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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정원정
작성일 2008-07-21 (월) 11:43
ㆍ추천: 0  ㆍ조회: 3398      
어찌 그 언니를 잊으랴(2)
어찌 그 언니를 잊으랴 (2)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정원정

                                                       

 그 언니의 처소는 본채의 뒤뜰, 큰 장독대 뒤 몇 계단 아래에 있는 별채였다. 뒤도 옆도 소나무 밭이었다. 바람 부는 날엔 솔가지 흔들리는 소리가 윙윙거렸다. 그곳은 다붓한 산촌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옆방에 나이 지긋한 유모가 기거하고 있어서 의지가 되었다. 혼자  쓰고 있는 언니 방에 나는 수시로 드나들며 언니의 벗이 되었다. 더러, 빌려 읽은 책 중 일본 소설 ‘제2의 접문’(第2의 接吻)이 생각난다. 다섯 살 아래인 내가 그 언니의 상대나 되겠는가마는 잘해 주니 소갈머리 없이 끄덕하면 찾아 갔었다.
한 번은 밤에 내가 집에 돌아오려는데 장광의 큰 항아리에서 고추장을 대접보다 큰 기명(器皿)에 넉넉하게 퍼 담고 또 어디에서 김장김치를 수북하게 담아서 내게 주어서 가져 왔다. 집안이 넓어서 어느 구석에서 누가 뭣을 하는지도 모르지만,  그의 어머니도 모르게 한 일이었다. 우리 집이 가난해서 퍼 준 것이다. 일하는 아랫사람들이 많아서 그 언니가 손수 일거리를 챙기는 처지가 아닌데도 이리저리 찾아서 아무도 모르게 그릇에 담아준 그 반찬을 잊을 수가 없다. 아쉬운 것 없이 푼푼하게 사는데도, 없이 사는 사람의 사정을 살필 줄 아는 고운 마음이 나이든 지금도 여전하다. 그 언니는 지금 서울에서 유복하게 산다. 지금 85세다. 언젠가  내가  쓴 글로 책을 낼 예정이라 했더니 가끔
“책 언제 나오니?”하고 묻곤 한다.
언니가 오래 건강해서 내 수필집을 꼭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가장 행복하게 추억되는 때가 그 언니와 함께했던 내 소녀시절이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만 나온 나는 밖의 세계는 전혀 구경도 못한 때 부잣집 언니가 그렇게 귀티 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도시에서 여학교까지 나온 그 언니의 하나하나를 배워 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 시기가 길지를 않았다. 언니가 서울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다. 원 식솔은 그대로 시골에 남고 언니와 학교 다니는 그의 동생들, 일하는 아주머니만 이사를 했다. 그 언니는 가끔 내게,
“내가 결혼하면 너를 도시로 데려가 주마. 너는 시골에 있기에는 아까운 아이야.”
언니는 보잘 것 없는 나에게 희망을 갖게 했다.

그 언니가 서울 돈암동으로 이사하기 전 일이다. 결혼 준비용품을 내가 많이 만들어 주었다. 손수건과 골무였다. 그 시절에는 과년한 처녀들은 혼숫감으로 골무, 실패, 손수건, 실, 바늘, 반짇고리 등을 챙겼다. 그 언니야 부잣집이니 오죽 넉넉하게 했겠는가. 손수건과 골무 재료는 다 언니가 마련해 주었다. 손수건은 바탕이 하얀 명주였다. 집에 가지고 가서 며칠 동안 정성 들여 만들었다. 원단을 알맞게 사각으로 자른 다음 가장자리를 2㎝접고 올을 뽑은 자리에 띄엄띄엄 홈쳐서 시침질을 하면 태갈 좋은 손수건이 된다. 그만 해도 완성품으로 모자람이 없었지만 나는 마음에 차지 않아 구석에다 수를 놓았다. 그림은 책의 삽화에서 땄다. 나뭇가지에 만개한 진달래 한 송이와 봉오리 한 송이를 그려 색실로 안팎을 똑 같이 수를 놓고 보면 내가 봐도 명품이 되었다.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모습도 수를 놓았다.    골무도 언니가 예쁜 비단을 주면 집에 가지고 와서 광목천을 몇 겹 풀칠해서 말린 다음, 골무 형태를 본떠서 가위질을 한다. 그 위에 비단을 입혀 인두질을 해서 두 쪽을 맞붙여 손가락 들어갈 자리는 비워 두고 X자로 홈질을 하면 앙증스런 완성품이 된다. 천이 고와서인지 골무에 수놓은 기억은 아령칙하다. 그렇게 만든 것을 가지고 가면 언니는 아주 좋아하며 칭찬해 주었다. 손수건은 몇 십 개는 되었고 골무는 백 개가 넘었을 성싶다. 10개씩 묶어 한 죽씩 가지런히 놓으면 참 예뻤다. 한꺼번에 만든 게 아니고 여러 차례 만든 기억이 난다. 언니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즐겁게 했다. 그러다가 언니는 서울로 간 것이다.
언니가 서울로 간 뒤 나는 늘 외로움을 탔다. 서로가 편지를 주고받는 걸로 위로를 받았지만 말이다. 어느 때는 소녀구락부(少女俱樂部)까지 사 보내 주었다. 그 언니가 보내준 편지를 지금도 상자에서 꺼내 보면 글씨를 어찌나 예쁘게 썼는지 모른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카피한 것이고 원문은 7,8년 전에 언니에게 갖다 주었다. 혹시라도 자서전을 낼 경우 첨부하시라고 해서였다.
 
이윽고 언니가 결혼한다는 소식이 왔다. 결혼식은 시골집의 동산 마당에서 전통예식으로 치르게 되었다. 그 언니 21세 때인 음력 10월 8일이었다. 전날도 뒷날도 나는 언니 곁에서 맴돌았다. 언니의 말 상대는 나 외엔 아무도 없었으니까. 결혼 첫날밤을 넘긴 그 이튿날 언니와 나는 뒷동산 소나무 아래에 나란히 앉았다. 언니의 큰 눈이 쌍까풀로  피곤해 보였다.
“내가 어젯밤에 그이한테 네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친구들이 늦게까지 술을 먹여서 곤드레만드레 취해 들어 와서 못했다…….”  
언니의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나는 속으로 놀랐다. 나를 도시로 데려가서 후원하자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렴 결혼 첫날밤에 시골구석에 사는 못난 아이의 신변을 말하다니,  술에 취한 게 다행이다 싶었다. 어린 마음에도 계면쩍었다.

이 글을 쓰다가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몸이 많이 안 좋다고 했다. 언제 만나자며,  
 “너 지금 몇 살이지?”
생뚱맞게 내 나이를 물었다.
 “80이예요.”
 “아직 멀었다.”
 ‧……
 “어서 가서 김 박사(작고한 남편)를 만나고 싶다.”
언제나 했던 것처럼 그 말씀을 또 했다. 생전에 얼마나 정답게 살았으면 저럴 수 있을까 싶어 행복한 넋두리로 들렸다.
“저 세상에 가서도 우리 함께 만나자…….”
여전히 언니의 음성은 20대처럼 고왔다.
                                                   (2008.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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