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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최윤
작성일 2008-07-03 (목) 09:22
ㆍ추천: 0  ㆍ조회: 2896      
영심 언니
영심 언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최윤


베란다 문을 열려다가 그 문 앞에 놓인 찻상을 보았다. 예쁜 꽃들이 그려진 그 찻상은 솜씨 좋은 영심 언니가 만든 것인데 이사 선물로 내게 준 것이다. 순간, 언니를 만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영심 언니가 전라남도로 이사를 간지 1년이 다 되었다.

영심 언니를 처음 만난 건 3년 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업을 함께 들으면서였다. 영심 언니는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었고, 난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퇴근 후, 아동학 수업을 함께 받으며 우리의 인연은 시작된 것이다. 난 아직도 처음 봤을 때의 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결혼 3년차 주부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허리까지 닿는 긴 생머리에 하얀 얼굴. 마치 그림에 나오는 기도하는 소녀처럼 생겼었다. 언니와 나는 처음엔 서먹하게 지내다가 미니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친해졌다. 서로의 미니 홈페이지에 드나들며 서로의 성격, 취미, 가족 관계 등등 모두를 파악하고서 친해지게 된 것이다.
언니는 내가 막 결혼을 했을 때 신랑이랑 부부싸움을 했던 이야기며 아직 생소한 시댁 이야기를 하소연하면 잘 들어주었고 조언과 격려도 해 주었다. 생각해 보니 언니가 내게 특별한 존재로 기억되는 이유는 내 인생의 가장 행복했고 외로웠던 시기에 함께 존재해 주었다는 이유가 크다.

예전에 상담학 수업을 들었을 때, 수업 내용 중에 ‘인생의 행복 점수 매기기’ 라는 것이 있었다. 자신이 살아 온 나이 별로 10점 만점 중, 알맞은 점수를 매겨보라는 그런 수업 내용이었다. 난 스물여덟, 아홉 살 무렵의 점수를 9점 정도를 주었다. 친정 부모님 아래서 아무 두려움 없이 지냈고, 떠나간 이도 없었으며, 미혼인 친구들이 전주에 머물렀고, 난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면 됐었다. 일하는 것이 힘들다고 불평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홀가분하고 행복에 겨운 생활들 이었다. 내가 힘든 일이 있으면 친정 가족들에게 언제든 불평할 수도 있었고, 함께 수다를 떠는 친구들도 늘 존재했었다. 정말 모든 것이 충만한 삶 이었다. 그러다 나도 결혼해서 친정을 떠나게 됐고, 친구들도 모두 결혼해 타지로 가서 아이를 낳자 전화 한 번 하기도 힘들만큼 정신없이 바빠져 그런 가족들과 친구들의 부재를 느끼고 힘들어했을 때, 그 외로웠던 마음을 영심 언니가 곁에서 채워주었던 것이다.
언니와의 시간이 행복했던 이유 중 또 하나는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몽상가 타입이었던 언니와 나 역시 철없는 몽상가여서 서로 죽이 잘 맞았다. 오죽하면 언니의 별명은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이고 나의 별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을까. 우리는 나이에 맞지 않게 현실에서 잠시 도피하여 상상의 나래를 펴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렇게 내게 힘이 되던 언니가 목포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원래 고향이기도 하고 직장을 그 곳으로 옮기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서운했다. 그러나 그 서운함이 그렇게 클 줄은 몰랐다. 나는 계속 평생교육원에서 무언가 배우러 계속 다녔지만 취미를 붙일 수 없었다. 내가 배우는 것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그 언니와 만나는 것이 좋았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다른 친구들도 사귀어 보았지만 그 언니만큼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가끔 전화도 하고 메일도 주고받지만 직접 만나는 것 같지는 못하다. 가까운 거리라 생각했지만 목포까지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벼르고 벼르던 차 방학특강을 받기 전, 일주일 간의 방학이 주어졌다. 방학이라기에 너무 짧지만 ‘방학’ 이라는 말이 나의 마음을 부추겼다. 그래서 난 맘먹고 언니를 찾아가기로 했다. 언니가 얼마 전 광주로 이사를 했기에 광주에서 만나기로 했다. 좀 늑장을 부렸는지 버스 시간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내가 조금 더 안 기다렸으면 1시간 더 기다릴 뻔 했다고 하셨다. 왠지 언니와 나의 만남을 위해 기다려 준 것 같다는 착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광주까지 가는 2시간 동안,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덧 광주에 도착했다. 광주 터미널에서 내려 영풍문고에서 책을 읽으며 좀 늦는다는 언니를 기다렸다. 요즘 나의 주된 관심사인 수필집이 있는 곳에서 서성이고 있자니 언니에게서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언니에게 가는 동안 내 마음은 1년이라는 부재중에 생겼을 서먹함에 대한 두려움과 또 설렘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지만 약속장소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마구 두근거려 오히려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졌다.
저 편에서 언니의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어제 만난 것처럼 반갑기만 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 자세히 보니 언니의 고운 얼굴은 많이 수척해졌다. 언니는 요즘 힘든 일을 겪고 있었다. 요사이 남편이 몸이 아팠고 직장도 옮기게 되었으며 결혼 5년 만에 얻은 그렇게 좋아하던 집에서도 이사하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차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너무 반가웠으나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언니가 힘든 일을 겪는데 인사치레라도 언니를 위로해야 하나 아님 평소의 나처럼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철부지처럼 투정해야 하나 하고 말이다.
난 별일도 아닌데 몇 가지 고민거리를 가지고 갔던 것이다. 1년 동안 언니에게만 말하고 싶었던 마음의 고민거리들을 나도 모르게 예전처럼 투정부리듯 언니에게 말하고 있었다. 언니는 현명하게 조언도 해주며 들어주었다. 자신도 견디기 힘든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점이 그 언니의 사람을 끄는 큰 매력이다.
나는 경험도 부족하고 판단력도 희미하여 언니에게 어떠한 위로도 조언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재회의 시간을 아쉬워하며 눈물 한 방울이 눈에 맺혔을 뿐이었다. 난 상담과정도 배웠으면서 왜 예전보다 더 언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야기 해주지 못했을까, 하는 마음이 문득 들었다. 눈물을 들키는 게 좀 부끄러웠던 나는 눈에 낀 콘텍트 렌즈 때문에 눈물이 난다면서 난 핑계를 댔다. 그렇게 아쉬운 시간을 마감하고 빠른 시일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계속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의 고민거리를 언니에게 두고 온 것 같은 미안함과 위로의 말조차 꺼내지 못한 나를 언니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언니를 만나서 행복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복잡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둘 다 행복한 시간이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언니와 나는 그리 길진 않지만 많은 추억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행복했던 기억, 슬픈 기억, 망각되었을 수도 있는 기억 모두다.

그날 밤, 오랜만의 여행 때문에 피곤해서인지 아니면 언니를 만난 반가움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잠이 오질 않았다.
난 3년 전 언니와 함께 듣던 상담학 시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발표하던 긴 머리 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 옆에서 다음 있을 나의 발표 준비를 하며 긴장했던 지금보다는 조금 더 앳된 내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차를 처음으로 운전하여 평생교육원에 가지고 간 날, 비가 엄청 내려서 운전하는 것을 무서워하자 행정실에서 종이와 펜을 빌려 차 뒤에다 ‘초보운전’이라 써 붙여 주며,
“이것만 있으면 다른 차들이 알아서 피해가니까 괜찮을 거야, 걱정 마.”
하던 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막 결혼하여 집들이를 했을 때 화장지를 들고 찾아왔던 언니의 모습도 생각났다.
아직도 난 언니에게 어떤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모른다. 전화도 할 수 없고 문자도 보낼 수 없다. 하지만 늘 언니 생각을 한다. 그런 내 마음이 언니에게 통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콘텍트 렌즈도 눈에서 뺐건만 왜 이리 눈물이 나는 것일까?
‘언니의 앞날에 행복만이 있길 바랍니다.’ 하고 미니 홈페이지 방명록에 상투적인 댓글을 남겼다. 미사여구 없이 건조해 보여도 괜찮다. 그 말 안에는 언니의 행복을 바라는 나의 마음이 가득 담겨있기에 그 글을 보는 언니는 환하게 웃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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