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장병선
ㆍ작성일	2008-11-19 (수)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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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추천: 0 ㆍ조회: 2685

만 원짜리 관광
만 원짜리 관광
행촌수필문학회 장 병 선

40여명을 태운 관광버스는 해양엑스포가 열린다는 여수로 달러가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손님들은 화사한 옷차림에 멋있는 모자를 쓰고, 하얀 구두도 신은 멋쟁이도 눈에 띄었다. 버스 속에서 옆 좌석과 한 조가 되어 너털웃음을 흘리며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차창에 비친 노란 은행잎은 깊어진 가을을 그려내고 있었다. 도심을 지나자 가을걷이를 끝낸 들녘에는 하얀 비닐로 포장된 볏집이 한가로이 누워 쉬고 있었다. 땔감으로도 사용했던 볏집이 아궁이가 사라지면서 이제는 겨울철 가축사료로만 사용될 모양이다.

엊그제 마을회관에서 몇몇이 운동을 하는데 동료 한 사람이 교통비와 점심값이 무료인 관광에 우리도 한 번 가보자고하여 관광버스에 몸을 실은 것이다. H고속관광버스가 축제나 박람회에 무료 참관 기회를 베푼다는 것이었다. 단, 간식비 만 원만 내면 하루가 즐겁다는 선전이었다.

“오늘 하루 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보냅시다!”
모집책인 회장의 인삿말에 박수가 터졌다. 버스가 큰길에 들어서자 준비한 소주 한 잔씩을 닭튀김 안주랑 먹으면서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사회자의 재치 있는 만담이 쏟아졌다.
아들 3형제를 둔 부부가 자녀를 잠시 외출시킨 뒤 벌이는 부부행위를 선정적으로 이야기하니 모두들 까르르 웃었다. 귀에 익은 유행가에 손벽을 치며 박자를 맞추기도 했다. 몇 사람은 달리는 차에서 일어나 몸을 흔들었다. 분위기에 취해서 모두들 박수를 치며 신바람이 났다. 안전운행에 지장을 준다며 누군가는 조금 걱정을 했다. 그러나 흥이 나면 달리는 버스는 금방 노래방이 되며 몇몇은 일어나 좁은 통로에서 엉덩이와 손을 흔들며 막춤을 춘다. 멋있게 잘 추는 모습이 중요한 일이 아니고 처음 일어나 춤추기 시작한 용기가 칭찬을 받는 것 같다. 즐거운 분위기를 그냥 밋밋하게 보내기는 서운해서일까? 아니 벅찬 세상일을 이 순간만은 잊고 싶어하는 심사일지도 모른다.

3시간 만에 여수에 도착하였다. 관광회사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즐겁게 먹고 나니 예상했던 대로 물품판매업소에 안내되었다. 처음 약속했던 40분의 시간이 훨씬 넘게 숙달된 강사로부터 선전이 시작되었다. 교통비와 점심식사비를 관광회사에서 부담하였으니 관광객 모두들 불평 없이 약 선전을 들었다. 몸이 좀 불편한 사람이 먹으면 만병통치가 된다는 식품을 선전하였다. 다행이 일행 중 대여섯 명은 그 약을 사는 바람에 참여자로서 조금 마음이 놓였다.

오후 소주 한 잔에 생선회를 먹었다. 바닷가에 왔으니 생선회를 먹고 유람선을 타야만 먼 곳에 온 보람이라는 선동에 그러자 하며 실행에 옮겼다. 해양 엑스포가 열린다는 여수의 바닷물은 비교적 깨끗했다. 오동도와 돌산대교로도 유명한 여수는 고을 이름이 아름다울 여(麗)와 물수(水)로 된 항구도시다. 오동도의 동백꽃이 만발했던 오래 전 어느 봄 날, 같이 걸었던 그 사람의 추억이 새롭다. 아마 그 사람도 이제는 나처럼 만 원짜리 여행을 즐길 지도 모르겠다. 2012년에 열리는 해양엑스포는 100여 개 국에서 800만 명의 참가목표로‘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이라는 주제 아래 성공 개최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듯하였다.

오늘 여수항에는 바람이 없다. 잔잔한 바다는 언제 봐도 가슴이 뛴다. 유년 시절 배를 타고 정처 없이 멀리 떠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보는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유람선을 타고 향일암까지 한 바퀴 돌아보는 해상여행은 갈매기의 호위를 받았다. 관광객 중 과자를 하나씩 바다에 던져주니 갈매기는 날쌔게 차 먹기도 하고 바다에 떨어진 과자를 주워먹으려고 수직으로 낙하했다. 먹이를 보고 날쌔게 두 마리가 동시에 낙하면서 부딪칠 것 같아도 서로 날렵하게 피한다. 너 때문에 내가 먹지 못했다고 다투지 않았다.
갈매기들이 직접 고기를 잡아야 할 텐데, 갈매기가 관광객이 던져준 먹이만 먹다가는 버릇이 되어서 엑스포가 열릴 때는 외국 손님들에게까지 손을 내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관광버스는 늦은 저녁에야 전주로 돌아왔다. 포장된 도로를 가득 메우는 자동차 행렬 중에는 우리가 탄 관광버스도 한 몫 하였다. 보람있는 하루였을까 자문해 봤다. ‘만 원 짜리 관광'은 하루 6시간의 버스를 타고 소주에 싱싱한 생선회를 먹었으며, 깊어가는 가을을 체험한 하루다. 여행의 피로 때문에 오늘 밤은 아마 깊은 잠이 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