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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정영권
작성일 2008-11-01 (토) 06:03
홈페이지 http://blog.daum.net/crane43
ㆍ추천: 0  ㆍ조회: 2937      
잠에 대한 단상
잠에 대한 단상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수요반 /정 영 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고 한다. 점심을 먹고 잠깐 자는 버릇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바짝 정신을 차려 운전을 하는데도 자꾸만 눈이 감겼다. 무의식중에 언뜻 졸기도 했던 것 같다. 깜짝 놀라 갓길에 차를 대고 잠을 청했다. 심술궂게도 막상 자려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눈을 감고 선잠일망정 자고나니 머리가 개운하고 입안에 단침이 돌면서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잠을 잤다고 할 수 없는데도 마치 자고난 것 같은 느낌과 효험이 있었다. 이는 마치 배가 몹시 고픈데 형편이 안 돼 물을 마셔 허기를 달랜 것과 같은 이치리라. 곤히 잠을 자는 것은 식사요, 눈만 감고 선잠을 자는 것은 맹물이라고나 할까?

 내가 단호히 운전을 멈추고 자려했던 것은 그 옛날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 십년 전쯤의 일이다. 환란으로 경제가 위기에 이르자 IMF로 부터 구제 금융을 받았는데, 그 대가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은행 몇 개는 매각 또는 인수합병의 방식으로 정리되었고,   나머지 은행들도 여차하면 쓰러질 판이라 촉각을 곤두세우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나는 지방은행에서 중책을 맡고 있었기에 중앙인 서울로 출장이 잦았다. 심할 때에는 일주일을 서울에 머물면서 일을 봤다. 그러다보니 몸과  마음이 몹시 지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늦게까지 관계자들과 만나 일을 보고 약주도 좀 마신 다음 호텔로 돌아왔다. 피곤한데다 술도 취해서 그냥 잠에 골아 떨어졌다. 그런데 얼마나 잤을까? 매캐한 냄새가 느껴지면서 호흡이 곤란해지고 팔이 따가웠다. 눈을 떠보니 이불에 불이 붙은 것이었다. 숨 쉬기가 힘들었지만 창문을 열면 바람과 산소가 들어와 불길이 심해질 것 같아 출입문만 열었다. 비상벨을 누르려다 소란스러울 것 같아 혼자서 해결하기로 하고 그만두었다. 욕실에 있는 샤워 줄을 늘여서 꺼보려고 했으나  짧았다. 수건에 물을 흥건히 묻혀 손에 감고 이불을 끌어다 욕조물속에 쳐 넣었다. 침대에 남은 잔불은 물 먹인 수건으로 잠 재웠다. 한숨을 돌리고 나서야 당번을 불렀다. 침대는 바꾸고 방 전체를 다시 꾸민다 해도 냇내  때문에 보름정도는 손님을 받을 수 없다며, 이것저것 하여 꽤 많은 돈을 요구하였다. 게다가 영업과는 상관없으니 신용카드로는 결제가 안 된다고 하였다. 억울한 생각이 들어 소방서에 신고하여 정식으로 처리하려다 그렇지 않아도 은행 일만으로도 복잡한데 귀찮을 것 같아 포기하고 돈을 빌려 해결하였다.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늦게야 깨달은 일이지만, 침대에 누워 담배를 피우다 그대로 잠들어 일어난 사건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매슬로우(Maslow)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욕구 7단계 중 제1단계가 생리적 욕구라고 한다. 생리의 기본은 먹고, 배설하고, 자고, 종족 번식하는 행위 정도가 아니겠는가?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의 욕구는 생각할 수도 없거니와 생존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또한, 인간생활의 기본요소는 의식주(衣食住)라고 한다. 적어도 옷과 음식 그리고 집은 있어야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옷과 집도 있어야겠지만 없다고 죽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옷은 활동하는데 유용하고 집은 잠을 자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음식은 꼭 있어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도 토를 달지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생태적 활동은 먹는 것부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먹었기 때문에 배설하고 종족번식본능도 생기며, 또 먹이를 마련하려면 일을 하게 되고 다음에는 휴식이 뒤따르는데 그의 절정은 수면이다.
수면은 생태적 순환과정이라기보다는 태생적 필수과정일 것이다. 왜냐하면, 먹지 않아도 잠은 자야하니까. 아기가 막 태어나서는 먹는 시간을 빼고는  잠만 잔다. 아니 먹으면서도 잘 정도로 거의 잠만 잔다. 그리고 노쇠하여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자다 깼다하다가 점차 자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마침내는 영면에 든다. 이렇게 잠은 거부할 수가 없다.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것은 제동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칠 수 없다면 달릴 엄두도 못 낼 것이다. 제동을 거는 것은 사람이 눈을 감는 것과 같고, 시동을 끄는 것은 수면을 취하는 것과 같다. 좀 더 비유하면 차체는 몸이요, 장식은 옷<衣>이고 연료는 음식<食>이며 차고는 집<住>에 해당된다. 차에게도 장식이나 차고는 몰라도 연료는 꼭 필요하듯이 사람의 수면에 해당하는 휴식<運休> 역시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잠이 주는 보너스 같은 선물로는 꿈이 있다. 꿈을 꾸면서 가끔은 가위눌리거나 흉한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좋은 면이 많다. 지나간 아련한 옛 추억을 그려본다든지,  혼자서 애태웠던 어릴 적 짝사랑을 만난다든지, 아쉬웠던 청운의 꿈에  젖어본다든지, 새처럼 훨훨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든지, 마음에 담아두었던 꺼림칙한 일을 되뇌어 성찰해본다든지…….

   요즈음 나는 충분하고도 깊은 수면을 취하고 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다는데 다행이다. 그런데 아직도 아이들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자주 꾼다. 날개가 없어 팔과 다리로 유영하듯 하는데 몸은  엎어지기보다는 세워져 있는 편이다. 재미는 있는데 깨어나면 겸연쩍어 피식 웃고 잊어버린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쉰지도 칠 개월이 흘렀다. 이제는 꿈속에서라도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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