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때가 되어 가게에 들어서니 눈이 매웠다. 무슨 냄새도 났다. 얼굴을 찡그리며 남편에게 물으니 옆집 건강원에서 양파를 달인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랐다. 서울 어느 병원에 있어야할 아저씨였다.
어제는 그 아저씨의 건강원 문이 닫혀 있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부부가 겨울이면 호박을 달이고, 여름이면 양파를 달이며, 가을이면 포도를 달이는 집인데, 참 별일이었다. 어디 아픈가, 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궁금해 하며 여러 번 문이 열렸나 내다보았다.
나른한 오후시간이면 감자나 고구마를 쪘다고 가져오고, 비라도 오는 날이면 부침개를 가져오거나 수박을 샀다며 살며시 놓고 가기도 했었다. 어쩌다 그 집 앞을 지나다 보면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이면서 흐뭇해하는 부부, 자식 입에 먹을 것 넣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옛 어른들의 이야기가 그곳에 있었다.
해질녘 그 아저씨 친구가 찾아 와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지난주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위암이라고 했단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서울로 재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무슨 소식을 알고 있을까 기다릴 수가 없어서 우리 집으로 왔단다.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어제까지 열심히 일하 던, 세상에 아무 불만이 없는 표정으로 살던 그 아저씨가 암이라면 어떻게 하나,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까, 수술하면 병문안이라도 가야지 생각하니, 요즘 나를 놀라게 하는 일들이 많았다.
육십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성당 식구, 대장 내시경을 받으러 같이 갔던 성곤이 엄마의 대장암, 십년 넘게 한 아파트에 살며, 1년이면 하루씩은 의무적으로 한 이불 덮고 자며 놀던 친구 희정이의 갑상선암 수술, 병원에서 이제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으니 편한 곳에 가서 쉬라고 했다며 내가 봉사활동을 하러 다녔던 말기 암 환자만 가는 ‘성 바오로 복지병원’ 으로 가면 좋겠느냐고 물어오는 남편친구 부인…….
문득 장례미사 때 신부님께서 하신 강론 말씀이 생각났다. 내가 만약 내일 죽어야 한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보라고.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지난날을 생각하며 후회만 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을 원망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무엇을 남기려고 쓸데없는 애도 쓸 것이다.
그러나 해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궁금해서 안절부절 자기 집 앞을 기웃거리는 우리에게, 요새 무슨 암 환자가 그렇게 많은지 칠월로 수술날짜를 잡아놓고 왔다며 씨-익 웃는 아저씨, 나는 화가 났다. 수술할 사람이 이렇게 일만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일 좀 그만 하라고, 왜 그렇게 미련스럽냐고 소리를 쳐 버렸다.
애써 외면하며, 일을 안 하면 더 아프다며 그냥 일을 하다가 수술 날 병원에 가면 된다고 말하는, 숯덩이가 되었을 그 가슴에 무슨 위로가 필요하겠는가. 내 눈에 눈물이 고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암, 그 죽일 놈의 암이 그 아저씨에게서 그냥 떠나버렸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오늘도 양파를 그득 쌓아놓고 눈물을 흘리며 껍질을 벗기고, 씻어서 솥에 넣는 그 아저씨의 등을 바라보는 나에게는, 기도 제목이 하나 더 늘었다.
“내일도 오늘처럼!”
(2008.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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