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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박인경
ㆍ작성일	2009-04-27 (월)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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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살이
전주살이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박인경

전주는 따스했다. 서울보다 200여km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기후가 따듯하기도 하지만 그동안 떨어져 있던 남편과 함께 있으니 더 포근하게 느껴진다. 나는 서울에서, 남편은 익산에서 떨어져 생활하다가 함께 전주로 거처를 옮겼다.나의 전주살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주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된 도시란 것뿐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전주 땅을 처음 밟았을 때는 초가을이었다. 서울보다 공기가 덜 오염된 때문인지 투명한 햇살은 막 물들어가는 나뭇잎을 비치고 있었다.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의 도로는 정말 고도란 말이 실감났다. 낮고 좀 낡은 건물과 복잡하지 않은 거리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 온 것 같았다.

지인의 조언을 듣고 전주천변에 새로 지었다는 한 아파트를 전세로 얻었다. 서울에 있는 집을 계속 보유할 계획을 가졌기 때문이다. 전주의 특이한 점은 주택의 매매가와 전세가가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큰 도시임에도 서울보다 주택 시세가 반값이하로 낮은 것도 흥미로웠다.

짐을 옮기고 나서 제일 중요한 일은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특히 먹을거리가 문제였는데 가까운 수퍼는 규모가 작아 원하는 물건을 살 수가 없었다. 길을 몰라 큰 시장에 가기도 어려워 자연히 큰 수퍼를 방문하게 되어 서울에서부터 다니던 전국 체인의 마트를 찾게 되었다.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인지 어느 곳이든 내부 구조가 비슷한 그 곳에 가니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편안하였다.

정리가 되자 전주의 음식이 훌륭하다는 말에 음식점을 찾아 나섰다. 첫 번째는 남편이 동료들과 가 보았다는 저수지 근처에 위치한 매운탕집을 방문하였다. 콩나물과 미나리, 고추가루를 넣는 서울과는 달리 매운탕에 된장을 풀고 시래기를 넣고 끓인 것이 이색적이고 깊은 맛이 있었다. 그 다음은 그야말로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내는 한식집, 비빔밥, 콩나물국밥, 이렇게 맛있게 먹고 다니다 보니 체중이 3kg이나 늘었다. 친정 식구와 친구들은 입을 모아 "전주가 살기 좋은가 보다. 얼굴이 좋아졌다."가 인사다. 이제는 다이어트를 해야 할 판이다.

어느 도시나 좋은 점과 나쁜 점은 있기 마련이다. 전주에서 이상했던 점은 주민들이 교통질서를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 생활을 할 때 천호대로변에 약 5분간 주차를 하고 볼일을 본 사이 주차위반 딱지가 붙어 거금의 벌금을 낸 경험이 있고, 동네 2차선 도로에서 신호등을 무시하고 길을 건너다 경찰의 주의를 받은 적이 있는 나로서는 전주에서 제일 넓은 도로인 백제로 갓길에 버젓이 주차를 하고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분들이 있어서 좀 의아했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택시기사 한 분 때문에 우려가 사라질 수 있었다. 전주에 오자 남편이 내게 제일 먼저 해 준 일은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 네비게이션을 달아 준 일이다. 낯선 곳에서 생활하려면 길과 건물의 위치를 몰라 찾아가지 못하는 일이 가장 불편하다. 하루는 운전을 하고 싶지 않아 택시를 탔다. 서울에서의 습관 대로 빨리 차에 오르자
"천천히 타세요!"
하시며 내가 지리를 모른다고 하니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내릴 때에도 돈을 치르고 재빨리 내리니
"천천히 내리세요. 다치십니다."
하며 뒤를 돌아 보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곳 분들은 여유를 가지고 사시는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전주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키려 노력하는 것 같다. 전주로 들어오는 입구와 버스 정류장, 전화부스, 심지어는 교통신호제어함의 지붕이 전통 기와집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 무척 정겨웠다. 그리고 이른 봄부터 불어 오는 바람에 하늘거리는 천변의 수양버들가지의 부드러운 곡선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주말이면 남편과 나는 가끔 영화의 거리로 간다. 그 곳에 있는 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한 편씩 보고 있는데 그 큰 건물 뒷쪽에 자그마한 전통 한옥 한 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른 도시라면 중심지 땅이라서 벌써 철거하여 높은 건물로 바뀌었을 텐데 전주는 있는 그대로를 지키고 있었다. 그 맥락으로 시내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한옥마을은 전주의 절정이다. 약간 인위적인 모습도 보이지만 나즈막히 내려 앉은 기와집 지붕마다 옛 정취가 숨어 있었다.

아직 이 곳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지역을 다 볼 수 없었다. 틈나는대로 더 많은 곳을 둘러 보아야겠다. 가끔 서울문화가 그립고 잊어버릴까 염려도 되지만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이 깃든 도시 전주에 내 노후의 둥지를 틀어 볼까 한다.

(2009. 4.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