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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최윤
ㆍ작성일	2008-12-23 (화)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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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남편
뉴스와 남편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최윤

결혼 전, 내가 가장 싫어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뉴스’였다. 재미도 없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도 별 관심이 없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결혼 뒤, 남편이 뉴스를 즐겨보기에 함께 보게 되었고, 남편 회사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지방 뉴스도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다. 남편 회사 어떤 동료 부인은 지방 뉴스를 보고서 남편의 스케줄을 파악했다고도 한다.
“오늘 파업한다며? 일찍 와서 집안 일 좀 도와 줘요.”
라고 해서 퇴근 뒤 몰래 낚시하러 가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그 동료는 우리 회사는 뉴스에 왜 이리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난 회사 이야기를 하는 법이 없는 남편의 얼굴이 우울해 보이면 뉴스를 더욱 관심 있게 보게 되었다.
하지만 뉴스 보는 것이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보다가 케이블 채널로 돌려버리는 경우가 많다. 케이블 채널에는 머리 아픈 일이 없는 흥미 거리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이 돌아오면 의무적으로 함께 뉴스를 본다. 싫어하는 과목의 수업을 듣듯이 그 시간을 보내며 나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결혼 전 나는 아빠의 직업이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타격을 받는 직업이 아니어서 지난 ‘IMF' 때는 서민들의 경제적 고통을 절실히 체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남편이 자동차 설계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아직 남편 회사가 어렵진 않지만 남편 주변 회사는 이미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그 회사에 다니는 남편의 친구는 며칠째 회사에 나가지 않고 있다. 예전 ‘IMF’ 때보다 더 치명타가 크다던데 어찌해야 하나 걱정이다. 남편은 괜찮다며 안심하라고 했지만 난 뉴스를 보며 마음이 심란해졌다.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우리나라 경제가 풀리는 것도 아니고 또 걱정하는 나를 남편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잘 될 거라 믿고 또 위기가 온다 해도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으리라 믿지만 뉴스를 보면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남편은 요즘 평소보다 더 많이 웃는 것 같다. 집에 돌아오는 남편의 출퇴근용 가방 안에는 간식이 들어있다. 회사에서 주는 건데 먹지 않고 가져오는 것이다. 난 할머니처럼 왜 먹지 않고 가져 오냐고 핀잔도 주지만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남편은 주로 회사 일은 말하지 않고 내 이야기만 듣는 편이다. 난 이야기를 하면서도 오늘 남편은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가끔 남편은 답답하면 회사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쐰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 전화를 하곤 했다. 군산 특유의 강풍에 목소리가 묻혀서 금방 끊어버리지만 그럴 때마다 난 마음이 찡했다.
얼마 전 새벽에 일어났더니 남편이 없었다. 몰래 나가보니 혼자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왜 잠도 안자고 그러냐고 짜증을 냈겠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남편도 혼자 쉬는 시간이 필요하려니 싶어서였다.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까 미국 자동차회사도 얼마간 문을 닫게 되었다는 보도와 함께 근로자들이 밖으로 나오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출퇴근용 가방을 메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가는 모습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고민하는 가장의 모습은 동서양이 다 같아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남편에게 인삼차를 타주거나 내복을 챙기고 따뜻한 아침을 차려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과 항상 행복하게 사는 일, 그 정도일 것이다. 내일 아침에는 부디 좋은 뉴스만 나오길 빌며 남편 내복을 따뜻한 곳에 개어놓고, 좋아하는 찌개를 끓여야겠다.

(2008.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