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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배윤숙
작성일 2008-11-02 (일) 05:46
홈페이지 http://blog.daum.net/crane43
ㆍ추천: 0  ㆍ조회: 2751      
든 자리 난 자리
든 자리 난 자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배윤숙

 

 밤 9시, 뉴스가 시작될 때야 깜박 생각이 나서 담요를 걷으러 베란다로 나갔다. 슬쩍 올려다 본 하늘에는 초승달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기 손톱처럼 생긴 달은 구름사이로 흐릿했다. 눈물이 앞을 가린 것처럼 희뿌옇게 시야가 흐려지는 것이 구름 탓이건만 옷깃을 여미며 쓸쓸함을 애써 지웠다.

이제 겨우 두 달이 지났을 뿐인데 아직도 견디기가 힘들다. 지난여름, 방학이 거의 끝나가고 명예퇴직을 일주일 남겼을까? 지나가는 말처럼 남편이,
“우리 주말부부 한 번 해볼까?”
했던 것이 벌써 그리 되었다.

 두 딸들도 서울서 생활한지 십년이 넘었고, 이제 퇴직한 뒤에는 우리 내외가 오순도순 손잡고 다정하게 살 일만 남은 이 마당에 무슨 주말부부냐고 볼멘소리를 했더니 이리 와 앉아 보라고 했다. 원래 실없는 소리를 잘 하지 않는 남편인지라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그렁그렁해진 내 눈을 보이기 싫었다. 얘기인즉 명예퇴직을 한 뒤 남은 1년은 시골에 가서 조용히 쉬고 싶으니 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여름방학 중에 후배를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가 나왔고 생각해 보겠노라 했단다. 겨우 일주일 남짓 남겨놓고 주말부부를 하자고 말하는 남편도 결정하기가 힘들었겠지만 시간을 두고 생각해볼 여유도 없는 나도 마음 정리가 쉽지 않았다.

밤새 뒤척이며 고민을 한 그 이튿날, 아무래도 시골 학교를 살짝 염탐(?)해야 할 것 같아 집을 나섰다. 정읍에서 입암 쪽으로 시골길을 10여분 달려서 도착한 자그마한 가평이라는 이름의 아담한 마을. 배우 이병헌과 전도연이 주연으로 나오는‘내 마음의 풍금'에서 본 것처럼 생긴 빨간 벽돌로 지어진 예쁘고 아담한 학교였다. 꽃밭에는 백일 된 아기의 꽉 쥔 주먹만큼 커다란 꽈리나무와 봉선화가 가득하였고, 당산나무처럼 커다란 고목들은 운동장 가장자리에 떡 버티고 서서는 뜨거운 여름 볕을 실컷 가릴 만큼 아주 넓은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알록달록 원색 빛깔의 미끄럼틀이 보였고, 돌로 만든 동물들도 보였다. 모진 풍파 다 겪은 탓에 칠이 벗겨진 동물들은 제 색깔이 나진 않았지만 든든하게 교정을 지키고 있었다. 핸드폰 카메라에 학교 모습을 찍어 딸들한테 보내주고는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더운 날씨 탓에 아무도 없을 것만 같은 운동장에서는 아이들 몇이 공차기를 하고, 사람들의 쉼터가 되면 아주 좋을 듯 넓은 숲을 이룬 나무그늘에는 사람들 몇이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업이 끝난 아이들과 공차기를 하셨다는 그 학교 선생님들이셨다. 마을 광장 안내판에 그려진 그림처럼 예쁜 마을, 그 마을에 자리한 예쁜 학교는 내 마음을 움직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지 때 마침 남편의 후배 되시는 교감선생님이 나오셨다. 나도 아는 분이어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런저런 좋은 점을 말씀하시며 나를 안심시키려 하셨다. 교직원이라야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열 두 분이라고 했다. 한 시간여 얘기를 나누고는 벌써 내 머릿속엔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버린 학교를 나섰다. 저녁이 되면 아직도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날 것만 같은 신혼 초에 살던 산골마을을 생각하며 전주로 향했다.  

이런저런 필요한 서류는 팩스로 오고 갔기에 퇴직하고 난 이틀 뒤 곧바로 첫 출근을 하였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이른 식사를 하고, 국도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그 곳으로 출근하는 그 일주일 동안, 남편이 가져갈 필요한 살림살이를 하나씩 준비하였다. 조그만 밥솥, 쌀, 밑반찬, 두 사람 분의 수저와 밥 그릇, 이부자리 등을 챙기며 부산을 떨었다. 문간방에 가득 쌓인 살림살이들을 보니 한 사람이 살던 열 사람이 살던 필요한 것은 다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첫 번째 일요일, 주말부부로의 첫날에 남편과 나는 차에 짐을 바리바리 실었다. 기분이 묘했다. 가슴이 텅 비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괜히 심드렁해져서는 가는 내내 차창밖만 내다보았다. 한들거리며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보니 울적해져서 운전하는 남편을 보고 입을 삐죽 내밀고 눈을 흘겼다.  

드디어 학교에 도착하여, 관사에 짐을 풀었다. 아주 오랫동안 방치해둔 부엌을 치우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꽤 걸렸다. 주사 아저씨가 학교 텃밭에서 따다준 호박과 고추로 된장찌개를 끓여 점심을 먹었는데 기분이 또 묘했다. 방 정리를 하고 나니 전주로 돌아올 시간이 다가왔다. 괜히 옷장을 열기도 하고, 이부자리도 꾹꾹 눌러보기도 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에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애써 외면하며 차에 올랐다. 룸미러로 뒤돌아본 남편이 손을 흔드는데 그 모습에 그만 눈물이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래, 남편이 조용한 곳에서 마음 편하게 쉬고 싶다니 좋게 받아들이자. 얼마나 쉬고 싶었으면 시골학교를 택하였을까. 먼저 근무하던 곳에서도, 다른 곳에서도 와 주길 요청하였어도 거절하고 택한 곳이라고 하지 않던가. 오랜 교직생활을 마감하는데 있어 오히려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전주로 돌아왔다. 드디어 주말부부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아침 6시 반에 알람을 맞춰놓고 전화로 아침인사를 나눈다. 남편은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난 뒤 샤워를 하고 아침식사를 한다고 했다. 하루에 네다섯 번의 통화 중 마지막 통화는 내가 체육관에서 돌아와서야 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심심하지 않느냐니까 그 동네가 고향이라는 주사 아저씨와는 바둑도 두고, 퇴근 시간이 이르니 아저씨 오토바이 뒤꽁무니에 타고 산에도 가고 저수지에서 또랑새비(토하(土蝦))랑 피라미도 만난단다. 그 탓에 큰딸이 사다준 그림도구는 제 구실을 못하게 놓아두고 완전 별장지기처럼 산단다.

일주일에 한 번씩 왔다 갈 때마다 짐이 하나씩 는다. 계절이 바뀌면서 옷들도 챙겨가니까 옷장이 비어간다. 이부자리도 한 채 가져갔으니 이불장도 비었고, 신발도 몇 켤레 챙겨갔으니 신발장도 비었다. 그러나 텅 빈 집은 표시가 더 크게 난다. 창밖의 새 소리, 채소장수 지나가는 소리만 아니라면 꼭 절간 같다.‘나는 고물입네.’ 하며 오래된 김치냉장고에서 가끔씩 뜨르륵거리는 소리에도 그만 깜짝 놀라기도 한다. 거기에 바람에 몸을 맡긴 찰랑거리는 풍경도 한 몫 거드니 절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겨우 한 사람이 떨어져 살 뿐인데 그 한 사람의 난 자리가 이렇게 클 수가 없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더니 요즘 꼭 그 짝이다. 2인분의 밥을 해서 넣어둔 밥통은 사흘 만에 비우고, 김치를 보시기에 조금 담아놓은 것도 며칠째 그대로다. 영양실조에 걸리면 안 된다고 해서 조기 한 마리를 굽기도 하고, 삼겹살도 두 조각 구워보지만 영 제 맛이 나지 않는다. 좋아하는 과일도 한 이틀 거르기 일쑤고, 늘 챙겨먹던 영양제도 안 먹은 지 여러 날이다. 나는 이러면서 남편한테는 잔소리다.
“식사 잘 챙겨 드시죠?”

오늘은 토요일이다. 환한 모습으로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며 생선찌개를 끓여 놓아야겠다. 복분자 술도 한 잔 곁들일까? (2008.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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