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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형효순
작성일 2008-07-20 (일) 19:14
ㆍ추천: 0  ㆍ조회: 3313      
수필이 맺어준 인연
수필이 맺어준 인연
-제8회 수필의 날 참관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형효순


더위가 한창인 7월 15일부터 대구에서 1박 2일로 열리는 ‘제8회 수필의 날’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렀다. 아니 일주일 전부터 행촌수필문학회 장기자랑 노래연습을 하려고 서너 차례 남원에서 전주까지 다녔다. 아직 행촌수필문학회 새내기인 내가 이런 막중한 자리에 나가려니 쑥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연습을 하려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103강의실에 들어서니 이미 얼굴을 익힌 반가운 분들과 처음 뵙는 분들도 있었다.

42명의 일행을 태운 버스는 녹음이 짙은 들판과 산 그리고 아름다운 계곡을 지나 2시간 반 만에 우리 일행을 대구에 데려다 놓았다. 프린스호텔에 여장을 풀기 무섭게 장기자랑에 나가고자 화장을 서둘렀다. 긴 속눈썹을 붙이고 진홍색 입술연지를 바르며 머리에는 젤을 듬뿍 묻혀 억지로 쪽을 지고 비녀를 꽂았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두 분과는 대조적으로 나는 분명히 나인데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막상 내가 화장을 하고 염천에 한복을 입으니 무대에 서는 기성 배우들의 노고가 생각되어 실소를 터뜨렸다. 더구나 이런 차림으로 행사장에서 모든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했다. 맵시가 고와 아름답다면 특별한 차림이 주위의 시선을 끌어도 편할 텐데 생전 처음 억지로 쪽을 찐 뒤통수가 부끄러워 편치 못했다. 친정어머니의 아름다운 쪽진 머리를 내게 절반이라도 나눠 주실 것이지, 나는 아버지를 닮아 뒤통수가 불거진 편이고 어머니는 늘 그런 내 뒤통수에 고집이 들어 있다고 나무라셨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전국에서 모인 500여명의 수필가들에게 보여준 것을, 차라리 내 불편한 심정을 거둬내고 이것도 수필로 가기 위한 고난이라고 생각하니 편안해졌다. 그제야 평소 책에서만 읽고 만나고 싶던 기라성 같은 수필가들의 얼굴이 보였다
 
드디어 우리 행촌수필문학회의 장기자랑 순서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진도아리랑을 불렀다. 떨리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선창을 해야 하니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다행히 세 분은 국악을 배운 분들이니 나는 열심히 흉내만 내는 것으로도 묻혀가겠지 하는 믿음이 있는데다가 앞서 명고수 님과 해바라기 님의 멋진 판소리 축하공연이 있었던 터라 사실 마음이 편안했다. 그래도 나는 이열치열 수필열이 된 무대에서 명창(?)이 되어 진도아리랑을 열심히 불렀다. 아니 수필을 목청껏 불렀다고나 할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덥다는 대구에 모인 것일까? 수필은 내게 무엇이고, 왜 써야만 하는가? 나는 늘 이런 화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내 고민과는 달리 이날 모인 수필가들의 얼굴에는 그런 고민 같은 것은 없어 보였다. 모두가 맑고 밝은 얼굴들이었다.
어려운 세상을 살면서 수필을 쓰면 마음이 정화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너무 먼 곳에 있나보다. 내 마음 한쪽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남아 있다. 칠월 염천에 속바지, 속치마, 버선에 꽃신까지 신고 무대에서 아리랑이 아닌 수필을 노래하였으니 그 인연으로라도 그리 헤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신 분 모두가 자기 이름이 씌어진 명찰을 가슴에 걸고 있었다. 바로 그것이었을까! 나 자신을 보여주는 것,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것, 쓰는 것이 숙명 같은 숙제를 안고 실을 잦듯이 풀어내기 위해서 몇 날 며칠을 남모르게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닐까? 옆 사람 명찰을 보니 '강여울'이라고 씌어 있었다. 예쁜 이름이었다. 부모님이 여울처럼 아름답게 살기를 바라면서 지어준 이름이리라.
우리는 누구나 자기의 이름에 맞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저마다 같으면서도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게 우리다. 한 번뿐인 삶을 아름답게 살고 싶어 우리는 이 더위 속에 한 곳에 모여 수필잔치를 벌이고 있다. 수필이 수필다운 명 수필을 단 세 편만 쓰고 죽어도 괜찮다고 하는 걸 보면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둘째 날, 방짜유기박물관 견학을 가서였다. 걷다가 보니 이응백 선생님 곁에 나란히 서게 되었다. 선생님은 홀로 걷기에는 불편하신 듯했다. 곁에 어느 문우님이 정성을 다해 부축하고 다녔는데 어쩌다 보니 선생님이 홀로 서 계셨다. 용기를 내어 선생님 손을 잡았다. 선생님의 눈빛은 다정했고 손도 따뜻했다. 앞서 부축했던 분이 선선히 내게 선생님 곁을 양보해 주었다. 한참 동안 다정한 연인처럼 손을 꼭 잡고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다녔다. 아주 오래 전부터 알던 친구처럼,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수필이 내게 가져다 준 행복이었다. 헤어지면서 애잔한 마음이 든 것은 어쩌면 다시 만날 수 없을지 모르는 짧은 인연 때문일 것이다.

. 방짜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78:22로 정확하게 섞어야 한다. 한 덩어리의 검은 놋쇠가 여러 번 담금질을 통해서 수없이 두들겨 맞아야 하나의 유기그릇으로 탄생된다. 뜨거운 불에 제 몸을 녹이고 굳어진 다음 두들겨 맞아야 비로소 아름다운 반상기도 되고 제기도 되며 놋 양푼도 되고 놋수저도 된다. 놋수저 하나 만들어지는 과정도 360번을 두드려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천천히 닦을수록 빛을 발한다. 나는 과연 수필 한 편을 쓰기 위해 두들기고 다시 불에 녹이는 작업을 제대로 했을까. 찬란한 금빛으로 태어나 아름답게 제 구실을 하는 유기들을 바라보면서 진지하게 수필을 생각해 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하나같이 알고 있는 수필에 대한 열망과 글쓰기, 모두가 어렵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써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모인 수필가들, 유기를 만드는 마음으로 한 편의 고운 수필이 빚어지기를 바란다.

동화사 견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는 또다시 행운을 만났다. 잘 생긴 소나무 숲을 내려오다 보니 옆에서 윤재천 선생님이 발을 맞춰 주셨다. 선생님은 여전히 청바지차림이었다. 나는 소녀처럼 가슴이 뛰었다. 칠순이 훨씬 넘으신 선생님의 목소리는 아직도 매혹적이었다. 선생님과 몇 십 보 거리의 짧은 만남도 수필이 맺어 준 인연이 아닐까?
대구에서 열린 제8회 수필의 날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나는 방짜유기로 만든 징 소리 같이 울림이 긴 수필 한 편을 쓰고 싶다.
                                   (2008년 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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