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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효순
ㆍ작성일	2009-09-23 (수)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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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자랑
딸 자랑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효순

쏟아져 내리는 가을 햇살에 나뭇잎들이 싱싱한 물고기비늘처럼 반짝이는 일요일 한낮. 전주천변의 갈대꽃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의 은빛 머리칼처럼 멋지게 살랑대며 나에게 손짓을 한다.
그런데 지난 9월 1일부터 원하던 선생님이 된 딸은 몸이 천근만근이어서 침대 속으로 스며들 것 같다며 누워서 TV리모콘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가르치는 일이 만만한 직업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사람 대하는 일의 즐거움과 허망함을. 한 주일 동안 몸과 마음에 쌓인 피로가 눈꺼풀을 내리 누르고, 가슴에 얹힌 어떤 일은 소화불량을 일으키기도 하리라.
이럴 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안쓰럽고 짠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일밖에 없다. 그런 엄마 마음을 눈치 챘는지 딸은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엄마. 나 수영장에나 다녀와야겠어. 이러고 방안에만 있기엔 날씨가 너무 좋지?”
그렇게 나갔던 딸이 집에 들어오면서 쇼핑백 하나를 건네주었다. D사의 골프용 T셔츠다. T셔츠를 그렇게 비싼 돈 주고 살 만큼 통이 크지 못해 싼 옷 파는 데만 기웃거리는 엄마의 태도를 딸아이는 몹시 안타까워했었다. 여고생일 때,
“엄마는 왜 그래? 엄마 나이 또래 우리학교 선생님들은 D메이커 옷을 입는데 그게 보기 좋더라.”
그러면서 엄마가 그리 못하는 것이 마치 자기 잘못이기라도 하는 양
“엄마, 이담에 내가 돈 벌면 비싼 옷 꼭 사 주께 잉!!”
하면서 애교를 부리더니, 그 약속을 잊지 않았던 모양이다. 선물을 받아들고 보니 이 딸을 키우면서 누렸던 행복한 추억들이 스쳐갔다. 부모와 자식은 전생에서 수많은 겁을 겪으면서 맺은 인연이 모여야 이루어진다는데 이 딸에게 나는 전생에서 무엇을 주었기에 이승에서 모녀간이 되어 자식 키우는 복을 이리 누릴까.
고슴도치도 제 새끼의 털은 부드럽다고 한다던가. 나 또한 이 딸을 키우는 동안에 자식 자랑을 하고 싶을 때가 참 많았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속담을 실감하면서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악업을 쌓는 일인 줄 알면서도 눈치 없이 행동했던 적도 있었으리라.
딸이 고등학교 3학년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하루 휴업했던 날의 일이다. 전날 속이 꽉 찬 배추 몇 통을 사다가 뒤 베란다에 두고 출근을 했다. 퇴근해 보니 그 배추에 통깨까지 솔솔 뿌려져 보기엔 아주 그럴 듯한 김치가 되어 김치 통에 얌전히 담겨져 있는 게 아닌가. 대신 딸은 절인 배추가 되어 있었다. 할 일 없이 하루 종일 빈둥대느니, 환절기만 되면 힘들어하는 엄마를 돕고 싶었다고 했다. 인터넷을 뒤지고,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엄마의 조언을 들어 김치를 담갔다는 것이다. 전업 주부라도 배추김치를 담그는 것은 도전하기 어려운 요리다. 배추김치를 맛깔스럽게 담글 수 있을 정도면 주부로서 요리 수업이 거의 다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요리라고는 전기밥솥에 밥 짓는 일 말고는 별로 해 본 게 없는 여고 졸업반 처녀가 그 일을 해보려고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그 김치는 익혀서 찌개로 끓여 먹었지만, 딸 친구 엄마는 지금도 만나면 그 사건을 말하면서 딸의 그 마음을 기특하게 여긴다고 한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한다. 말 배우기 시작할 무렵의 딸은 유난히 먹는 걸 좋아하고 먹는 것에 대한 욕심도 많은 아이였다. 그런데도 먹을 것을 주면 아이답게 일단 저부터 한 입 먹고 나서는, ‘엄마도 먹어’ 하면서 내 입에도 넣어주곤 했었다. 어린 것이 ‘내가 먹으면 엄마도 먹고 싶을 것’이라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게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졌었다. 그런 습관이 그대로 남아 있었는지 대학 다닐 때는 용돈이 늘 부족하다고 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못 참고, 또 자취를 하거나 기숙사에 있는 친구들도 먹여야 하니까 먹는데 드는 돈이 많이 들었다. 그럴 때 나는 ‘너는 엥겔지수가 너무 높은 후진국 형 국민‘이라고 놀리면서도 가끔 통장에 보너스를 넣어 주곤 했었다.
얼마 전 TV특집 프로그램에서 사람 사는 집 베란다에서 태어난 황조롱이 새끼가 자라서 세상으로 날아가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난다. 베란다 난간에 서서 세상을 향하여 날아가려고 첫발을 떼어 놓는 장면이었다. 두 발로 난간에 서서 발을 뗄까 말까 날개를 파닥거리며 조바심치는 모습이 지켜보는 사람조차 초조하게 만들더니 어느 순간 난간에서 두 발을 떼고는 창공을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다. 그 장면과 딸의 세상살이 시작이 오버랩 되었다. 그렇게 나간 어린 새는 덜 여문 날개 근육에 너무 힘을 주어 움직이다가 근육통을 앓기도 할 것이고, 투명한 유리창에 머리를 박기도 할 것이다. 모든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두렵고 낯설게 느껴질까. 그러나 그 곳이 어디든 사람 사는 세상일 것이고. 내 딸이 지니고 있는 그 따뜻한 지혜를 나누어 주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엄마에게 감동을 주는 딸인 것처럼 세상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주고, 그리하여 자신도 행복을 느끼면서 잘 살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옷 입고 거울 앞에서 서성이며 좋아하는 내게 딸이 한마디 했다.
“엄마, 남자친구들이랑 운동갈 때만 입어. 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