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한일신
ㆍ작성일	2009-08-25 (화)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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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집 고치기
헌집 고치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한일신

구청에서는 재래식화장실 정비사업을 시행하는데 신청자 중 우선순위에 따라 가구당 100만 원을 지원해 준다고 햇다. 그래서 이참에 서신동에 있는 단독주택 화장실을 수세식 화장실로 개선하려고 접수를 했더니 다행히 통과가 되었다.

밖에 있는 화장실을 고치려 했더니 겨울에는 언다고 하였다. 그래서 집안으로 들이자니 여러 가지 애로가 많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도 없어 하는 김에 비가 새는 지붕도 고치고 주방과 화장실을 함께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업자들을 만나 견적을 받아 보았더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중 마침 L이라는 좋은 사람(공사 총괄 관리감독)을 소개받아 재료를 사서 인부를 데리고 직접 고쳐 보라는데 마음이 끌렸다.

어디서부터 일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지붕을 고치려면 공달에 해야지 달 넘어가면 손대지 말라고 하셨다. 어머니를 위해서 하는 일인지라 어머니 말씀을 따르자니 날짜가 없어 마음이 다급해졌다. 일단 낡은 기와지붕을 칼라강판으로 교체하려고 계약을 했다. 점심을 해주기로 해서 점심과 새참을 챙겨내려니 이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틀 만에 지붕이 완성되니 새집 같았다. 이제 비가 와도 샐 염려가 없고 바람이 불어도 걱정이 없었다. 다음으로, 정화조 묻는 일을 하기로 했다. 나는 아침 6시쯤 나가 난생 처음 인력사무소에 들러 인부를 구해왔다.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을 데리고 왔다. 나이 든 사람은 아무래도 경험이 많은데다 편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오늘 할 일은 정화조를 묻기 위하여 땅을 파는 일이다. 차츰 깊이가 깊어지자 장소가 협소해서 두 사람이 들어갈 수가 없자 한 사람은 안에서 파서 올려주면 위에서는 받아서 버렸다. 한참 파는데 물이 새어나와 방수용 시멘트로 막으며 일을 했다. 하얀 러닝셔츠가 흙과 땀으로 범벅이 되자 측은한 마음마저 들었다.

밤새 물이 나와 고여 있을까 봐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옆집에서 못마땅해 하는데 울타리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날이 새기가 무섭게 가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물이 하나 가득 고여 있었다. 모터를 얻어다 물부터 뿜어내고 다시 물이 새어 나오는 데를 찾아 시멘트 2포를 부어 꼭꼭 막았다.

이제 정화조를 넣으면 되었다. 정화조가 대문으로 들어오기 어렵다고 하여 울타리로 넘겨오기로 했다. 큰 나무를 울타리에 걸쳐놓고 장정 5사람이 굴려서 들여오는데 어휴~~ 이렇게 무겁고 힘든 줄 몰랐다. 무게가 200kg이라니 울타리가 넘어질까 봐 노심초사 했지만 간신히 정화조를 옮겨다 묻을 수 있었다. 구청으로 통보하여 직원이 나와 확인을 하고나니 비로소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오늘은 주방과 화장실 칸막이공사를 하는 날이다. L이 기술자를 데려오고 나는 인력사무소에서 잡부 2명을 데려왔다. 각각 맡은 일을 열심히 했지만, 뒤가 깔끔하지 못해 마음에 걸렸다. 시멘트를 비빌 때 하루에 쓸 사용량을 적당히 섞어놓고 쓰면 좋으련만 몽땅 만들어서 쓰다 남겨놓고 가버렸기 때문이다. 다음날 치우려니 아까워서 속이 상했다.

어지간히 모양이 잡혀갔다. 오랜만에 상하수도 배관 공사를 하는 날이다. 이리 재고 저리 재며 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 번 관을 연결하여 땅에 묻고 시멘트를 바르면 다시 뜯기 어려운 만큼 아주 중요한 공사임이 틀림없다. 숙련된 전문가가 필요했다. 나는 알지도 못하면서 공사기간 내내 옆에서 지켜보았다.

앞으로는 전기공사와 화장실 타일, 그리고 천정 공사가 남아 있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 하지만 왜 이리 일이 많은지 끝이 없었다. 업체에 맡기지 않고 직영하니까 배우는 것은 좀 있지만 고생이 너무 많았다. 9월에 시작한 게 3개월이 넘도록 일에만 매달려 있으려니 지루하기도 하고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추워 몸이 움츠러들었다. 얼기 전에 끝내려고 서둘러 대충 마무리를 지었지만 미진한 부분이 많았다. 공사 찌꺼기들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다시 쓸 일도 없는 남은 부품들이 많았다.

L이 성품은 좋지만, 전문성이 떨어져 일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고 없이 끝나서 다행이고 어머니가 가끔 그곳에서 편하게 쉴 수 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앞으로는 무슨 일을 하려면 사전에 충분한 지식이나 정보를 얻고 해야지 섣불리 덤빌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헌집을 고친다는 것은 새집을 짓는 일 못지 않게 어려운 일이었다.

(2006.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