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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위미앵
작성일 2009-03-13 (금) 18:47
ㆍ추천: 0  ㆍ조회: 2230      
빨간색에 대한 추억
빨간색에 대한 추억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위 미 앵


   사람에게 있어서 어린 시절은 삶의 고향이자 되돌아가고픈 안식처와 같다. 자신의 삶의 자취인 그리움이 남아 있다면 더욱 의미가 있기에 빨간색 그리움은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제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항상 빨간색으로 다가 온다. 빨간색이 던지는 따뜻하면서도 슬픈 이미지가 한 아이를 통해 비춰지기 때문이다. 빨강 티셔츠를 즐겨 입은 그 아이는 언제나 마음속에 자리 잡아 바람 불면 마음 한 자리가 저려 오게 한다.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그에 대한 그리움을 쫒아 옛날 그 자리로 돌아가는 추억의 버스에 몸을 실어 보니, 이내 동화 속에 나오는 거인의 발자국 소리처럼 성큼 성큼 추억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어느 바람 부는 날, 그리움을 쫒아 초등학교를 방문해 보니, 학교 앞에 항상 있었던 호박엿 장수의 손수레도, 칡뿌리와 번데기를 팔던 좌판대도 없었고, 그리움에 지친 눈물만이 있을 뿐이었다. 6학년 때 공부했던 운동장 앞 교실로 들어가 창가에 기대어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꿈과 낭만이 가득했던 넓고 큰 운동장이 어느새 작게 변해 버렸다. 나의 작은 마음에 커다란 꿈을 안겨 주었던 운동장. 운동장은 나에게 빨간색과 연결되어 소중한 추억이 어린 곳이다. 그 곳에는 나의 마음을 빼앗은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기다리는 듯 운동장 축구대로 시선을 돌렸다. 축구 대에 기댄 채 빨강 티셔츠를 입은 아이가 고개를 살짝 내밀면서 날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살짝 몸을 숨기며 숨을 멈췄다. 바로 그 아이! 내가 그토록 좋아하며 그리움으로 마음을 앓아 왔던 아이. 작은 운동장은 빨강색으로 물든 아이의 모습을 나타냈다가 사라지게 하는 마술을 부리면서 그 때 그 시절로 나를 옮겨 주었다.

  빨강 티셔츠를 즐겨 입은 아이는 당시 6학년 남학생으로 축구부 주장이었다. 방과 후 운동장에는 빨강 티셔츠를 입은 그 아이가 축구 대 앞에서 공차기 연습을 하고 있었고 나는 매일 창에 기대어 연습하는 그 아이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자신을 쫒아 다니는 은밀하고도 끈질긴 시선을 눈치 채고부터 날 향하는 눈망울은 맑고 깊었던 것 같다. 내 짝이 그 아이 집의 아래채에 산다는 이유로 매일 짝으로부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짝사랑은 깊어만 갔다. 짝은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하는 것을 눈치 채고 그의 가정사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의 엄마는 자녀가 둘이 있는 남자와 결혼해 이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그러니 전처의 자녀들과 마찰이 잦았을 테고 그로 인해 엄마가 우는 날이 많다고 했다. 그럴 때면 이 아이도 함께 운다고 전해 주었다. 그 아이의 눈엔 항상 슬픔이 가득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족 간의 갈등으로 그 아이가 감당해야 했을 무게는 얼마나 버거운 것이었을까?

  라이벌인 이웃학교와의 축구시합이 있는 날, 더 이상 교실 창가에 숨어 훔쳐 볼 이유가 없어서 운동장으로 나가 응원을 하였다. 날렵하게 뛰는 그 아이의 모습에 흠뻑 빠졌지만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 승부차기로 승패를 가렸지만 그마져 지고 말았다. 주장인 그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남자가 우는 것을 처음 본 것 같은 충격과 함께 나도 서럽도록 울었다. 그 아이가 슬프면 나도 슬펐고 그 아이가 기쁘면 나도 덩달아 기뻤다. 그렇게 내 마음은 전해졌다. 처음으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정을 전하는 법을 배우게 해 준 아이. 따뜻한 마음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 준 아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아픔에 함께 동참하는 법을 알려 준 아이였기에 아직까지도 그리움의 그릇에 고이 담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가슴 아픈 사연으로 짝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지만 이제 세월이 몹시 흘렀는데도 아련한 추억으로 내 마음 한켠에 빨간색 그리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벌레 소리가 침묵하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오는 날,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얼굴. 빨강색 티셔츠의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작은 사랑을 전하고 있을까? 이제는 많은 세월의 더께가 쌓여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나이이기에 작은 소망을 안고 그저 웃으며 만나보고 싶다. 아직도 빨간색은 나에게 그리움을 안겨주는 특별한 색이다.
                         (2009.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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