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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최정순
작성일 2008-07-22 (화) 16:46
ㆍ추천: 0  ㆍ조회: 2713      
수필과 판소리의 만남
수필과 판소리의 만남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정순


복날 이열치열 음식으로 삼계탕이 제격이라면, 이번 수필의 날 잔치마당에 판소리는 하늘이 점지한 찰떡궁합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내가 판소리와 처음 만난 것은 전북도립국악원에서다. 취미로 적당히 배워보려는 것 중에서 제일 스트레스를 적게 받을 것 같아서 무턱대고 시작한 것이었다. 좀 창피한 일이지만 다섯 바탕이니, 명창의 대가 오정숙이니 하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판소리를 동요나 가곡쯤으로 취급하고 배워보겠다고 덤벼든 내가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이 시점에서 판소리에 대해서 말해보라면 판소리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고 서슴없이 말하겠다. 우선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대중가요나 가곡과는 달랐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쥐가 소금 먹듯이 포기하지 않고 배우고 있다. 그냥 배울 뿐이다. 배우다 보니 조금씩 맛이 들고 있다.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혹시 국악을 하세요?”라고 많이들 묻는다. 아마 쪽진 내 머리모양새를 보고 그렇게들 묻는 것 같다. 사실 그렇게 물어오는 말이 싫진 않다. 그래서 머리스타일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처음엔 겁 없이 덤벼들었지만 지금 판소리는 나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수필과의 만남은 어떠했던가. 재작년 9월 코스모스 필 무렵 신문에 끼어온  핑크빛 전단지는 행촌수필과 나를 엮어준 오작교였다. 올 9월이면 만 2년이 된다. 그동안 등단이란 기쁨과 함께 여기저기 몇 권의 책에도 내 글이 실렸다. 생각할수록 참 신기하다. 내가 이렇게 해 낼 수 있다니, 지도해 주신 교수님의 덕이리라.  

겉은 화사해 보일지 모르나 속은 마치 골다공증환자처럼 허한 나에게 수필은 에스트로겐 호르몬제였으며, 닫힌 마음을 열어준 영혼의 양식이었다. 물론 밑바탕이 부족한 나에겐 벅찬 작업임엔 틀림없다.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나를 가꾸어 가고 있다. 희망을 안고 한 편 한 편 작품을 써내려갈 때 그 기쁨을 무엇에 비할쏜가. 늘그막에 얻어낸 보석을 장롱에 넣어 두진 않을 것이다. 보석은 치장했을 때 보석으로서 역할을 다 할 것이다. 생활 속, 내 가슴속에서 캐낸 보석을 책으로 엮어볼 생각이다. 머지않은 앞날에…….  
2008년 7월 15일. 1박 2일 동안 열릴 수필의 날은 오고야 말았다. 제8회 대구에서 열린 전국수필가교류대회. 드디어 나의 판소리가 수필의 날 덕에 대구로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대한문학  연말 총회에서도 한 번 경험한 바가 있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 감히 무명이란 이름을 붙이기조차 어색한 나에게 기회를 주다니, 본 행사에 판소리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신 분들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수필의 날 잔치마당에 판소리가 한몫을 한다는 생각에 몇 날밤을 설치며 마음을 다지고 다졌다.

글로 쓰는 수필이 소리 없는 내 영혼이라면, 판소리는 말 그대로 목청이라는 악기로 쓰는 역동적인 영육의 소리다. 그러니 수필과 판소리는 나라는 존재의 빛깔이 소리를 얻는 순간이 아닌가. 수필이 득음하는 순간이다. 수필과 판소리, 생각할수록 절묘한 찰떡궁합이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앞에서 11시 30분 출발. 여느 때보다 출발시간이 느지막해서 여유로웠다. 내 자리는 당연히 맨 뒷좌석이다. 42명의 행촌식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자리인가. 여왕이 된 기분으로, 오늘 행사 중 제4부에 부를 판소리대목을 중얼거리며 갔다. 그러다가 생각났다. 정월에 가계부를 샀더니 토정비결 부록이 딸려왔다. 재미로 내 생년월일에 맞춰서 운수를 한 번 점쳐 보았다.  
‘사람으로 인해 즐거움이 오고 사람으로 인해 화도 오리라. 7‧8월에 먼 길을 떠날 수, 동쪽으로 가면 금의환향할 수.’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믿지는 않지만 참 재미있지 않은가. 이현령비현령이라더니, 오늘 수필의 날을 맞아 대구에 가고 있는 나를 비유해서 한말 같아 기분이 좋으면서도 묘했다. 이렁저렁 벌써 대구에 도착했다.

즉시 프린스호텔 1103호실로 방을 배치 받아 한복으로 갈아입고 행사장으로 갔다. 7월 염천 더운 날임에도 완벽하게 준비한 주최 측의 노고에 머리가 숙여졌다. 1, 2, 3부 행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당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홍 모시치마에 하얀 모시적삼을 받쳐 입은 등에선 에어컨이 무색하리만치 실개천처럼 땀이 흘렀다. 1,000여개의 눈앞에서 그것도 최고의 지성인 수필가들 앞에서 식전에 소리를 부른다는 것이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군다나 행촌수필문학회의 이름이 걸린 일이라서 저녁식사 생각도 멀리 사라져 버렸다. 얼마나 긴장했으면 호텔 방 열쇠를 준다는 것이 이강애 언니한테 삼성카드를 주었겠는가.  

드디어 버선발로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예상외로 떨리지는 않았다. 쇼맨십 기질이 내게 있어서일까. 그것은 42명의 행촌회원들의 성원과 대회 경험이 많은 이수홍 회장님이 명고수라서 큰 힘이 되기도 했다. 나 또한 나름대로 품위 있고 당당하려고 애썼다. 춘향가 중에서 사랑가 한 대목을 이수홍 님과 같이 부르고나서 앙코르로 심봉사 황성 가는 대목을 내가 목청껏 불렀다. 청중의 박수에 온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팀별 장기자랑에서 쟁쟁한 명고수 이수홍 님을 비롯하여 5명이 출연하였다. 물경 4만원을 투자해서 한복차림을 한 임두환 님, 박귀덕 님, 김금례 님, 형효순 님, 그리고 나, 이렇게 행촌을 대표한 6인조의 열연과 더불어 행촌회원들의 들끓는 추임새에 힘입어 당당히 1등을 차지한 것 또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다음날이었다. 그야말로 수필가교류대회였다. 아침을 먹으면서나 로비, 심지어 화장실 같은 데서 마주칠 때마다 찬사와 눈인사를 건네며 말을 걸어왔다.  그럴 때마다 웃음이 넘쳤지만 억누르고 억눌렀다. 몇 분한테서 e메일주소와 명함도 받았다. 아직 메일은 못 보냈지만 앞으로 보낼 생각이다.

수필과 판소리의 만남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는 나를 업그레이드 시킨 계기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소리 없는 수필에 소리를 달아준 이번 판소리 한마당 체험으로 인해 나의 수필은 좀 더 내밀한 가사를 써야 하리라는 것을 나에게 각인시켰다.  


                               (2008.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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