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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석인수
ㆍ작성일	2009-08-26 (수)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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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눈이다
소리가 눈이다
행촌수필문학회 석인수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재미있게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운동이 골프라고들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이고 민감한 운동이라서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요즘도 가끔 정치인들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골프로 인하여 말썽을 빚고 사회적 비난을 받는 게 사실이다.
나는 공직생활을 마친 뒤 골프를 시작했다. 골프처럼 까다롭고 말 많은 운동도 없는 듯하다. 어떤 사람은 귀가 엷으면 골프를 못한다고 한다. 1년 남짓 연습하고 있지만 역시 어려운 운동이고 하는 방법도 참으로 다양한 것 같다. 마음으로는 금방 잘 할 것 같지만 만만치 않고 할수록 어려움을 느낀다.
나는 아직 사지(四肢)가 멀쩡하다. 정신적으로도 별 문제가 없다. 두 눈 부릅뜨고 공을 보며 공을 치는데도 못 맞추기 일쑤다. 그런데 시각 장애인 골프에 대한 얘기를 듣고 어찌나 부끄럽고 멋쩍었는지 모른다.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골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의아스럽고 경탄할 일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한국 시각 장애인 골프협회」(KBGA)도 2007년도에 설립되어 회원 40명과 자원 봉사자 20명이 활동하고 있고, 미국을 비롯하여 10여개 국가의 시각 장애인 수 천 명이 골프를 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시각 장애인이 홀인원(티샷을 한 공이 단번에 그대로 홀에 들어가는 것)도 종종 한다고 한다. 일반 골프에서는 4명이 한 조를 이루지만 시각 장애인 골프는 골퍼와 서포터(후원자) 2명이 한조를 이룬다고 한다.
며칠 전 인터넷에서 한국 시각 장애인 최고의 여자 골퍼인 박영해라는 선수에 관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제1,2회 베어크리크 배 시각 장애인 골프 대회에서 여자부문 1위에 연속 입상한 선수다. 그녀가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는 5명이 함께 시작하였으나 호된 훈련과정 1개월이 지났을 때는 혼자만 남았다고 한다. 운동도 궁합이 있는 것인지 그녀는 점차 골프의 재미에 빠져들었고 삶의 활력도 되찾았다고 한다. 골프는 눈으로 보고 공을 맞추는 게 아니고 정신력과 자세로 친다고 말했다.
다음은 중앙일보 1998년 6월 26일자 13면에 실린 제3회 전국 시각 장애인 탁구대회에 관한 기사 내용이다. 일반 탁구 경기와는 달리 네트는 탁구대에서 5센티미터 올려 설치하고 탁구공은 3개의 납 알이 든 시각 장애인용 탁구공이고 라켓은 고무가 벗겨진 나무 라켓이며 경기할 때 공이 네트 아래쪽으로 해서 상대편에게 넘어가야 한다고 한다. 눈 위에 안대를 착용한 선수가 탁구공 튀는 소리만을 듣고 빠른 속도로 넘어오는 공을 쳐서 넘기는 것이다. 날카로운 눈길 대신 쫑긋한 귀로 튀는 공의 소리를 쫓아 공을 받아치는 선수들의 감각에 관중들은 시종일관 경탄했다고 한다. 상대편 좌우로 공을 보내는 솜씨도 뜻밖이고 대여섯 차례 공을 주고받다가 결정타를 구사하는 솜씨도 일반 선수 못지않았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또 다른 사례를 소개한다. 이 역시 신문에 보도된 사실이다. 1999년 6월 26일 한국일보 17면에 소개된 기사 내용이다. 서울 송파구 성내 천 둔치에 마련된 시각 장애인 전용 축구장에서 시각 장애인들의 첫 시범 축구 경기가 있었다. 시력이 정상적이거나 약시인 골키퍼 1명과 안대를 찬 완전 시각 장애인 4명 등 5명으로 구성된 양 팀 선수들이 전․후반 25분씩 뛰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다. 핸드볼 크기의 공은 선수들이 쉽게 따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소리가 나도록 특수 제작했다. 골키퍼 외에 2명의 가이드가 골문을 두드려 알려주고 공격수와 수비수의 움직임을 󰡐“간다!”는 소리를 질러 알려 주었다. 소리와 감각으로 공을 쫓아 발로 걷어차며 비지땀을 흘리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1,000여 관중들은 이따금씩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고 한다. 또 시각 장애인이면서도 비행기를 조종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영국사람 마일스 힐튼 바버라는 사람은 2007년 58세의 나이로 런던을 출발하여 56일 만에 호주 시드니까지 2만 2천 킬로미터를 비행했다고 한다. 고도계, 속도계, 나침반, GPS 등 비행에 필요한 장비에 음성창치가 장착된 초경량 항공기를 직접 조종했다고 한다. 그는 또 240킬로미터를 걸어서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였고, 400킬로미터를 썰매로 달려 남극까지의 대 장정을 마쳤으며, 중국을 가로 지르는 울트라 마라톤 참가, 히말라야 등정 등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정상인으로서도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다. 이루지 못할 경지를 눈물겨운 사투로 이루었다.
어느 누구도 장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일이다. 장애인들만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신체적․정신적으로 부족한 사람들로 바라보지 말고 정상인들과 똑 같은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인 스웨덴에서는 장애라는 말을 쓰지 않고 고용 곤란 자(hardtoemploy)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장애인에 대한 책임이 사회 전체에 있다고 보고 국가나 지방 정부가 궁극적으로 비장애인과 평등한 권리 확보에 책임을 진다고 한다. 장애로 인하여 사회로부터 홀대 받거나 차별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인간의 한계는 무한하다. 시각 장애인들을 비롯한 모든 장애인들이 여러 분야에서 각고의 사투 끝에 일궈 낸 쾌거들이야말로 정상인으로 사는 우리들에게 잔잔한 감동이고 삶의 사표(師表)인 것이다.
시각 장애인들은 소리가 눈이다. 소리를 듣는 것이 보는 것이다. 눈 대신 소리를 귀로 보는 것이다. 정상인들은 듣는 용도로만 쓰는 귀를 보는 용도로도 쓰는 것이다. 눈이 아닌 소리로 보려면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울까? 그들에게 소리와 귀에 망막(網膜)과 수정체(水晶體)를 붙여 줄 수는 없을까?
< 2009. 7. 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