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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최윤
작성일 2008-07-01 (화) 17:43
ㆍ추천: 0  ㆍ조회: 2992      
작심사일
작심사일(作心四日)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최윤



정말이지 사흘을 가지 않는다. ‘작심삼일’이다. 남편은 오늘 회식 때문에 늦을 거라고 한다. 지금 시각은 자정을 넘긴지 오래다.
내가 결혼한지는 3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 신혼에서 막 벗어났고 그렇다고 오래 산 것도 아닌 ‘어중간’한 시기가 요즘이라고 결혼 선배인 언니가 말했다. 눈에 콩깍지는 어느 정도 사라졌건만 그렇다고 몇 십 년 산 부부처럼 서로에 대해 마냥 양보만 하기에는 좀 억울한 그런 시기라 할까?

우리 부부는 성격이 비슷하다. 둘 다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다. 남들이 보기에는 둘 다 너무 착해보여서 걱정이라 할 정도다. 사실 우린 부부싸움을 별로 하지 않는다. 큰소리를 내며 싸운 적은 없었다. 성격에 맞게 침묵시위는 자주 하지만 말이다.
최근에 벌인 싸움은 그 이유도 생각조차 안 나는데, 한 일주일 동안 결혼 후 처음으로 아침밥을 차려주지 않았다. 하루 종일 나가서 일할 사람인데 아침을 주지 않고 잠든 척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3일이 지나자 아침잠을 더 잘 수 있다는 생각에 홀가분해졌다. 아침 식사에 그날 입을 옷, 양말까지 챙겨주는 내가 없으면 불편할 테니 내게 곧 항복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남편은 나 보란 듯 며칠째 같은 옷을 입고 당연한 듯 밥도 안 먹고 일찍 나가는 것이었다. 결혼하자마자 있다는 ‘주도권 잡기’가 이제야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투쟁해야했다. 그러나 남편은 ‘최씨 고집’을 능가할 만큼 고집이 셌다. 일주일째 견디다 못한 내가,
“악처 크산티페를 누가 만든 줄 알아?”
하며 말문을 텄다. 한 3시간 동안을 일주일간 못했던 말을 쏟아낸 것 같다. 역시나 남편은 말이 없었다. 혼자서 말을 하면서 나도 악처가 다 됐다는 생각에 절망스러웠다. 내가 꿈꾸던 언제나 우아한 아내 대신 바가지 긁는 아내가 된 나를 보게 되었다. 나야 말을 다해서 인지 3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마음이 후련했다. 남편도 무슨 생각이었는지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악수를 청하는 게 아닌가? 좀 우스웠지만 나도 못 이기는 척 악수를 했다. 일단 화해하고 나니 정말 보기 싫던 남편의 얼굴이 귀엽게 보이고 언제 그를 저주했던가 하면서 함께 마트도 가고 산책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일단 화해는 하였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징크스인지 화해한 지 사흘째가 되면 어김없이 회사에선 ‘회식’ 자리가 생긴다. 회식도 일의 연장이니 어쩔 수 없지만 술을 마시고 늦은 밤에 귀가하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난다. 우리 아빠는 교사였기 때문에 6시가 되면 어김없이 퇴근해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드셨다. 그래서 난 회사에 다니는 아빠가 늦게 퇴근한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회사원 아빠의 늦은 귀가’에 대한 엉뚱한 동경을 품었다. 그러나 막상 ‘회사원 남편’을 두니 적응이 되질 않았다.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회식 자리도 참석하느라 늦는 것이지만 한 시간, 두 시간 귀가 시간이 늦을수록 분노만 커졌다. 나도 직장생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일 때문에 늦기도 하고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 줄 알지만 3년째 전업주부로만 있다보니 그런 마음은 없고 그저 화만 난다. 남편의 죄가 아니라면 그 남편이 다니는 회사에게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출연한다면 내 옆의 피고석에는 남편이 아닌 회사를 두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힘들여 화해하면 밤늦도록 일을 시키고 회식자리를 마련하여 사흘마다 다투게 한 죄’라는 죄목을 붙여서 말이다.

남편이 일찍 들어온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다가 문득 제안을 했다. 서로의 장단점 쓰기, 결혼 생활 중 배우자에게 느꼈던 불만, 가장 좋았던 사건, 개선할 점에 대해서 써 보기로 했다. 남편은 자신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이런 것이라면서 하기를 주저했지만 마치 시험 치르는 아이처럼 열심히 궁리하며 쓰는 듯했다. 나는 이런 항목들을 여러 번 써 보았기 때문에 정성껏 꽤 많은 양을 썼다. 그런데 얼마 후, 서로 바꿔 본 남편의 종이에는 단 몇 줄만이 씌어져 있었다. 심지어 나는 남편의 장점으로 ‘불록 나온 배가 푹신하여 귀여움’ 이라고 까지 썼는데 나의 장점에는 실망스럽게도 ‘내가 해달라는 반찬 잘해줌, 내 지갑에 용돈 넣어줄 때’ 달랑 두개였다. 다른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 기억 안 난다 등으로 써 놓았다. 어찌 보면 좀 실망스럽기도 하고 웃음도 났다. 남편의 답변에는 별 소득이 없었지만 내가 쓴 답변에는 소득이 있었다. 막연히 생각만한 것보다는 글로 남겨서 한 번 보니 아, 이런 점이 있었구나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이다.

수필 반 강의시간에는 ‘칭찬거리 찾아오기’를 한다. 누굴 칭찬할까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것이 남편이다. 아마 결혼 전이었다면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친구, 친정 식구들이 떠올랐겠지만 지금의 좁은 나의 생활 반경 안에서는 늘 남편이 존재한다.
수업 다섯째 주였던가. 난 남편을 칭찬했다. 강의 자료를 복사해 갖다 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교수님은 ‘정말 좋은 신랑이네’ 하며 칭찬해 주셨다.
그 수필 수업이 있기 전 날, 일찍 들어온다고 전화가 왔는데 좀 늦어서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복사한 수업자료를 회사에 두고 와서 다시 들어가 가져오느라 그랬단다.
주변 사람들도 그런다. 그런 신랑이 어디 있느냐며 잘 하라고. 어쩔 때는 이런 말들이 화가 난 나의 마음에 더 반발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주변 사람들이 남편의 장점에 대해 열거하는 것을 듣다보면 분노의 파도로 가득 찬 머릿속에 점차 잔잔한 물결이 찾아오는 것을 느낀다. 생각해 보니 고집 부리는 것이라 생각하던 신랑의 말 없는 침묵도 내게 심한 말을 하지 않으려는 인내심의 결과이고, 내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도 받아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을 요즘 우스갯소리로 바꾼 말이 있다. 3일 만에 결심이 무너지면 4일째 되는 날 다시 결심하면 작심삼일이 계속 이어져 1년이 된다고 말이다. 그렇다. 3일간 사이가 좋았다면 4일째부턴 다시 나쁜 날이 되돌아오겠지 생각하지 말고 다시 좋은 날이 시작되는 첫 날이라고 생각해야겠다. 그러다 보면 어느 덧 날이 모여 1년, 10년이 될 것이다.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써놓은 글을 보고,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되새긴다. 또 좋았던 날들을 되새기며 난 마인드 컨트롤 중이다. 나중에 들어올 남편을 웃는 얼굴로 맞이하려고. 남편이 오나보다. 열쇠가 달그락거리며 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정말이지 화난 크산티페가 아닌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얼굴로 남편을 맞이하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다.



        *크산티페: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악처. 악처의 대명사가 됨.
        *징크스(Jinx): 불길한 일.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 하는 운명적인 일을 일컫는 말.
        *마인드 컨트롤: 자기 자신의 정신상태를 관리하고 제어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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