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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김길남
작성일 2008-07-05 (토) 06:50
ㆍ추천: 0  ㆍ조회: 3333      
다시 쓰는 냉장고
다시 쓰는 냉장고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길남


 

우리 집에는 냉장고가 세 대나 있다. 일반 냉장고 두 대에 김치냉장고가 하나다. 냉장고 둘 중 하나는 헌 것인데 중고 냉장고 집에서 싼 값으로 샀다. 사용하는데 아무 불편이 없고 새것이나 마찬가지다.

요즘 보면 버리는 물건이 많아 아깝다는 마음이 드는 때가 많다. 성성한 장롱이 버려지고 쓸 만한 책상이나 가구들도 나뒹근다. 아파트를 리모델링하는 집을 보면 헌 것은 거의 버리는 것 같다. 옛날 같으면 고급 가구로 취급 받을 물건들도 버린다. 우리 아파트만 보아도 그렇다. 어떤 때는 아직도 쓸 만한 텔레비전도 나오고 냉장고도 보인다. 새것 같은 응접세트와 소파도 버린다. 카세트도 있고 시계와 VTR도 있다. 새로운 것이 나오면 헌 것을 버리는 모양이다.

아내는 헌 것을 잘 주워 온다. 바둑판도 주워 오고 작은 책상도 가져 왔다. 아깝기도 하려니와 필요해서 가져온 것이다. 남이 볼까 봐 부끄럽기는 한 모양인데 가져다 쓰니 편리하다. 막둥이 아들이 청주의 네슬레라는 회사에 취직되어 자취를 시작할 때는 냉장고와 세탁기를 모두 중고로 사 주었다. 그래도 쓰는 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 결혼하면 새 며느리가 사 올 것을 새로 살 필요가 없어서 그러했지만 물건을 아끼는 마음이 남달라서다. 남이 버린 물병을 가져다 매실즙을 담고, 과일 상자는 주워다 아들딸에게 김치를 보낼 때 쓴다. 화분도 쓸만하면 주워다 키운다.

옛날에는 물자가 귀했다. 가구는 한 번 사면 몇 대를 물리며 썼고, 농기구도 다 닳아 없어지면 벼려서 다시 썼다. 옷을 만들거나 사면 헤어질 때까지 입었고 떨어지면 기워서 입었다. 버선은 떨어지면 기워 신는 것이 더 예뻐 보이기도 했다. 신발도 떨어질 때까지 신었고 기워 신기도 하였다. 약주를 담는 유리병이 생기면 보물단지 같이 아꼈다. 기름도 넣고 마른 곡식을 담는데 좋았으며 흔한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창문에 구멍을 내어 밖을 내다볼 수 있게 하려면 유리가 필요했다. 그 유리 조각도 귀해 애지중지했다. 실수로 그릇을 깨면 심한 꾸중을 들었다.

아끼는 데는 먹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음식을 남겨 버리는 일이 없었다. 시궁창에 밥풀이 보이면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심한 꾸중을 들었다. 다 먹은 밥그릇에 밥풀 하나만 붙어있어도 불호령이 떨어졌다. 마지막에는 물을 부어 깨끗이 마셔야 했다. 나도 그 버릇이 남아 지금도 거의 다 먹은 뒤 물을 말아 깨끗이 치운다.

마당에 널어놓은 곡식 몇 톨만 흘려도 다 주워 넣었고, 벼논의 이삭은 한 알도 버리지 않으려고 주웠다. 그게 이삭줍기다. 배추나 무 잎은 성한 것은 김치를 담그고, 누런 것은 말려 시래기로 썼다. 말라 비틀어진 고추 하나도 못 버리는 게 예전 어른들이었다. 가정에서 나오는 것은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었다. 음식 찌꺼기와 나뭇잎은 두엄자리에 버려 썩혀 퇴비를 만들었고, 그릇 씻은 물과 쌀뜨물은 구정물통에 모아 돼지에게 먹였다. 요즈음은 공해로 취급 받는 대소변도 큰 탱크에 모아 썩혀 거름으로 썼다. 쓰레기로 골치를 앓는 현대와는 달리 버리는 것이 없었다.

우리가 언제 그렇게 잘 살았던가. 언제부터 물건이 그렇게 흔해서 마구 버렸던가. 보릿고개를 넘긴지 30년이 못 된다. 한 달 수입이 20만 원도 못 되어 지하 쪽방에서 사는 사람이 많다. 먹을 것이 없어 하루 한 끼만 먹는 노인도 있다고 들었다. 점심을 못 먹어 방학 때에는 굶는 어린이도 있다고 한다. 국민소득이 2만 불이라지만 선진국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한다니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더 말할 수 없다. 북한에서는 보릿고개로 굶주리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도 1천 원만 가지면 1주일을 사는 데 그 돈이 없어 먹지 못하고 영양실조로 죽어간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한 쪽에서는 허기져 살고 다른 쪽에서는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는 게 현실이다. 없어서 못 쓰는 집과 남아서 함부로 버리는 집이 같은 하늘 아래에 있다. 그게 자본주의라지만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잘사는 사람이 함부로 버리는 것을 아껴 못 사는 사람을 도와주었으면 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빈부의 차를 줄일 수 없는지 기다려진다.                    (2008.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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