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김길남
ㆍ작성일	2008-11-19 (수) 21:04
ㆍ홈페이지	http://blog.daum.net/crane43

ㆍ추천: 0 ㆍ조회: 2693

추임새
추임새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전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김길남

나는 우리가락을 좋아한다. 국악관현악단의 반주에 맞춰 부르는 민요를 들으면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마음속에 전율을 느끼는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풍물을 배워 참여한지도 6년이 넘었다. 풍물소리를 들으면 귀가 솔깃하고 몸이 저절로 그곳을 향한다. 처음에는 좌도농악 필봉 굿과 남원 굿을 배우고 요즘은 우도농악을 배우는 중이다. 우도농악 셋째마당을 시작하기 전에는 모두 빙빙 돌면서 우리가락을 부르는 대목이 있다. 보통 진도아리랑을 부른다.

며칠 전 일이다. 풍물을 배우고 쉬는 시간에 한 친구가 풍류가락을 쳤다. 나도 모르게 노랫가락이 나와 진도아리랑을 불렀다. 몇 절을 했다. 둘레에 있던 모두가 후렴가락을 같이 했다. 한 동료가 ‘얼씨구, 좋다’로 추임새를 넣었다. 더 흥이 나서 한바탕 놀았다. 추임새는 그만큼 기를 돋아주었다. 아니 생기가 돌게 하였다. 소리꾼은 추임새를 먹고 산다고 하지 않던가.

사람에게는 이와 같은 추임새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어디 추임새만 있는 것인가. 꺾임새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어렸을 때 별명을 부르며 기를 죽이는 친구가 많았다. 이름이 길남이라고 ‘길'자를 ‘낄'로 바꾸어 ‘낄낄이'라 했다. 나만 보면 ‘낄낄이'‘낄낄이'하고 놀려댔다. 몹시 듣기 싫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때 기가 죽어 당당하지 못하고 남 앞에 서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풀죽은 인생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요즘 어머니들이 자녀를 대하는 것을 보면 추임새를 넣어주는 엄마는 드문 것 같다. 아기 때는 처음으로 일어서면 섰다고 온 식구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하고, 새로‘엄마, 아빠'란 말을 하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칭찬하며 좋다고 하여 추임새만 받고 자란다. 그런 아이가 커서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부모가‘컴퓨터 하지 마라’'나가 놀지 마라'‘옆집 아무개는 공부를 잘해 상을 받았는데 너는 왜 못받았느냐'는 핀잔만 듣는다. 기를 북돋아주는 추임새를 구경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엄마도 예쁘다고 하면 좋아하고 칭찬 받으면 즐거워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왜 그렇게 못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아이들을 키울 때 마찬가지였다. 항상‘공부 열심히 해라. 놀지 마라'는 말만 한 것 같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왜 그것을 모르고‘마라타령’만했는지 모르겠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아도 우리 사회의 나쁜 점만 들추어내어 보도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본받을까. 우리 사회가 정말 좋지 못한 사람만 사는 것으로 여길까 두렵다. 남몰래 선한 일을 하는 사람도 많고, 흐뭇하게 남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궂은 일만 보도하는지 안타깝다. 이제는 좋은 일을 찾아 찬양하고 권하는 그런 보도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땅을 사서 결손가정 공부방을 지어 주었다는 그런 보도 말이다. 매스컴은 진정 추임새를 하면 안되는 것인가?

나는 일생에서 두 번 추임새를 받았다. 한 번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다. 촌놈이 입학생을 대표하여 선서를 한 것이다. 알고 보니 내가 수석을 하였기에 담임선생님이 나를 찾아 선서를 하도록 한 것이다. 미리 안 것도 아니었다. 입학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선생님이 찾아와 내 이름을 불렀다. 교무실로 데리고 가 미리 준비한 선서문을 읽으라 하였다. 1등을 하여 대표로 선서를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촌놈이 출세하여 기세가 등등했었다.

또 한 번은 서울중앙교육연수원에서 문교부장관 상을 받은 것이다. 그 때는 장관상을 받기가 참 어려웠다. 서로 받으려 하니 웬만한 사람은 생각도 못하는 때였다. 주임 교사반 연수에 참가했는데 성적이 우수한 사람은 장관상을 준다고 사전에 예고하였다. 한 방에 5명씩 배당 받아 각도에서 온 사람들이 같이 있게 되었다. 첫날 저녁에 모였을 때 우리 모두 공부 열심히 하여 장관상을 타자고 약속하였다. 강의가 끝나면 방에 돌아와 그날 배운 것을 모두 열심히 복습했다. 시험을 보는데 모르는 것이 별로 없었다. 연수를 마치고 수료식을 하는 날이다. 강당으로 모여 기대 반 우려 반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담당자가 나와 수료식 연습을 하였다. 그런데 수상자 대표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깜짝 놀랐다. 어찌 기뻤는지 어리둥절하였다. 정말 내 이름을 불렀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전국에서 모인 200여명의 수강생 앞에서 당당히 문교부장관상을 받았다. 성적을 떼어보니 100점이었다.

이 추임새에 힘입어 교직생활을 즐겁고 보람 있게 할 수 있었다. 이어 교감으로 승진도 하고 장학사가 되어 교육에 대한 포부를 활짝 펴기도 하였다. 교장으로 퇴직할 때까지 즐겁고 보람된 교직생활을 하였다.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하는 경쟁심에서 생긴 말이다. 가까운 일가가 논을 사는데 왜 배가 아플까. ‘나는 못했는데 너는 왜 했느냐’ 그렇게 생각하면 배가 아플 법도 하다. 그러나 속이 깊지 않은 마음에서 나온 이야기이지 진정으로는 그럴 수 없다. 사촌이 잘 살아야 나도 그 덕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사촌이 잘 살면 밥 한 끼라도 내가 얻어먹고 떡 한 조각이라도 나에게 돌아 올 것이 아닌가. 사촌이 더 많이 논을 사라고 치켜세워 줄 일이다.

우리 가락에만 추임새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살이에는 추임새가 더 필요하다. 남의 일에도 추임새를 넣어주는 사람이 될 일이다. 경쟁하는 마음을 버리고 때를 맞춰 추임새를 넣어주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
"얼씨구! 좋다! 잘한다!"
우리 모두 추임새를 넣으며 신바람나게 살아보자.

(2008.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