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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송병운
ㆍ작성일	2010-03-19 (금)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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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신부님의 스웨터
베드로 신부님의 스웨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목요 야간반 송병운

날씨가 따뜻해지자 아내가 장롱을 정리하였다. 잘 입지 않는 옷은 장롱 속에 넣고 입어야 될 것은 꺼내어 옷걸이에 걸어 놓고 있었다. 아내의 손길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던 옷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연분홍색이 깃든 꽤 오래 된 스웨터였다. 나도 모르게 그 옷을 가슴에 안아보았다. 따뜻한 정겨움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꽤 오래 된 일이었다. 퇴근을 하려다가 교직원 휴게실에 들렀다. 유난히 술을 좋아하셨던 김 베드로 신부님께서 퇴근길에 술친구를 찾으려는 듯 담배를 피우며 앉아 계셨다. 늘 그렇듯이 약간은 무뚝뚝한 모습이었지만 그날따라 유달리 예쁜 색깔의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예순이 넘은 어른이 입기에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할 정도의 화려한 색깔이었다. 그러나 결코 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귀엽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신부님! 스웨터가 예쁩니다. 정말 멋져요.”
“응, 그래? 고마워.”

그 다음 주 월요일이었다. 신부님이 교무실에 들어오시더니 따라오라는 눈짓을 하셨다. 뒤를 따르면서 혹시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하고 걱정이 되어 이런저런 생각을 해봐도 특별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신부님 방에 들어가 소파에 앉으니 커다란 종이봉투를 주시며,
“지난주에 송 선생이 내 옷이 예쁘다고 했지? 주말을 이용해서 백화점과 시내 옷집을 돌아다녔는데 똑 같은 옷을 구할 수 없었어.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입었던 것을 깨끗이 빨았지.”
나는 펄쩍 뛰면서 받을 수 없다고 사양하였다. 절대로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하는 나를 크게 나무라면서 옷이든 물건이든 좋아하고 필요한 사람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정말 잘 어울려서 칭찬한 것인데 그것을 준다니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받아서는 안 되는 줄 알지만 신부님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결국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 옷을 받았다. 나는 그 옷을 좋아하여 자주 입게 되었다.

아직도 신부님의 따뜻한 마음이 스며있는 것 같아 잊었던 옛 모습이 떠오른다. 그 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주고자 사셨던 분이다. 머리숱이 적은 사람을 보면 모자를 사다주고, 운동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만보기를 사다주며 부지런히 걸으라고 하셨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것을 즐겨하셨는데 모두가 누군가에게 주고 싶어서였다.

전동성당 앞에서 어떤 사람이 시간을 물었단다. 그러자 그 신부님은 시간을 알려주면서 그 자리에서 시계를 풀어 주셨다. 당황하여 받지 않으려는 그 사람에게 나는 시계가 별로 필요 없지만 당신은 시계가 꼭 필요한 사람 같다며 기어이 주셨다는 것이다.

그 신부님이 우리 곁을 떠나신지 10여 년이 흘렀다. 그러나 말보다는 실천으로 가르쳐 준 사랑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간직되어 있다. 신부님을 생각하며 나의 생활을 되돌아보니 남을 위해서 살았던 일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오로지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살아온 것 같아 부끄러움이 앞선다.

삶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얼마나 즐겁게 사느냐다. 세상살이에서 구차스러운 생각들, 귀찮은 일들을 떨어버리고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보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즐겁게 사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권력이나 재물, 혹은 명예 등 손에 쥐는 것을 통해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다. 그러나 베드로 신부님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으로 즐거움을 찾으셨던 분이었다. 훗날 만나게 되면 세상에서 얼마나 즐겁게 살았느냐,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주었느냐고 물으실 것 같아 두렵다.

베드로 신부님이 떠나신 뒤 유언장이 공개되었다. 신부님들이 평소에 유언장을 써놓으신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신부님의 유언장 내용은 간단하고 명료하였다. 책을 비롯하여 세상에서 당신이 소유하셨던 모든 것을 누군가에게 준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육신도 모두 내 놓으셨다. 안구를 비롯해 장기를 기증한다는 내용과 함께 몸은 대학병원의 의학실험용으로 사용하고, 끝나면 화장을 하여 산천초목에 뿌려주어 거름이 되게 해 달라고 하셨다.

주교님은 그 분의 유언을 모두 받아들였지만 마지막 내용인 화장을 하여 나무 밑에 뿌려달라는 것은 차마 받아들일 수 없다하여 거절하였다. 그래서 대학병원에서 의학 실험이 모두 끝난 뒤 전주 치명자산에 있는 성직자 묘지에 모셨다.

최근에 떠나신 법정스님의 생애를 들으면서 욕심 없이 사셨던 분들은 종교가 다를지라도 정말 똑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리고 사는 삶이 결코 쉽지 않은 길인데 말이다. 법정스님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베드로 신부님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일지라도 더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야한다는 삶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은 같은 의미가 아니겠는가.

성직자 묘지에 갈 때마다 그 신부님을 찾아뵌다. 그러나 신부님을 위해 기도하기보다 나와 우리 가족을 도와달라고 부탁하곤 한다. 생전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그 많은 사랑과 가르침을 받았으면서 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다. 다음에는 저도 남을 위해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와 깨우침을 주세요라고 부탁드리련다. 아마도 오랜만에 기특한 소리를 한다고 기뻐하시지 않을까.

(2010.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