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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정장영
작성일 2008-07-05 (토) 09:24
ㆍ추천: 0  ㆍ조회: 3250      
삼굿
삼굿
전주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 반  정 장 영



여름철이 되어 시원한 옷을 차려 입으면 옛 농촌의 삼굿이 생각난다. 옛날엔 삼베옷 없이는 여름을 나기가 힘들었다. 넉넉한 사람들은 모시옷으로 멋을 부렸다. 하지만 나 또한 어린시절 삼베옷이면 여름 더위를 나기에 손색이 없었다.

굿이라고 하면 무슨 제사나 잔치 구경꺼리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삼굿’하면 옛날 마을 전체가 참여하는 연중행사의 하나였다. 다시 말해 삼(대마)을 베끼기 위하여 삼을 찌는데, 구덩이나 장방형 솥을 설치하여 삼을 삶고, 푹 잘 삶아진 삼을 베끼는 노력동원작업인 마을행사였다.

산업화가 되기 전 농촌은 가족의 의복과 경제적 수입 때문에 부녀자들이 길쌈의 굴레를 벗지 못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구호물자 덕으로 의복에 변화가 생겼고, 산업화가 촉진되면서 점차 길쌈이 사라져 갔다. 길쌈은 삼베, 무명베, 모시, 명주 짜기다. 삼베길쌈은 삼(대마)가꾸기와 삼굿, 다음 실을 만들어 날기와 그 실을 매서 도투마리에 감기, 마지막으로는 베틀에서 베 짜기였다. 쉴 날 없는 고달픈 품앗이였지만 길쌈은 여성들의 삶의 전부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삼은 봄에 씨를 뿌려 잘 가꾸면 한 여름에 키가 2ṃ쯤 자라 그 삼을 베어서 삼굿을 했다. 이 행사에서 온 마을 농가가 삼베길쌈 감(재료)을 생산하였다. 그리고 그 삼밭 가에 몇 십 그루 남겨두어 다음해 쓸 삼씨를 생산하고 그 밭에는 이모작으로 무나 배추 등 김장감을 가꾸었다.

“어머니, 오늘은 ○○,○○댁 삼굿이대.”
그런 소식을 전해들은 마을 노소들과 삼을 베낄 만한 사람들은 모두 모여들었다. 어제부터 불을 때기 시작한 삼굿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몇 개의 삼을 뽑아 베껴보아 잘 익었으면 삼 다발을 꺼내 삼을 베끼기 시작하였다.

많은 양의 일감이라 마을 전체가 협조하지 않으면 삼을 식기(냉각) 전에 베끼지 못한다. 식은 삼은 베끼기가 쉽지 않았다. 이 일을 일시에 처리하기위해서는 공동작업으로 끝날 때 까지 며칠씩이나 계속되었다. 시원한 개울가에 자리 잡고 베끼는데 손가락이 매우 아팠다. 그리고 베낀 삼은 주인을 찾아주고 남는 겨릅대는 베낀 사람 몫으로 가져가게 된다. 삼을 베끼고 난 뒤 생긴 겨릅대는 집을 짓거나 울타리를 만드는 등 농가의 살림에 쓰일 곳이 많았다.

그런데 이 행사 기간 중에 가끔 불상사가 일어난 적도 있었다. 뜨거운 삼굿에서 삼 다발을 꺼내는 과정에 삼이 굵고 베끼기 좋은 일감을 서로 먼저 차지하려다 발에 화상을 입은 사건이다. 화상으로 오래 고생을 하는 분이 생겼을 때는 문병을 다녀야했고, 마을사람들의 마음이 매우 편지 못했다. 삼굿이 끝나면 온 마을 곳곳에 삼 잎이 쌓였고 이를 퇴비로 쓰기도 했다. 오늘날 문제가 된 삼 잎(대마초)을 피우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때는 내가 어려서 그랬을까?

삼굿을 통하여 은연중 많은 것을 배웠다. 공동체의식과 상부상조정신은 물론 화목 단결한 작업장 분위기를 조성하여 괴롭고 지루함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킨 지혜인 것이다. 이제 이런 마을행사가 사라져 전통적인 우리네 미풍양속을 찾을 길조차 없다. 팽배한 이기주의가 난무하니 옛 조상의 슬기가 새삼 그리워지는 게 오늘날 우리 농촌현실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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