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김미연
ㆍ작성일	2009-08-07 (금)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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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바쁘십니까
얼마나 바쁘십니까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미연

한 끼의 식사조차 해결하기 귀찮을 만큼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어지는 주말 오후. 몸을 움직이는 일은 한없이 게을러지는 반면 나의 배꼽시계는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반응한다.
누가 더 게을러지는지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남편과 나는 좀처럼 이불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다가, 결국 우리 두 사람 모두‘허기’란 녀석에게 두 손 드는 일을 반복하면서 주말을 보내는 것이 흔히 있는 우리 집 풍경이다.
지난 주말, 어김없이 같은 주말을 보내던 중 쉽게 끼니를 해결할 셈으로 피자를 주문하게 되었다. 참으로 편리하고 세심한 주문 시스템이 갖추어진 요즘 세상인지라, 매장 직원에게 나의 주소를 읊어대고 발음조차 익숙하지 않은 복잡한 메뉴의 이름을 어색하게 말하거나, 예상치 못한 질문에 하나하나 대응해야 하는 전화 한 통의 수고조차 이젠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인터넷을 켜고 원하는 주문 내용을 몇 번의 클릭으로 끝내고 심지어 돈을 지불하는 일조차 인터넷 상에서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편리하고 좋았다. 인터넷으로 음식을 주문하자 시계 화면이 나오면서 30분을 시작으로 1초, 1초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마치 시한폭탄이 갑자기 나타나 30분이 지나면 펑하고 터질 것 같은 급박한 분위기로 순식간에 바뀌어 버렸다.
그 시계는 주문 고객을 위해 30분 안에 신속하게 배달하겠다는 그들의 의지였다. 30분 내에 배달하지 못했을 경우 시간경과 정도에 따라 가격을 할인 받거나 음식 자체를 무료로 먹을 수 있게 되니 고객 입장에서는 참 괜찮은 취지의 시간 보증제이다. 하지만 이게 과연 정말로 필요한 제도일까? 이렇게까지 해서 빨리 먹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일까?
갓 만들어 낸 음식을 최대한 빨리 먹을 수 있는 이러한 시스템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재촉하고 조급해 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의 성격이 한 몫 했겠구나 싶어 부끄럽기까지 했다.
하루 종일 빈둥거리면서 일부러 시간을 꾸역꾸역 써 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의미 없이 쏟아내 팽개쳐 버린 시간 속에서 정작 피자를 주문한 직후의 30분에는 온갖 의미를 두게 되는 일이 어찌나 억지스러운지 모르겠다.
30분이 다가올수록 시간 개념이 없다는 둥, 시스템 관리가 엉망이라는 둥, 늦어지는 만큼 그에 대한 보상은 기필코 받아 내야겠다는 나의 의지는 덩달아 강해지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특별히 바쁠 것도 없고 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나는 누구나 인정하는 느긋한 성격이라 시간에 관해서는 나 자신에게 관대하기까지 하여 오늘 할 일도 기꺼이 내일 할 수 있도록 미루어 준다.
심지어 하루 종일 잠을 자는 의미 없는 일에도 아낌없이 나의 시간을 투자한다. 아마 이런 나의 모습은 조급한 성격이라기보다 고객으로서 시간 재촉이라는 권리를 타당하게 누리고자 하는 다소 이기적인 마음이지 싶다.
누구나 신속한 것을 당연시하고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최고라고 생각하는 분위기 속에서 느긋한 성격인 나조차도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엔 마치 고객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기분이 들거나 돈을 내고 먹는 사람으로서 대접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단 몇 분이 아까워서 기다리지 못하는 습관들이 내 일상 곳곳에 잠재되어 있다.
전주로 이사 오게 되면서 맛있다고 소문난 음식점을 자주 찾게 되는데 그때마다 대부분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빈자리가 생길 때까지 가게 밖에서 줄을 서거나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음식점으로 가는 내내 그 맛을 상상하고 기대하며 기분 좋게 달려온 내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사람이 붐비는 것을 보자마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뒤돌아서서 가게를 나와 버리곤 한다. 그리고는 계획에 없던 엉뚱한 메뉴로 대충 뱃속을 채우고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입맛을 다시게 되는 경우가 많다.
‘허비’라고 생각한 대기 시간 약 20분을 절약하는 대신, 나는 맛있는 한 끼의 기분 좋은 식사 시간 1시간을 기꺼이 포기한 것임을 뒤늦게 느끼고 후회하는 일을 반복하게 되면서도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
남편은 한 술 더 떠 마지막 숟가락이 내 입으로 들어와 목구멍으로 채 넘어 가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서를 들고 나가 버린다. 남편 또한 서둘러 음식점을 나가야 할 바쁜 용무는 없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 리모컨을 켜고 소파에 편히 눕는 일도 급한 일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별다른 대화 없이 그저 뱃속을 채우는 일에만 의미를 두는 것으로 식사 시간이 마무리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남편은 식사를 서둘러 끝내는 습관 탓에 식사 시간을 핑계로 하고 싶었던 속 얘기를 준비한 나와의 소중한 대화 시간을 애써 버리게 되는 손해를 본 것이니, 결국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을 아끼려다가 훨씬 더 중요한 시간들을 잃게 되는 결과만 가져왔다.

한마디로 시간 절약을 당연히 요구하면서 정작 그 절약되어 돌아온 시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나머지 주어진 시간에 대해서는 무책임하게 보내고 있다면 참 모순이다. 1초, 1초 재촉을 서두르는 시계 덕분에 20분 만에 도착한 피자. 그만큼의 절약된 시간을 나는 어떻게 의미 있게 썼는가. 기다리지 않고 음식점을 나옴으로써 절약한 나의 20분이란 시간. 나는 어떻게 요긴하게 썼는가. 식사를 끝내고 커피 한 잔 여유롭게 마실 시간마저도 절약하여 집으로 돌아간 우리 부부. 과연 어떤 가치 있는 시간을 보냈는가. 쉽게 대답할 수 없어 민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