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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최윤
작성일 2009-01-09 (금) 16:44
ㆍ추천: 0  ㆍ조회: 2305      
웃기는 여자
웃기는 여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최윤


남편이 내게 숙제를 내겠다고 했다. 숙제란 말만 들어도 왠지 싫어서 볼멘소리로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아파트에서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하니, 가서 구경도 하고 책도 빌려보라는 것이었다. 순간, 아니 이 사람이 누굴 걱정하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결혼하고서 책을 읽는 것을  본 적이 있었나 싶게 책을 멀리하는 사람이 내게 그런 과제를 내다니, 기분이 조금 언짢았다.
“무슨 책을 빌리라는 건데?”
나의 퉁명스런 말에 그는 ‘유머집’을 한 권 빌려서 읽은 다음, 자기에게 하루에 한 개씩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순간 웃음이 나면서도 우리가 벌써 ‘권태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꼭 마지막에는 상처 주는 이야기로 끝내는 것 같아 요즘 난 말하는 것을 줄이고 있다. 게다가 하루 종일 직장에서 말을 많이 하고 들어온 남편일 것 같아 난 배려한답시고 말을 적게 하며 내버려둔 것인데 고작 한다는 말이
“재미없어, 심심해!”
하는 것이 아닌가! 난 속으로 ‘누군 안 심심해서 가만있는 줄 아나?’ 하는 마음에 화가 나서
“당신은 결혼 생활이 심심하기만 하지? 난 그 단계를 넘어서 불행하다고.”
라고 말해버렸다. 사실 장난삼아 한 말이었기에 그냥 둘 다 웃는 걸로 끝났다.

하지만, 다음 날 생각해 보니 그냥 지나칠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함께 놀러 다니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대화거리도 늘 비슷하다. 아마 선배 부부들도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노력하는 부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통의 즐거움 거리를 찾을 것이고, 아예 포기하여 서로가 각자 삶을 사는 무늬만 부부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옛날이야 어차피 부부란 그런 것이며 자녀가 있으니까 산다고 했겠지만, 어차피 백년해로를 하려면 같은 값이면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 몸속의 호르몬 때문에 사랑이란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그냥 정으로만 사는 것은 싫다. 하루하루가 늘 재미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그건 무리이리라.
막 결혼 했을 때만해도 마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다른 취향조차 너무 좋았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잘 하고, 좋아하는 남편이 신기하고 자랑스러웠다. 그 땐 남편의 기호에 맞춘 내가 싫어하는 반찬을 만들어도 함께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테니스를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 함께 연습하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난 너무 심한 몸치였다. 일찍부터 같은 취미 활동을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우리는 테니스를 하기로 했는데 내가 따라가기 힘든 취미라는 것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부부 공통의 취미란 남편만이 아니라 아내도 좋아해야 했다. 그래서 난 남편에게 책을 읽고 소감을 말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의했다. 그런데 남편은 듣자마자 자기는 독후감 쓰는 일이 가장 무서운 일이라며 싫다는 것이었다.

돈가스를 좋아하는 나와 한식만 좋아하는 그.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 뛰는 것을 좋아하는 그. 상상력이 풍부한 나와 분석적이고, 상상까지도 기승전결이 이루어져야 직성이 풀리는 그. 초등학교 때부터 시인이 꿈이었던 나와 자동차 만드는 사람이 꿈이었던 그. 글짓기와 그림 그리는 숙제만 나오면 좋아했던 나와 그런 숙제만 있으면 눈물을 흘렸다는 그. 뮤지컬영화를 좋아하는 나와 무협 영화를 좋아하는 그. 정말 다른 점이 많아 서로가 하는 일이 따분해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우리 둘의 유일한 공통점은 말이 없고, 유머감각이 제로라는 점이다.

남편과 나는 내 초등학교 남자친구의 소개로 만났다. 처음 만나던 날, 중매인이라며 함께 나온 친구는 철부지처럼 농담만 계속하고 있었다. 그 친구에 비해 몇 살은 더 연상인 사람처럼 어른스럽고 과묵해 보이는 남편이 왜 그리 멋져보였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과묵한 게 아니라 유머감각이 없었던 것 같다. 남편도 내 나이 또래에 비해 말을 아끼는 내가 그땐 우아해 보였단다. 나 역시 우아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유머감각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지금 생각해보니 그땐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끼었었다는 것이 우리의 공통적인 결론이다.

아무튼 남편의 ‘재미없다’라는 발언에 난 충격을 받았다. 3년이 조금 지나 벌써 그런 말을 한다면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아예 나란 존재는 보이지도 않을지 모른다는 상상까지 해버렸다. 그리고 난 아직도 남편의 발자국소리만 들어도 주인을 기다리는 애완동물처럼 귀를 세우고 설레고 있는데 어쩜 남편은 그럴 수가 있을까, 하는 배신감을 느끼며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런데 코미디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나를 발견했다. 코미디 프로그램은 참 재미있었다. 우울한 내 마음도 풀어지면서 ‘그래, 유머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남편도 가끔 노력을 하는 것 같았다. 썰렁한 개그를 하기도 하지만 너무 설명이 상세해지는 바람에 듣다가 재미가 없어져 버린다. 그러니 조금 나은 편인 나라도 노력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내일 도서관에 가서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유머전집이 있는 곳에서 서성이고 있을지 모른다. 눈물겨운 연습 끝에 난 ‘웃기는 여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이젠 남편의 기대를 뛰어 넘어서 개그맨 시험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또 너무 앞서 가는 상상을 하며 혼자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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