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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공순혜
작성일 2008-09-14 (일) 09:06
홈페이지 http://blog.daum.net/crane43
ㆍ추천: 0  ㆍ조회: 2796      
달덩이 같은 호박



달덩이 같은 호박
전북대학교 평생학원 수필 창작 목요반 공순혜



오늘 아침 일찍 인터폰이 울렸다. “동생 이제까지 안 일어났나?” 대문 밖에서 동네 형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 열어, 무거워 죽겠다.” 소리를 질렀다. 또 무얼 가지고 왔구나 하며 문을 열었다. 보름달 같이 둥글고 크며 잘 익은 늙은 호박 한 덩이를 끙끙거리며 가지고 들어왔다. 무거워서 못들 테니 내가 들어다 주고 가야지 하며 거실까지 가져다주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형님은 이렇게 제일 크고 빛깔 좋은 것으로 제일 먼저 따서 나에게 갖다 준다. 이거 끓여먹고 아프지 말고 힘내라고 한다. 심성이 곱고 한가위 보름달만큼 둥글고 환한 형님이다. 우리 집 뒤에 조그만 텃밭을 만들었다. 형님은 이른 봄부터 아침 일찍 높은 계단을 올라와 한약찌꺼기를 나르고 텃밭을 파서 이랑을 만들어 온갖 채소를 다 심는다. 호박, 가지, 오이, 파, 마늘, 고추, 깨, 상추, 열무, 먹을거리라고 생각되는 것은 셀 수 없을 정도로 골고루 심는다. 그리고 날마다 이른 아침이면 풀도 뽑고 먹을거리가 될 것이 있으면 제일 크고 예쁘게 생긴 것을 따서 나에게 갖다 준다. 나는 유기농 채소를 골고루 받아먹고 살면서 형님이 밭에서 풀을 뽑으면 같이 거들 생각은 안하고 먹물 좀 들었다는 핑계로 “성, 나 공부하러 가야돼!” 하면 그 보름달 같은 환한 미소로 “이제까지 배운 것도 모자라 또 공부하러 가? 언제 다 풀어먹으려고?” 어서 가라는 시늉으로 손사래를 친다.

한약방을 하던 영감님이 암(癌)으로 두 번이나 큰 수술을 하여 우리는 1,2년을 버틸까 조마조마했는데 5년을 훌쩍 넘긴 것 같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는 말이 있듯이 생명의 끈은 신(神)만이 주관하신다. 그 수발에 지칠 만도 하지만 형님은 항상 보름달 같은 환하게 웃는 얼굴이다. 아저씨가 오래 계시는 것은 다 “성, 심덕 값이야!” 하고 말하면 다 자기가 지은 복(福)이지 내가 무얼 했기에 하며 정성과 지극한 마음을 다 영감님 덕으로 돌린다. 나는 그 형님을 ‘성’이라 부른다. 옛날 우리네 시골에선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며 동생들이 언니를 ‘성, 성’ 하면서 졸졸 따라다니던 일이 생각나고 그 형님을 보면 꼭 친 언니 같은 정이 생겨 “성”이라 부른다. 그러면 형님은 기분이 좋아지고 정말 친 언니인 양 나를 챙겨주고 걱정해준다.

아무도 텃밭을 그렇게 알뜰하게 가꿀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사시사철 유기농 채소를 먹고 살아 이나마 건강을 유지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다 이웃 형님을 잘 둔 덕이다. 김장하고 나면 또 대파를 한 아름 안고 와서 마당 꽃밭에 묻고 비닐로 덮어놓고 겨우내 먹으라고 신신당부하고 간다. 덕분에 한 겨울에도 싱싱한 유기농 파를 넉넉히 넣어 된장국을 맛있게 끓여 먹는다.

올봄 호박을 심을 때 호박을 예쁘게 늙혀 많이 달라고 부탁했었다. 며느리 희정이가 아기를 낳으면 해주고 싶어서였다. 형님은 잊지 않고 달덩이보다 더 큰 늙은 호박을 만들어 주었다. 두 노인네 소망이 여문 셈이다. 항상 환하게 웃는 얼굴에 마음마저 둥글둥글한 형님, 그래서 호박도 그렇게 보름달 같이 크고 둥글게 자랐나 보다.

병마는 의학 지식이 많은 의사나 약사 한의사도 비켜가지 않는다. 어쩌다 한의사인 아저씨에게 그런 병마가 왔는지 안타깝다. 투병 중에도 나를 만나면 고맙다고 인사한다. 나 없으면 외로울 텐데 텃밭을 만들어 취미거리를 만들어 주어서 조금은 안심이 된다고 서로 배우자를 생각하는 생의 동반자가 아름다워 보인다.
편안히 유기농 채소를 잘 먹고 사는 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두 어른들에게 나는 염치없는 사람이다.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실천이 우선이다. 아는 글자나 지식은 별로 없어도 환한 미소와 달덩이 같은 마음을 가진 그 형님내외를 나는 좋아한다. 형님이 만들어 준 달덩이 같은 호박은 너무 예쁘고 아까워서 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거실에 두고 겨우내 바라만 봐도 푸근해지고 내 마음도 형님의 마음 같은 보름달을 닮고 싶다.
(200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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