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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이의
작성일 2008-09-10 (수) 14:57
홈페이지 http://blog.daum.net/crane43
ㆍ추천: 0  ㆍ조회: 2520      
가을의 문턱에서
가을의 문턱에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이의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까만 우산 노란우산이 둥둥 떠 지나고 오른쪽 깜빡이등을 켠 자동차가 눈치를 보며 슬슬 가는가 하면 직진 버스가 뒤 늦을세라 빗속을 질주합니다. 싱싱하게 반짝이던 나뭇잎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나무들은 세월에 주눅이 들고 생기 없는 홀아비를 닮았습니다. 비가 오고 나면 가을이 성큼 온다니 벌써 마음이 바빠집니다.
아파트 화단에 심은 해바라기 세 포기가 오늘 아침 드디어 꽃술을 열었습니다. 씨를 20여개나 뿌렸는데 우여곡절 끝에 겨우 네 포기만 자랐습니다. 그 중 하나는 부실하여 꽃을 보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햇볕을 제대로 못 받아서인지 몸에 비해 키만 껑충하게 커 바람이 불면 부러질까봐 노심초사했습니다. 광주(廣州)집 앞뜰의 해바라기는 지금 씨앗이 영글고 있는데 전주의 해바라기는 해맑은 아가씨의 얼굴 같아 두 손으로 감싸 주고 싶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목청껏 울어대던 매미가 가을바람이 두려운지 한 여름의 그 힘찬 소리가 아닙니다. 매미의 전성시대가 끝나고 밤마다 귀뚜라미가 그 임무를 이어받을 것입니다. 여름 다음이 가을이듯 정열의 소음은 뒤로 물러나고 성숙하고 안정된 세계를 열어 갈 것입니다.

 여름은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해마다 올 여름은 왜 이리 더우냐고 짜증을 내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는 것은 가을이 오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오면 하늘도 한 번 올려다보고 싶고, 소식이 뜸한 친구 목소리도 듣고 싶어집니다. 눈빛만 봐도 통하는 그 친구와 호젓한 오솔길을 걸으며 그간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내가 수필을 늦게 시작했듯이 그 친구도 학교에서 퇴직하고 시작한 그림에 빠져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에 주위를 돌아볼 시간이 없는 모양입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며 다음을 위한 시작의 전환점이기도 하고 기다림의 종착역이기도 합니다.
농부는 소중한 열매를 바라며 봄에 씨를 뿌립니다. 땀 흘리며 여름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기다립니다. 기다림 속에 하늘은 푸르고 땅에서는 풍성한 열매가 익어갑니다. 농부는 기쁜 마음으로 추수 때를 기다립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복 받은 나라입니다. 봄이면 솟아오르는 새싹과 붉고 노란 꽃들이 피어나고, 여름이면 따가운 햇볕으로 초목과 곡식을 키워줍니다. 그리곤 열매의 계절 가을이 옵니다. 굶기를 밥 먹듯 했다는 보릿고개 시절에도 가을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었을 테니 축복받은 계절임에 틀림없습니다. 결실은 보는 것만으로도 부자가 부럽지 않고 마음이 느긋해집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고 한 말에 머리가 저절로 끄덕여집니다.

가을이 산야를 곱게 물들이면 단풍을 보러 떠납니다. 설악산, 오대산, 지리산, 내장산으로 몰려갑니다. 가장 아름다운 단풍이 보고 싶고, 절정의 순간을 기억 속에 담으려고 그렇지요.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떨어지기 직전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생명을 불태워 절정의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생의 종말을 고합니다. 사람이 죽음에 임박하면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회개하고 아름다운 삶의 종지부를 찍고 떠나듯 말입니다.

우리는 가을에게서 겸손을 배웁니다. 잘 여문 벼이삭은 머리를 숙이지만 쭉정이 이삭은 고개를 듭니다. 빈 통은 소리가 크지만 속이 찬 통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머리 숙인 벼이삭은 겸손하게 자연에 순응합니다. 그 모습은 득도한 스님의  뒷모습처럼 편안하고 믿음이 갑니다. 절하듯 낮은 자세는 시비가 없습니다.
높게 올라갈수록 위험합니다. 높은 곳은 비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오르기는 그보다는 쉽습니다. 겸허하게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섬김을 받으려거든 먼저 남을 섬기라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낮은 데로 임하는 삶은 아름답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 2008. 9.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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