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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정영권
ㆍ작성일	2008-08-08 (금)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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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스님의 설법
신세대 스님의 설법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정 영 권

나이 지긋한(속된 말로 ‘쉰 세대’) 범부들이 신세대 스님의 설법에 환호하였다. 겨울인데도 오동나무가 상서롭게 꽃을 피웠다하여 이름 붙여진 동화사(桐華寺)의 젊은 스님은 자태부터 달라보였다. 스님이라고 하면 먼저 고매하고 그윽한 모습을 떠올리는데 그 스님은 차라리 당당하고 활기에 넘쳤다. 말씀하시는 태도 또한 속세의 젊은이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스님이 동화사 소개인지 설법인지 한다기에 더위도 피할 겸 동화사 대청마루에 앉아 한참이나 기다렸다. 나는 스님이 “고려 건국시조인 왕건과 후백제 견훤의 역사가 서려있고, 대구시민의 사랑을 받는 팔공산 자락에 터를 잡은 동화사는…….” 한다든지, “세상사 모두가 일체유심조라…….”라든지 그런 서두로 말문을 열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시자도 없이 불쑥 나타난 스님은 우리가 예를 차릴 겨를도 주지 않고 구겨진 종이를 펴들면서 말씀을 시작하였다. 담당 스님은 따로 있는데 하안거(夏安居) 중이라 본인이 대신하게 되었다면서 한 10분, 아니 10분 동안이나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5분 정도만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갸우뚱하고 있는데 이어지는 말씀을 들으니 더 어이가 없었다.
“동화사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자료를 뽑느라 늦었습니다. 미안합니다.”
기백명 정도 되는 좌중의 폭소가 터졌다. 본인이 몸담고 있는 절인데도 잘 몰라 자료를 찾으려고 인터넷을 뒤졌다니, 어찌 아니 그러겠는가? 엉뚱한 스님이라고들 웅성거리는데 어느 분이 인터넷은 우리가 언제라도 볼 수 있으니 거기에 없는 말씀을 해달라고 하였다. 스님이 인터넷에 안 나오는 것은 본인도 모른다고 하자, 또 웃음이 터졌다. 그러자 스님은 인터넷이라는 한마디에 이렇게 호응이 좋을지 몰랐다며 도대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전국각지에서 모인 수필 쓰는 사람들이라고 하자, 스님은 글 쓰는 사람들은 유식하니 본인보다 잘 알 것 아니냐며 사리는 시늉을 했다.
대중들이 그러지 마시고 고사성어(故事成語) 같은 말씀 좀 해주시라고 청했더니, 스님은 고사성어는 잘 모르고 신사성어는 하나 알고 있노라고 하였다. “여자의 치마와 스님의 설법은 짧을수록 좋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정도에서 마치고자합니다.”
이번에는 폭소에 더하여 멋쟁이라며 환호성까지 울렸다. 스님은 하잘 것 없는 신사성어 하나에 이렇게 법열(法悅)이 대단할 줄 몰랐다며 돈오(頓悟: 갑작스럽게 깨달음)에 고맙다고 농담까지 곁들였다.

그래도 괜찮은 선물은 하나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마음을 맑혀줄 법한 선(禪)풍의 시 한 편을 읊어주는 것으로 설법을 대신하였다. 적지도 못하고 오래되어 제대로 기억을 할 수는 없으나 대체로 다음과 같은 뜻이었으리라.

‘당신이 아이를 보고 좋아하는 것은 마음에 동심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만나는 사람에게 미소를 보낼 수 있는 것은 마음이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아침 해의 찬연한 햇살을 맞으며 기뻐하는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것은 마음에 겸양이 숨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
폭소와 환호가 어우러진 즐겁던 시간은 지나고, 시가 흐르는 순간만은 모두가 고요히 감상에 젖었다. 차분히 시 낭송을 마치자 스님은 오실 때처럼 훌쩍 가셨다.

십분 정도에 불과한 시간이지만 우리는 야단법석하며 희열에 이은 고요한 카타르시스를 맛보았다. 불자도 아닌 일반대중에게 얼마나 깊이 있는 설법을 할 것인가? 적당한 시간에 적절한 내용을 가지고 신선한 감명을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고승의 선(禪)문답이 아니라 신세대 스님의 생(生)문답이라고나 할까? 사람에 따라 느낀 감정이야 달랐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참으로 멋진 스님의 설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