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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김길남
작성일 2008-07-02 (수) 07:44
ㆍ추천: 0  ㆍ조회: 3179      
허공으로 사라진 총소리
허공으로 사라진 총소리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길남


 


사촌형이 있었다. 이름은 ‘삼식'이고 우리 집에서 살다시피 한 다정한 형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우리가 외롭게 사는 것을 알고 자주 찾아 온 형이었다. 우리들과 장난도 잘 치고 어머님과 농담도 잘 하였다.

6‧25전쟁이 터지고 청년들이 국군에 갈 때 지원해 간 사람은 드물었다. 죽음이 눈앞인데 누가 자원하려 할 것인가. 안 가려 하니 경찰이 나와 청년들을 잡아가는 경향이었다.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도망다니고 숨는 것이 보통이었다. 사촌형은 지원은 안 했지만 도망가지도 않았다. 우리 집에 있다가 경찰이 오니 순순히 따라 가 국군이 되었다. 순경을 따라가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고 중부전선의 3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되어 전투에 임했다. 총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속에서도 하늘이 도왔던지 다치지 않고 2년을 넘겼다. 모든 전선에서 일진일퇴하며 휴전협정을 맺을 때 휴가를 얻어 집에 왔었다. 총도 가지고 나와 나도 들어보고 만져보기도 하였다. 집안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큰 형은 사상범의 꼬임에 넘어가 죽고 살림살이는 어려웠다. 형은‘내 이럴 줄 알았다'며 걱정하였다. 마음이 상하였던지 총을 가지고 마을 뒤 넓은 벌판으로 나가 하늘에 대고 마구 쏘았다.‘탕 탕 탕 탕’ 그 소리가 요란했다. 응어리진 마음을 총을 쏘아 풀어보려 하였다. 며칠 간 같이 지내며 전쟁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럭저럭 열흘이 지나 귀대할 날이 돌아 왔다. 작별 인사를 하고 학교에 갔다.

중학교에 다니던 때라 학교에 갔다 오면서 동익산에서 먼 빛으로 귀대하는 형을 보았다. 길 건너에 계란 한 줄을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좀 떨어져 있어 부를까 말까 쫓아갈까 말까 하다가 그냥 멀어지고 말았다. 그게 형과의 마지막이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두고두고 한이 되는 일이다. 지금도 왜 쫓아가지 않았을까 후회가 된다.

형이 귀대한 뒤 휴전협정이 막바지에 이르자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우리는‘하루 빨리 휴전이 되어야 형이 살 터인데'하며 기다렸다. 1953년 7월 27일 드디어 휴전이 되었다. 휴전이 된 뒤 형의 소식을 기다리는데 오라는 기쁜 소식은 아니 오고 뜻밖의 비보를 들었다. 집배원이 전하는 실종통지서였다. 7월 19일에 금화지구 전투에서 실종되었다는 통지였다. 8일만 더 살았으면 휴전을 맞을 텐데……. 그 안타까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수색중대에서 복무하였으므로 제일 전방에 나가 있으니까 행여 포로로 잡혀 있다가 돌아오려나 하고 기다렸다. 포로교환 때도 소식이 없었다. 남북이산가족 찾기 때도 행여나하고 기다렸으나 아무 기별이 없었다. 어려운 때는 희미한 줄이라도 잡고 싶다더니 이런 저런 경우를 생각하고 기다렸으나 허사였다. 별 수 없이 누님과 상의하여 제사를 지내기로 하였다. 김제 성산에 가면 6‧25 전쟁 때 희생당한 국군을 추모하는 비가 있다. 그 비에 형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므로 그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 앞으로는 성당에서 미사를 올리기로 하였다. 돌아가신 영혼이나마 하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라는 뜻이었다.

혹시 국립묘지에 묘가 있을까 하여 찾아 갔었다. 같은 이름이 많아 군번을 대라하여 0631793을 알려 주었다. 명부를 보더니 실종자라 묘는 없고‘무명용사의 탑’안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하였다. 위치를 알려주어 찾아가니 ‘김삼식'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헌화하고 절을 올렸다. 이름 앞에 서니 만감이 교차하였다. 생전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지막 헤어지던 장면이 생생하였다. 살아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탄도 하였다.

전쟁은 무섭다. 생명을 앗아가는 것 말고도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한국전쟁 때 죽은 사람이 우리나라 국민 1,312,836명(국군 415,004명 포함), 미군 36,940명(전사 33,665명), 유엔군 16.532명(전사 3,094명)이고 온 국토가 초토화 되었다. 피난살이는 얼마나 어려웠고 국민들의 고생은 얼마나 많았던가.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총소리가 그치지 않고 소말리아에서는 내전이 몇 십 년 째 계속되고 있다. 국가적 대립이나 이해관계로 전쟁이 일어나지만 힘 있는 나라가 세력을 넓혀 이익을 얻으려고 일으키는 경우가 더 많다. 모든 일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 2008. 6.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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