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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이윤상
작성일 2009-03-12 (목) 04:57
ㆍ추천: 0  ㆍ조회: 2153      
눈꽃 핀 날의 산행
눈꽃 핀 날의 산행
              행촌수필 문학회, 안골복지관 수필반 이윤상 (제172호)




 우수에 풀렸던 대동강이 경칩에 디시 얼어붙는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날씨였다.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경칩을 이틀 앞두고, 3월 3일
새벽부터 아침까지 전주에는 봄을 시샘이나 하는 듯, 상서로운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  

“떠나길 주저하는 겨울의 끝자락에서 새싹이 움트는 소리에 산골짜기는 진동하리라.”
라고 어떤 시인은 노래했지만, 경칩이 내일 모래인데, 눈발이 흩날리니 춘신(春信)은 아직도 멀리 있는가 보다.

매주 화요일은 전주에 사는 대부분 교장으로 퇴직한 전주사범학교 동창친구들 15~18명이 모여서 산행하는 날이다. 일년 내내 산행을 해도 요행이 날씨가 좋아서 비가 오거나 눈이 많이 와서 산행을 못하는 날이 한 번도 없었다. 매월 첫 번째 화요일엔 부부동반 산행을 하기로 하고, 이 날은 주차장이 넓은 모악산으로 산행코스를 잡았다.

눈발은 날리지만 매주 화요일엔 날씨에 관계없이 모여서 산행하는 날이라, 나는 등산화에 아이젠을 끼우고 버스로 구이면 상학, 모악산 주차장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모악산 입구, 고은 선생의 자연석 시비가 있는 곳에 가니 벌써 일행 여러 명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언제나 10시 이전에 모여서 10시 정각이면 어김없이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대원사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들어서니, 벚꽃나무에 하얀 왕벚꽃이 활짝 핀 모양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눈꽃이 온통 나무마다 활짝 피어서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동부능선을 타고 눈꽃이 눈부신 나무 사이를 조심스럽게 오르면서 보니, 나무마다 어쩌면 그렇게도 화사한 눈꽃을 매달고 등산객들의 시선을 붙잡는지 황홀하기 그지 없었다.

오랜 만에 동행한 부인들은 뒤따라 오르면서 눈꽃에 반해서 나무만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오면 강아지나 아이들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회갑을 다 넘긴 여인들, 할머니들이지만 이날만은 꿈 많던 여고시절로 돌아가고, 자연의 신비감에 젖어, 낭만을 만끽하면서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나 혜택은 무한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앙상하게 옷 벗은 나무들이 매서운 바람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을시년스런 모습이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백의의 천사처럼 하얀 옷으로 단장하고, 머리에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눈꽃을 가지가 휘어지도록 매달고 있는 모습을 감상하며
“야! 저 눈꽃 좀 보소!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신비스런가!”
등산객들 마다 외치면서,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는가 보다.

“내장산 붉게 타는 단풍아 자랑마라/ 눈 쏟아지는 날/ 비자림 푸른 숲에 쌓인/
 비자나무 설경이 더 아름다워라/

노산 이은상 선생의 이 시구처럼 4월의 벚꽃 축젯날, 꽃이 아무리 만발해도 이날의
눈꽃만큼 현란(絢爛)한 경관(景觀)은 찾아볼 수 없으리라.  

눈은 내렸지만 바람 한 점 없이 포근한 날씨라, 등산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날 눈은 내렸지만 영상 7~8도 이상의 기온으로 습도가 높은 날이라, 눈이 나뭇가지에 엉겨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아서 눈꽃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날씨였다. 평일인데도 등산객들이 몹시 붐볐다. 어느 회사에의 젊은 청춘남녀들이 단체로 산에 오르면서 황홀한 눈꽃에 넋을 잃고 있는 듯했다.

나는 왜 산에 가는가? 산에 가면  마음이 확 트이고 마음이 저절로 즐겁다. 산은 조용해서 명상의 샘터가 된다. 도시의 공해와 소음이 심할수록 사람들은 자주 산에 오른다. 산에 올라서 세속의 욕심과 마음의 때를 씻는다. 산에서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면서, 맑고 깨끗한 품속에 포근히 안기고 싶은 마음에서 산을 찾는다. 산에 가면 “세심정혼 (洗心淨魂)”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마음을 씻고 혼[情神]을 깨끗하게 한다는 말이다. 산속에 있으면 모두 착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 산에는 거짓이 없고 허세가 없다. 산은 우리의 어지러운 마음과 피곤한 몸을 어루만져 주는 인자한 손이요,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 주는 위대한 스승이다. 공기도, 물도, 골짜기도, 바위도 깨끗하다. 물소리, 새들의 노래소리, 바람소리도 맑다.

사람들은 노년기에 접어들면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재미날 것도 별로 없으며, 기뻐하고 열광하고, 희열이 넘칠 일도 별로 없다.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가슴이 흐뭇하고, 진한 행복감을 느낄 일도 별로 없이 담담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런 나의 일상에서 매주 화요일은 다정한 친구들을 만나는 기쁨, 만나서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배우는 보람, 노쇠해 가는 건강을 보강하는 기쁨으로 산행을 한다. 재미를 느끼고 행복을 맛보게 한다. 나는 화요일엔 외부와 어떤 약속도 하지 않는다. 화요산행이 나를 젊게 하고 나를 기쁘게 한다. 일주일 동안의 활력소를 얻는다. 내 가슴이 설레고, 웃음이 나오며, 재미를 느끼고, 행복을 맛보는 화요일이 기다려진다.

      (09.3.3(화) 모악산 산행에서 눈꽃을 보고 와서   09.03.07 소감을 쓰다.)


   
560-762 전주시 완산구 서신동
롯데A 103동 606호
행복한 시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010-7547-5233,집전화 063-275-5233
이윤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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