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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이신구
작성일 2009-03-17 (화) 04:09
ㆍ추천: 0  ㆍ조회: 2406      
추억의 도시락
추억의 도시락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이신구




 "권 교장, 40년이 지났으니 애들도 50대가 다 되었겠지?”
 "글쎄, 그 개구쟁이들이 어떻게 변했나 궁금하구만.”

서울에 살던 제자들이 은사를 초청한다고 해서 담임을 맡았던 우리 두 사람이 옛 이야기를 나누며 서울로 가고 있다.

터미널에 마중나온 제자들을 따라 아담한 식당에 도착해 보니 프래카드도 설치해놓고 명찰도 달았으며, 악대를 초청하는 등 제법 성대한 자리를 마련했다. 이제 50대인 제자들과 스승인 우리들은 외모만 언뜻 봐서는 누가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반백의 머리가 많았다. 인사가 끝나고 회장이 제자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서야 잘 알아볼 수 있었다.

당시 가난에 쪼들린 시골 아이들이 무작정 상경하여 갖은 고초를 겪으며 자수성가하고 자리를 잡은 제자들과 자랑할 만한 신랑을 맞은 여학생들은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그 때 회장이 손뼉을 두세 번 치자 자리가 조용해지고, 은사에게 기념품을 증정하고 나서, “우리의 이 모임이 있기까지 물심양면으로 애써 준 친구를 소개하겠습니다. 모두 박수로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방토건주식회사 이강엽 사장님이십니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힘찬 박수가 터졌다. 이 사장은 고맙다고 손을 들어 인사하더니 “이 자리에 모신 은사님들의 덕으로 오늘의 제가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하며 큰절을 했다. 상경 후 막노동과 버스운전 등 고생을 이겨낸 이 사장의 성공담에 가슴이 저리기도 했다. 특히 6학년 때‘입원과 특별지도'를 받던 이야기에 나는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때가 새삼스레 떠올라 가슴이 뭉클했다.

1960년대 초, 따사로운 햇볕이 내려쬐고 해가 길어지는 늦은 봄, 오후 수업이라 졸릴 만도 하지만, 책상에 머리를 박고 꿈쩍도 하지 않는 아이, 강엽이는 숙제도 해오지 않는 단골손님이었다. 한 번은 복도에 벌을 세워놓고 교무실에 다녀오니 벌을 같이 서던 친구와 코피가 범벅이 되도록 싸우고 있었다.
나는 화가 나서 교실 안으로 불러들여 머리를 쥐어박으며 꾸중을 하는데 겁에 질려 피하려던 강엽이가 넘어져 책상모서리에 머리를 찧고 엉엉 우는 것이 아닌가. 머리 한 쪽이 찢겨 피멍울이 져 있었는데 그 날 이후 강엽이는 쭉 소식도 없이 결석을 했다.

걱정도 되고 궁금하여 이웃 친구들에게 물어물어 가정방문을 해 보니, 강엽이는 학교에서 3㎞ 쯤 떨어진 구석진 마을 외딴집에 살고 있었다. 방문을 열어보니 혼자 방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앓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벌컥 겁이 나서 밭에 계신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아빠는 병사하시고 엄마는 개가하셨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가정형편이었다. 병원에 가기를 권했으나 형편이 여의치 않다고 회피하시는 할머니를 설득하여 강엽이를 데리고 가서 화호병원에 입원시키고 늦게야 학교로 돌아왔다.

의사 선생님은 염려 말라고 하셨지만 2-3일 후 다시 방문하여 상담한 바,‘감기와 류마치스'라고 말씀하시며 선생님과는 관계가 없다고 했다. 걱정하는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 의사선생님은 곧 퇴원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강엽이는 2주 뒤에 퇴원했고, 병원비는 어려운 학생임을 감안하여 감액 받은 걸로 기억된다.

학교에 등교한 강엽군은 기초학력도 부족한 터에, 장기결석으로 방과후 1-2시간씩 특별 개별학습을 해 주었다. 할머니는 늦으면 으레 마중을 나오셨다. 늦게까지 개별지도를 받고 가는 강엽이는 생활이 곤란하여 도시락도 지참할 수 없었는데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처음에는 내 도시락을 넘겨주었으나, 나중엔 아예 두 개의 도시락을 싸 달라고 해서 하나를 슬쩍 넘겨주었다. 그 뒤 강엽이는 주는 도시락을 가끔 거부하는 것이었다. 아마 친구들의 눈치 때문인 것 같았다. 생각 끝에 하숙집 아주머니와 짜고 점심시간에 심부름을 보내면 점심을 먹여 보내주기로 약속하였다. 그 뒤 하숙집에서는 하숙비를 더 주어도 받지 않아 고기나 간단한 선물을 사다 드렸다.

나에게도 보릿고개를 겨우 넘길 때까지 도시락 작전은 계속되었다. 6․25한국전쟁 직후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심한 흉년에 보릿고개로 인해 굶기를 밥 먹 듯했다. 그 때 일을 생각하면 담임선생님의 도시락은 두렵고 계면쩍으면서도 꿀맛 같았던 기억이 난다.
그 때도 친구들의 놀림이 두려워 선생님 도시락을 피해서 도망다니는 나를 찾아와 숙직실이나 학교 뒷산에서 전해주시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점심시간에 배고픔을 참으며 학교 뒷산의 묘지에서 숨어 지냈던 그 때의 추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당시 김연순 선생님을 아무리 수소문해도 소식을 알 길이 없어 안타깝다. 그 때 김연순 선생님에게서 받은 그 도시락을 나는 강엽 군에게 물려준 것이다. 꿈 같은 옛 추억이다. 추억의 도시락은 사제간의 아름답고 끈끈한 정이었다.

                                     (2009. 0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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