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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이수홍
ㆍ작성일	2009-02-16 (월)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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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 영인이의 중학교 졸업
손녀 영인이의 중학교 졸업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수홍

“그 밀가루로 반죽을 해서 칼국수나 끓여 먹을 일이지…….”
졸업식 날 밀가루를 옷에다 뿌리는 일이 없어진 줄 알았는데 나는 오늘 또 보았다. 왜 그렇게 성스러운 날 옷에다 밀가루를 뿌려서 보는 사람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할까? 내가 중학교를 졸업했던 때와는 참으로 많이도 변했다. 56년이 지났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오늘은 토요일, 손녀 영인(英仁)이의 중학교 졸업식장에 갔다. 전주 효자동에 있는 풍남중학교다. 이 학교는 남녀공학으로 전주시내에서 학부모나 학생들이 좋아하는 학교다. 우리 손녀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주로 이사를 와서 추첨으로 이 학교에 배정을 받아 좋아했었다.
졸업식은 1부 식전행사, 2부 본 행사, 3부 식후행사로 진행되었다. 본행사인 졸업생들의 재학시절 활동상황을 동영상으로 보여준 것이 좋았다. 식후행사의 재학생 송별 공연에서 비보이춤을 추고 졸업생 답례공연에서 요즘 가요 톱 텐에서 1번으로 뜬 소녀시대의 GEE를 불렀다. 발랄하고 귀여운 애들이 뛰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참으로 예뻤다. 내 핸드폰의 벨소리와 같아서 나도 함께 춤을 추었다. 졸업가 제창은 이별의 노래이기에 슬픈 곡이었지만 우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졸업식장에서 눈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졸업했던 때와는 달리 시대에 맞추어 많이 변한 것을 실감 할 수 있었다. 나의 중학교졸업식은 식을 마치고 강당에서 사은회를 할 때 K여학생이 ‘추억’이라는 가요를 부르고 끝에
“그대가 추억 아아 그대가 나는 좋아, 이수홍” 이라고 내 이름을 불러 나도 무슨 곡인가 노래를 불렀던 기억밖에 없다.
졸업식을 마치고 3학년 2반 교실로 갔다. 졸업증서, 건강기록부, 상장과 상품을 나누어 주고 담임선생의 마지막 5분 수업이 있었는데 멋지고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5분 수업이니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어느 학생이 “사랑해요!”라고 한마디 외친 외에 아무도 말이 없자 몇 명 지명을 해도 계속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말 외에는 별말이 없었다. 선생은 흑판에다 <자유>라고 쓰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다. 자유를 누리고자 한 사람은 자율을 실천해야한다. 스스로 계획을 세워서 실천해야지 시켜서 하면 끌려 다니는 것이다. 매어서 끌려 다니는 것은 모독이고 장래성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끝났다.
선생이 자기책임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아 학생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고 또 그 내용이 학부모에게까지 전파되자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한 마지막 시간을 이용하여 자기변명을 한 것이 아니기를 바랐다. 귀중한 5분이 무관심이란 죄를 짓고 스스로 사면하는 무가치한 시간이 아니었으면 했다. 세월이 겨울을 졸업시키고 봄을 맞듯이 저 고운 눈망울들이 다 무엇인가를 설계하고 밝은 미래가 펼쳐지기를 빌었다.
운동장으로 나와 기념사진을 찍고 교문을 나서려는데 소화기를 뿌리고 밀가루를 뿌렸다. 얼굴과 몸에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보았다. ‘야! 지금도 저런 일이 벌어지는구나!’ 이십여 년 전 경찰관생활을 할 때 최루탄가스를 쏘고 그 냄새에 시달렸던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 좋지 않은 생각을 얼른 털고 그냥 귀엽게 봐주기로 했다. 왜 밀가루를 뿌릴까?
첫째는 교복의 화형식이란다.
일제강점기 때 만든 교복을 여전히 입던 시절에는 몇몇 졸업생들이 어김없이 밀가루 파티를 열었다. 밀가루를 먹는 것이 아니라 검은 교복에 뒤집어쓰는 것인데 일종의 교복 화형식과 같은 의미다. 학생의 상징인 교복에 밀가루를 뿌림으로써 자유로워진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둘째는 사회로의 진출이다.
1940~50년대에는 보릿고개라는 게 있었다. 항상 먹을 것이 모자라던 그 시절의 유일한 식량은 유엔에서 보내 주는 밀가루였다. 빈대떡, 칼국수, 수제비를 지겹게 먹고 살았다. 그런데 졸업하면 서울로 올라가 공장 등에 취직하여, 흰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지긋지긋한 밀가루 음식을 잊지 말라고 후배나 친구들이 뿌려주던 밀가루가 지금은 의미가 변질된 놀이문화로 되었단다. 어떻게 보면 40~50대를 살았던 어른들께는 눈물겨운 행사였다고 할 수 있는 광경이 바로 졸업식 뒤 뿌리는 밀가루 세례란다.

나는 한나라의 흥망성쇠는 교육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어느 공직이 중요하지 않은 게 있으랴만 교육을 담당하는 직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가정교육과 공교육 그리고 사교육이 있다. 필요한 건 가정교육과 공교육이다. 부모가 다 직장에 매달려 충분한 가정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서 공교육은 더 중요시된다. 사교육은 가정교육에서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보충하기 위한 정도면 된다. 그런데 현실은 학부모들의 과욕과 과다한 경쟁으로 공교육이 사교육에 의존하는 병폐를 낳고 있다. 이런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 국가의 교육정책이다.
공교육이 사교육에 밀리는 잘못을 하루 속히 바로잡아야 한다. 교육은 가정교육과 공교육만으로 충분한 교육정책을 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테니까.
졸업을 축하하기위하여 중국음식점에 가서 탕수육에 밀가루 음식인 자장면을 먹었다. 역시 밀가루는 졸업생 교복에 묻어 있을 것이 아니라 자장면 그릇에 있어야 하는 것이 제 자리다 싶었다.
[2009.2.7.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