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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공순혜
작성일 2008-07-02 (수) 16:30
ㆍ추천: 0  ㆍ조회: 3242      
골목안 사람들
골목안 사람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목요반  공순혜


 우리 집에 오려면 긴 골목을 지나야 한다.  골목에 들어서면 첫 번째로 화선이 형님집이 있다. 온갖 나무들이 쏟아내는 산소 때문에 기분이 상쾌하기 그지없다.  요즘에는 석류꽃이 한창이다. 작은 아씨 같은 이 석류꽃들을 보면 기분이 괜스fp 좋아진다. 그 작은 꽃에서 어떻게 그렇게 큰 열매를 맺는지 모르겠다. 꽃의 생김새가 어여쁜 여인 같아서인지 그 열매가 여성의 몸에 좋다니 그럴 것 같다.
 조금 있으면 대추나무, 모과나무들이 열매를 맺기 시작해 담장 밖까지 나온다.  앵두와 파리똥 열매도 빨갛게 익어갈 것이다. 앵두가 익으면 한 바구니 따서 우리 집으로 가지고 오신다.
“동생 먹어봐!”
하시면서 동생같이 예쁘고 귀엽다고 하신다.
 가을에 모과가 익으면 반질반질 제일 윤기가 나는 것으로 골라왔다며 또 한 바구니 가득 가져다주신다.  몇 년 전 우리 아들 결혼 때 이 모과로 모과주를 담가 손님들을 대접했더니 약사가 담근 약술이라며 모두들 좋아하고 많이 마시면서 흥을 돋웠다.

 집안은 항상 깔끔하고 온갖 화분들이 진열되어 있어서 화선이 형님 집에 들어가면 마치 어느 수목원을 찾은 것 같다. 자식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도 우리들의 본보기다.  허리가 굽어 일하기도 불편한데도 일요일마다 아들과 손자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손수 만들어 놓고 기다린다. 아들도 공기업의 중견간부지만 항상 겸손하고 자식으로서의 도리에 충실한 이 시대에 보기 드문 모범가장이다.

 화선이 형님 집 위에는 미선이네 집이 있다.  거기도 모과나무가 흐드러져 담장 밖 골목에도 그늘을 드리워준다. 이 골목길을 오노라면 햇볕이 쨍쨍한 여름에도 더운 줄을 모른다.  미선이 엄마는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푸짐하다.  실제로 이 골목에서는 제일 부자다. 가을이면 모과를 장대로 따 나에게 차를 끓여 마시라며 한 바구니를 준다.  그래서 나는 이듬해 늦은 봄까지 모과차를 즐긴다.

 그 옆은 교회집사의 집이다.  이 집은 개들을 많이 키운다. 골목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면 여러 마리의 개들이 짖어대는 통에 웬만히 간 큰 사람이 아니면 이 집 앞을 지나기가 두렵단다. 그러나 우리 골목안 사람들은 이렇게 우리를 지켜주는 개들이 있어 든든하다. 그 옆집은 목소리 큰 할머니 집이다. 그래도 대문 위에는 빨간 장미꽃이 만발하여 골목을 장미정원같이 향기롭게 만들어 준다. 할머니는 골목 중간에 턱 버티고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점검한다. 오늘은 어디 가느냐, 어제는 어디를 갔었느냐고 묻는다. 한 번은 우리 옆방 할머니가 잔뜩 화가 나서 들어왔다. 사연인즉 자기가 무엇인데 남의 사생활을 일일이 간섭하며 캐묻는지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노인들끼리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그 옆집은 새댁집이다. 내가 이 집으로 이사 올 때만 해도 갓 결혼한 새댁이었는데 아이가 둘이나 되었다.  아이 둘을 업고 손잡고 행복해하며 외출한다. 새댁 집에도 석류꽃이 한창이어서 보기 좋다. 맨 끝집이 우리 집이다. 이 골목의 파수꾼처럼 집도 담장도 튼튼하다.  
우리 웃집에 예슬이 식구가 산다. 모든 가족이 성실하게 자기 직분들을 잘 지키며 살고 있다.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은 학교로 부부는 일터로 나간다. 저녁시간에는 귀가하여 각자 자신의 일들을 열심히 한다.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집이다.  밤에 우리 복돌이가 짖어대면 무슨 일이 있느냐고 창문을 열고 물어온다. 그래서 나는 항상 든든하다. 이런 좋은 이웃이 있어서다.  그 옆집에는 항상 청바지에 모자를 눌러쓰고 다니는 수수하고 성실한 여대생 아가씨가 있다.  컴퓨터를 잘못하는 나를 위해 언제고 기꺼이 봉사해주는 고마운 아가씨다.

 목소리가 큰 할머니 집, 새댁 집, 우리 집 모두 개를 키운다.  골목에 낯모르는 침입자가 나타나면 교회집사네 개들을 위시해 모든 개들이 일제히 골목이 떠나갈듯 짖어댄다.  
얼마 전 우리 외손자와 외손녀가 왔을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골목에 들어섰을 때 나는 애들이 왔구나 하고 미리 알아차렸다. 또 전에는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 내 약사친구가 물어물어 우리 집엘 왔는데 어찌나 개들이 짖어대는지 무서워서 인터폰도 누를 수 없어 그냥 돌아가서 내게 엽서를 보내왔다. 그 골목은 어째서 그렇게 집집마다 개들을 키우느냐고.  무서워서 두 번은 못 가겠노라고 혼이 다 달아날 번했다고. 칠십이 넘은 약사님이 얼마나 개들이 짖어댔으면 인터폰도 못 눌렀을까를 생각하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개들이 짖어대고 대추나무와 모과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석류꽃과 장미꽃이 반겨주며, 모과와 상추 같은 푸성귀를 나눠먹고, 서로 도와주고 지켜주는 정다운 이 골목사람들을 나는 사랑한다.  사람 사는 정과 냄새가 넘쳐나는 이곳이 시멘트에 갇혀 사는 아파트의 편리보다 더 그립고 정답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이 골목길이 버텨줄지 모르지만 내가 떠나기 전에는 지금처럼 여기에 그대로 있어주길 바랄뿐이다.
                               (200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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