 사고思考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장으로 고생하면서 새삼 깨달았다. 삼시세끼 남들은 평범하게 먹고 마시는데 물도 마시지 못하는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었다. 수술 후 물도 마시고 죽도 먹게 되자 모든 음식에 대해 감사히 먹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장이 막히면 화장실에 가도 대변이 안 나오니까. 맛있게 먹고, 먹으면 쑥쑥 소화가 되어 뱃속이 평화로워야 모든 일도 술술 풀리는 것 같이 개운하다. 먹는 즐거움이야말로 삶의 큰 행복이다.

(2018.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