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김학
ㆍ작성일	2008-08-08 (금)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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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추천: 0 ㆍ조회: 3665

내 기억속의 이재인 교수
내 기억속의 이재인 교수
三溪金鶴

수필가이자 소설가인 이재인 교수! 그는 1970년대 초반에 만난 문우이니 한 세대도 훨씬 더 지난 사귐이다. 그때 이재인 교수는 충청북도 영동의 어느 시골중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했었다. 30대의 이재인 교수는 무척 부지런한 젊은이였다. 글을 쓰는데도 부지런했고 문우들을 찾아다니는 문학여행도 무척 즐겼었다. 충청도 예산 촌사람인 그는 우리 문단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마당발이었다.
내가 군산서해방송 프로듀서로서 에세이 프로그램 ‘밤의 여로’를 맡고 있을 때 정주환 선생이 이재인 수필가를 소개해 주었다. 그리하여 이재인 수필가도 그 프로그램 필진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1주일에 한 편의 수필을 써서 나에게 보내주면 나는 그 원고에 감미로운 음악 세 곡을 섞어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방송했었다. 그런데 그가 사는 청주에서는 서해방송이 들리지 않았기에 나는 가끔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하여 보내주기도 했었다. 우리는 피디와 필진으로 만났지만 오랜 지기처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어느 해 여름방학 때 이재인 교수는 홀연히 전주에 나타났었다. 전주의 몇몇 수필가들과 더불어 한벽당 근처에서 전주의 별미 오모가리탕에 소주를 마시고 연꽃이 흐드러지게 핀 덕진공원으로 갔었다. 연꽃향기가 진동하는 그 덕진공원에서 우리는 2차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술에 취하고, 연향(蓮香)에 취하며, 공원의 분위기와 시원한 밤바람에 취하고, 우정에 취하여 아름다운 추억을 쌓았었다.
이재인 교수는 붙임성이 좋아서 그런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자기 뜻대로 훨훨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경기도 어느 사립여고 교사로 근무했다던 이재인 교수가 시골이긴 하지만 충북의 어느 공립중학교로 자리를 옮겼고, 얼마 뒤엔 충청북도교육감 스피치라이터가 되었다. 그 뒤 청주 농고를 거쳐 문교부 편수실로 훌쩍 건너뛰었다. 문교부에서 근무한 뒤 서울시내 어느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마침내 모교인 경기대학교 국문과 교수가 되더니 그곳에서 정착하였다. 이재인 교수는 나름대로 어려움이 없지 않았겠지만 그의 신출귀몰한 변신이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가 원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 내는 재주가 부러웠다.
이재인 교수의 초대로 청주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올갱이를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다슬기’를 청주에서는 ‘올갱이’라고 부른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고, 그 ‘올갱이’가 소주 안주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배웠다. 요즘도 어쩌다 다슬기를 보면 그때가 떠오르고, 또 이재인 교수가 생각난다. 이튿날 전주로 돌아오려는 나에게 자기(瓷器) 한 점을 기념으로 주었는데 나는 지금도 그걸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내가 처음 이재인 교수를 만났을 때 그는 수필가였다. 그런데 그 뒤 소설로 등단하여 개종하더니 요즘에는 아예 소설에 전력투구하는 것 같아 아쉽다. 그는 수필집을 참 많이 출간했었다. 이재인 교수는 어느 수필집에서 남의 수필 백 편을 읽고나서 한 편의 수필을 쓰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 구절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또 그는 농촌의 마당에서 자유롭게 먹이를 주워 먹은 어미닭이 건강한 달걀을 낳듯 수필가도 그 어미닭처럼 자유롭게 소재를 찾아야 좋은 수필을 빚을 수 있다고 했다. 오래 전에 읽었던 구절이지만 내 기억의 창고에 깊이깊이 간직하며 때때로 되새겨 보는 명언이다.
이재인 교수는 몇 년 전 자기 고향인 충남 예산에 한국인장박물관을 세웠다면서 내가 쓰는 도장을 보내달라고 했었다. 그리하여 내 저서에 찍어주던 낙관(落款)을 보내준 적도 있다. 그 박물관에 전시한 도장의 도록(圖錄)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유명 문인들의 도장은 물론 심지어는 임금이 사용하던 옥새까지도 보관하고 있었다. 어떻게 국보급의 옥새를 구했는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재인 교수! 그는 우리 문단의 진짜 큰 별이요, 팔방미인이며, 찐득찐득한 인간미를 지닌 진국이다. 머지않아 그도 대학교수란 족쇄를 벗어던지게 될 것이다. 그런 뒤 이재인 교수의 다음 행보가 어디로 어떻게 튈지 벌써부터 자못 기대가 크다.

*김 학 약력
월간문학으로 등단/<자가용은 본처 택시는 애첩> 등 수필집 10권, 수필평론집 <수필의 맛 수필의 멋>/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신곡문학상 대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전주시예술상, 연암문학상 대상, 대한민국향토문학상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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