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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김수영
작성일 2008-07-07 (월) 14:35
ㆍ추천: 0  ㆍ조회: 3365      
미꾸라지 도시생활 적응기
미꾸라지 도시생활 적응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수영



미꾸라지들이 우리 식구와 같이 살게된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금붕어 다섯 마리와 우렁이 한 마리가 사는 돌확에 미꾸라지 세 마리가 이사를 왔다. 진안 논두렁에서 땅짚고 헤엄치다 생전 처음 승용차를 타고 바가지에 담겨져 도시로 온 것이다. 소위 진안 촌놈이다. 친정 아버지께서 추어탕을 끓일 요량으로 잡아온 미꾸라지 중 작고 튼실한 놈들로 골라서 가져 왔다. 7살 난 딸과 5살 난 아들은 신기해하기도 하고 징그러워하기도 하면서 마냥 좋아했다.

 미꾸라지 가라사대 "우리는 이사를 온 게 아니라 강제 이주를 당했다구요. 난 그냥 내 집 논두렁이 좋았는데. 우릴 그냥 내 고향으로 돌려 보내주세요."

한 식구가 된 미꾸라지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기로 했다. 생김새, 크기, 색깔, 선명도등 언뜻 보면 헷갈리지만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분할 수 있었다. 두 녀석은 골격이랄까, 생김새가 예쁘고 가녀린 게 암컷 같았다. 그 중에 제일 색이 연하고 마른 녀석을 '미꾸'라고 이름지었다. 그리고 미꾸보다 조금 살이 붙고 색이 짙은 녀석을 '꾸라', 마지막으로 제일 크고 검은 점이 선명하며 수컷 같은 녀석을 '라지'로 부르기로 했다. 자식이 셋이나 생겨 뿌듯하고 할 일도 더 생겼다.

첫날 미꾸라지들은 신경전이 대단했다. 생전 처음 보는 금붕어 다섯 마리의 텃세에 눌려 소라껍데기 밑이나 조약돌 밑으로 숨기 바빴다. 과연 미꾸라지들이 있긴 있는 건가 할 정도로. 금붕어 밥도 거르면서 나와의 숨박꼭질에만 전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해나 살았나 모르지만 제 여짓껏 살아온 환경도 순식간에 바뀌어 혼란스러울 텐데. 화려찬란한 물고기들이 운동부족으로 아랫배가 터질 듯 비만이다. 미꾸라지는 저 짜리몽땅한 금붕어들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미꾸라지 曰 "난 정말이지 세상에 저렇게 작고 뚱뚱한 모습은 처음 봤다구요. 그 몸으로 헤엄을 치다니. 헤엄을 치지 않았다면 물고기인 줄도 몰랐을 걸요. 게다가 저 요란한 색깔은 뭔지."


물고기 밥을 주어도 금붕어들만 신나게 먹을 뿐 미꾸라지들은 여전히 그림자처럼 제 모습을 내보이지 않았다. 간혹 열심히 숨었는데 조약돌 사이로 꼬리가 훤히 비칠 때면 나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모랫속에서 얼굴만 빼곰히 수염을 세울라치면 그 조그만한 얼굴이 얼마나 귀엽던지. 그런 녀석들이 늦은 저녁 탈출을 감행했다. 돌확 밖으로 한 놈이 뛰쳐 나와 있었다. 징그러움을 무릅쓰고 후다닥 맨손으로 그 놈을 잡아 돌확에 넣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또 한 놈이 거실 바닥에 나뒹굴다 내게 발각되었다. 이번엔 탈출시간이 좀 되었는지 손킅에 만져지는 미꾸라지 피부가 조금 말라 있었다. 요놈들. 이번엔 저도 십년감수했는지 물에 입수되자 마자 줄행랑을 치며 숨어 버렸다. 다행히 이사온 첫날 밤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꾸라' 曰  "당신 자는 내내 우린 불안해 죽는 줄 알았다구요. 어떻게 집에 가야하는지. 날 기다릴 다슬기며 송수라지, 피라미 등 내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배도 고픈데."

 사나흘이 지나자 미꾸라지들이 조금씩 적응되었나 이젠 헤엄도 치고 주변도 살피기 시작했다. 돌확으로 헤엄쳐 올라가다 스르르 미끄러지는 모습도 목격되었다. 미꾸라지 저희들에겐 진지하거나 혹 목숨을  건 일일지라도 솔직히 난 우스워 죽는 줄 알았다. 잘 사는 저희들을 가둬두고 나 혼자 즐기는 모습이라니, 나도 21세기의 이기적인 인간의 전형이었다. 그래도 추어탕이 될 신세를 면해줬으니 뜨거운 가마솥보다는 낫지 않겠나 하는 거만한 아량을 내비쳐 보았다.

며칠을 굶은 미꾸라지녀석들. 날로 만삭을 자랑하는 금붕어들과는 달리 가냘픈 미꾸라지는 더 말라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2주가 지날쯤 라지가 돌확에 붙은 금붕어 밥(사료)을 낼름 받아 먹고 종적을 감추었다. 눈 만큼이나 큰 금붕어 입과 달리 작은 얼굴보다 더 작은 입으로 사료를 낼름 먹고 돌아가는데 정말 순식간이었다. 그리곤 꾸라와 라지는 이젠 금붕어들을 제치고 한 번씩 두 번씩 식량을 사수했다. 수줍은 미꾸는 여전히 조약돌 사이에 숨어 상황만 지켜볼 뿐이었다. 꾸라와 라지는 금붕어들과 달리 결코 과식을 하지 않았다. 배골이 작아서일까. 아니면 아직도 낯설어서일까. 여하튼 미꾸라지 식사가 해결되어 다행이었다. 이래저래 더 지켜보다 굶어죽게 되면 그들의 고향으로 되돌려 보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라지 曰 "그 동안 낯설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배고픔이었어요. 진짜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구요. 도저히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어요. 어떻게든 살아야겠구나. 그래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금붕어 밥을 먹었지요. 모기 유충보단 훨씬 못해도 먹을 만하더군요. 이런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니 금붕어들이 살찌는 건 당연하겠구나 싶더군요."

미꾸라지들이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도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그런 어느 날 아침, 금붕어1이 시체로 떠올랐다. 실로 우울한 아침이었다. 아이들이 깨기 전 서둘러 금붕어1을 건져내 녹차 나무 아래 묻었다. 잠시 돌확 앞에 앉아 금붕어1에 대한 조문 명상에 잠겼다. 미꾸라지들에게 텃세를 부리며 포식한 줄 알았는데 어쩌면 금붕어들에게도 낯설긴 마찬가지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붕어들이 보기엔 미꾸라지 역시 삐쩍 마르고 기다란 모습에 "쟤네들도 물고기 맞아?"라며 이상해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금붕어1이 우리 곁을 떠났다. 돌확엔 이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지극히 일상적인 아침을 맞이했다.

이젠 미꾸라지들도 숨바꼭질만 하지 않고 온몸을 드러내 놀기도 하고 금붕어밥도 같이먹었다. 금붕어들도 여전히 같이 먹는다. 금붕어들도 여전히 복부비만이고 우렁이 한 마리도 돌확에 붙어서 잘도 논다. 평온하기 그지 없다. 저희들 속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이렇게 미꾸라지는 조금씩 진짜 우리 식구가 되었다.

금붕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물에서 헤엄치는 반면 미꾸라지들은 바닥에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탈없이 어울리고 있었다. 이에 있는 듯 없는 듯 우렁이 또한 이들과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내겐 잘난 자식이나 못난 자식이나 다 한 자식이둣 말이다.

우리 인간들도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돌확 같은 세상에 되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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