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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박인경
작성일 2009-03-18 (수) 14:11
ㆍ추천: 0  ㆍ조회: 2227      
오드리 햅번과 나
오드리 햅번과 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박인경




오드리 햅번, 그녀가 살아 있다. 나와 함께 살아 가고 있다.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남아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다. 나와 그녀의 인연은 이십여 년 전 부터이다.

어느 해 봄 토요일 아침, 주말동안 세미나에 참석해야 한다며 남편은 집을 나섰다. 일요일 오후 늦게야 돌아온다던 그가 오전에 집으로 돌아 왔다. 햇살도 따스하여 남편과 나는 창가에 놓인 소파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문득 창밖을 보니 새봄을 맞아 나뭇 가지마다 연한 녹색의 새싹들이 돋아 나고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자연은 봄이 오면 다시 또 저렇게 피어 나건만 여자한테 봄은 너무 짧은 것 같아요. 젊음과 아름다움은 속절 없이 빨리도 가버려."
라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그렇치 않은 사람도 있지. 오드리 햅번과 당신, 아직도 오드리 햅번은 아름답고 당신도 그래."
라고 대답했다. 나는 순간 폭소를 내뿜었고, 그래서 세미나 중간에 빠져 나와 빨리 돌아 온 것이라며 듣기 좋은 거짓말을 늘어 놓았다. 옆에 있던 아이들도 맞장구를 쳤고, 그때부터 집안에서 내 별명은 '오드리 박''이 되었다.

하나의 사연이 더 있다. 몇 년 전 미국인에게 영어회화공부를 했었다. 그는 한국 이름의 발음을 너무 힘들어 했다. 그래서 미국식 이름을 내게 붙여 주었다. 지금도 좀 부실하지만 그당시는 체중이 45kg밖에 되지 않아 누가 보아도 가여울 지경이었다. 키가 크고 뚱뚱했던 그는 '오드리 햅번'처럼 가냘퍼 보인다며 '오드리 박'이라는 영어 애칭을 붙여 주었다. 영어회화공부는 아직도 계속하고 있는데 강사나 공부하는 장소가 바뀌어 나를 소개할 때가 되면 이제는 '오드리 박'이라고 자연스럽게 말한다. 또 한 번은 친한 친구가
"너는 가벼운 몸무게뿐 아니라 고고한 척하는 기질도 가지고 있고 옷차림도 단순하고 기본적인 스타일을 좋아하니 오드리 햅번과 많이 닮았어."
라고도 말했다.

어떻게 1세기에 한 번 나올까말까한 미녀 배우와 내가 비교될 수 있겠는가. 내 얼굴을 한 번 본 사람이라면 '어디가 오드리 햅번을 닮았어? 착각하고 있네.'라고 비웃을 일이다. 하지만 그런 비교가 무척 기분좋았던 것은 나도 속물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어찌 되었든 나의 유일한 남자에게 그런 찬사를 듣고, 외국인으로부터 애칭까지 얻게되니 그녀 '오드리 햅번'에 대한 관심이 자꾸만 높아져 갔다. 그녀의 자취를 알고 싶어 그녀에 대한 기록이나 책을 찾아 읽고, 출연했던 영화를 비롯해 사망 후 다큐멘터리로 엮어진 프로그램까지 모두 섭렵하게 되었다.

그녀는 1925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부유한 영국인 은행가 아버지와 남작 가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 태어 났다. 어머니는 하나뿐인 딸의 가정교육에 엄격하여 귀족다운 품위를 유지하게 하였다. 오드리의 모습에서 우아한 기품이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네덜란드, 폴란드, 영국 등으로 이주하여 살았으며 2차대전이 일어날 때는 10대 소녀로서 폴란드에서 지냈다. 나치 점령 하에서 오드리는 전쟁의 공포와 굶주림 등 온갖 시련을 겪었고 쉬 배가 고프지 않게 하려고 늘 침대에 누워 많은 책을 읽었으며, 이런 일들은 후에 그녀로 하여금 지적인 외모를 갖게 하였다. 또한 이 시절의 수난과 가난의 교훈으로 말년을 UNICEF(국제연합아동기금) 선행홍보대사로 일하게 되었다.

19세 때 런던으로 가 어릴 때부터 시작한  발레리나 수업을 받지만 키가 너무 큰 탓(170cm)에 영화계로 진출하게 되었다. 1953년 '로마의 휴일'로 오스카상을 탔으며, '마이 페어 레디'와 사브리나' 등 12년 동안 15편의 영화에 출연하여 인기와 영광을 누렸다.

또한 오드리 햅번의 스타일은 그것 자체로 고유명사였다. 화려한 치장 대신 적게 차려 입고, 자연스러우면서도 편안한 옷을 입었으며, 구두도 오래 신을 수 있는 잘 맞는(반치수 더 큰 ) 것을 좋아했다. 절대로 유행에 휘둘리지 않으며 자신 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영리하게 잘 포장된 사람이 아니라 밑바닥에서 정직함과 신뢰성이 느껴지는 참된 사람을 존중했다. 노년에 그녀는 아들에게  '사람은 왜 손이 두 개인가, 한 쪽 손은 나를 위해 쓰고 다른 손은 남을 위해 쓰라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노후의 인생을 세계의 굶주린 어린이를 위한 봉사로 마무리한 그녀도 역시 죽음은 피할 수 없어 1992년 9월 소말리아를 방문한 뒤 직장암을 발견하고 수술하였으나 1993년 1월 스위스 제네바 톨로체나이즈 마을에서 63세로 인생의 막을 내렸다.

이제 그녀는 가고 없다. 그러나 그녀가 남긴 영화와 사진들은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 있어서 얼마 전에는 세계 유명 배우 중에서 최고의 여자배우로 뽑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외모의 화려함 만을 추억하기 보다 진실과 노력, 남을 위한 봉사로 점철된 그녀의 인생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삶의 궤적을 보면서 나는 그녀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귀여운 요정같은 미소, 둥글고 반짝이던 눈동자, 글래머의 몸매를 다 드러낸 드레스로 치장하는 다른 여배우들보다 목 높고 팔 긴 드레스에 가녀린 몸을 감추고도 아름다웠던 여인. 지금은 가버린 여인. 그런 윤회가 가능하다면 다시 그 우아한 모습으로 환생한 그녀를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다.
                                  (2009.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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