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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송병운
작성일 2008-12-19 (금) 14:24
홈페이지 http://blog.daum.net/crane43
ㆍ추천: 0  ㆍ조회: 2418      
선택으로 엮어가는 삶
선택으로 엮어가는 삶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송 병 운



 딸 민정이를 데리고 백화점에 갔다. 오랜만에 옷 한 벌을 사주고 싶어서였다. 항상 그랬듯이 맘에 드는 옷을 고를 때까지 꽤 시간이 흘렀다. 딸이 골랐다고 해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치마길이가 짧다’, ‘디자인이 맘에 안 든다’, ‘이런 옷을 입고 어떻게 학교를 가고 길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느냐’는 등 아내의 최종 통과절차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딸은 백화점에 갈 때 엄마가 동행하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옷 한 벌 고르기도 참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앉아 있는데 딸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옷 선택에 대한 엄마와의 의견차이로 토라진 딸을 보니 옛날 힘겨웠던 일이 아련히 떠올랐다. 우리 부부는 첫 아이를 낳은 뒤 꽤 긴 세월동안 아이를 갖지 못했다. 첫 아이가 5살이 되어서야 어렵게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내의 입덧이 너무 심하여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였다. 입원해서도 무려 3개월 동안 영양제만 맞고 아무것도 못 먹으니 체중이 너무 줄어 혼자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아기가 문제가 아니라 산모의 건강이 심각한 문제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내는 아기에 대한 집념이 강하여 병원이나 가족들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처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담당의사가 나를 불렀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내의 증세가 입덧보다는 아무래도 뇌종양이 의심된다며 정밀검사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뇌종양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 그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군대시절 펜팔을 했던 인연으로 경기도에서 전주까지 나 하나 믿고 시집 온 아내였다. 그런데 이제 뇌종양이라는 병으로 어쩌면 짧은 삶을 끝내야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이도 없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사흘은 차라리 3년보다도 더 긴 고통의 시간이었다. 의사와 복도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 금방이라도 절망스러운 말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사흘째 되는 날, 의사가 찾아왔다.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은 침묵. 그러나 의사는 얄미울 정도로 태연하게 서류를 뒤적거리더니 한마디 말을 던졌다.
“검사결과가 나왔는데……, 음……,  특별한 사항은 없네요.”
그게 전부였다. 새까맣게 멍들어버린 가슴을 쓸어 담으며 아내의 손을 꼬옥 잡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흐르던지.
이제는 아내를 살리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의사를 만나 낙태를 상의하였다. 산모의 건강과 함께 태아의 정상여부도 걱정하는 것을 보니 아마 의사도 그런 결심을 기다렸던 것 같았다.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니 차마 아내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내일이면 뱃속에 있는 아이가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내는 훗날 얼마나 절망하고 나를 원망할 것인가.
깊은 실의에 빠져 있는데 번뜩 다른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건 아니다.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감히 내가 없애려 한다니…….’ 도저히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의사를 만나 수술을 취소해달라고 하면서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모든 것을 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겠노라고 하였다. 사실 나의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겁도 났지만 아이의 생명을 죽일 수 없다는 마음이 앞섰던 것이다. 병실에 들어오니 아내는 아무것도 모르고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아내에게 미미하게 변화가 오기 시작하였다. 물을 마셔도 토하지 않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음식물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결국 수술을 포기한 뒤 한 달 정도 지나서 아내는 퇴원할 수 있었다. 여름옷을 입고 입원했던 아내는 4개월의 병원생활을 끝내고 가을이 끝나가는 11월에 퇴원하였다. 다가산을 지나면서 아내는,
“벌써 가을인가 봐요!”
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선택이라는 것은 정말 어렵다. 인간의 삶 자체가 선택의 연속이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지 않는 삶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사소한 일부터 큰일에 이르기까지 단 하루도 선택의 삶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선택을 잘했는지 못했는지에 대한 판단도 시간이 흐른 뒤에나 알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어려운 것이다. 나 역시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또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 날의 선택만큼 중요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자부하고 싶다.
그 다음 해 아내는 예쁜 딸을 낳았다. 그것도 5월 8일 어버이날 새벽에. 하늘에서 어버이날 선물로 손녀딸이 내려왔다는 나의 전화에 어머니도 무척 반가워하셨다. 보통 아기에 비해 작은 몸무게로 태어났지만 정상아로 태어난 것만 해도 감사할 뿐이었다.
그 딸아이가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다. 몸도 건강하고 성격도 쾌활하다. 성당에서 미사반주도 하고 기타와 드럼을 치는 등 매사에 적극적이다. 오늘처럼 엄마와 옷 문제로 다툴 때에는 얼굴을 붉히며 토라지기도 하는 평범한 딸이다. 백화점을 나서며 딸의 손을 잡으니 여느 때보다 참 따뜻했다.  
민정아! 아빠와 엄마는 세상의 누구보다도 너를 사랑해, 알았니?

                             (2008.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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