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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세명
ㆍ작성일	2009-08-19 (수)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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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연줄
끊어진 연(鳶)줄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세명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연싸움에서 졌다. 어릴때, 끊어져 가물가물 산 너머로 사라져 간 연(鳶)을 보았다. 방패연과 실에 유리가루와 아교를 먹여 얼레에 감아 공을 들였건만 실이 끊어져 버렸다. 해는 저서 어두운데 연을 찾지 못하고 돌아온 날, 나는 심한 열로 꼬박 이틀을 앓았다.

남은 실을 얼레에 되감듯이 수 없이 꿈을 먼 하늘에 날려보낸 뒤, 허전한 마음을 지울 수 없어 어쉬워 하며 살아온 것이 나의 생이 아닌가 싶다. 줄이 끊어져 아득히 사라진 연 모습은 언제나 돌아오지 않는 꿈으로 빈 하늘에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뒤에는 손수 연을 띄워 보지 못했다. 아니 띄우지 않았다. 어린 시절엔 남이 띄우는 연을 처다보고 아쉬워하며 보내고 말았다. 언제인가 의젓한 나의 연을 소망의 실에 달아 멀리 실어 보내리라 벼르다 보니 나는 어느새 이순을 넘겼다.

이성을 알 사춘기에 이웃 소녀에게 처음으로 느꼈던 연정도 연처럼 멀리 날아가 버렸다. 간혹 길에서 마주치는 소녀에게 짐짓 내 마음을 외면하면서 의젓한 걸음걸이로 지나치기 일쑤였지만 연신 콩당거리며 후들거리는 가슴과 달아오르는 얼굴을 느꼈지만 아무런 말도 못했다.

가장 궁금한 것이 소녀의 마음이었고, 두려운 것은 나의 마음을 소녀가 눈치 채는 일이었다.그러면서 내 마음을 숨긴 채 은근히 내 몸매를 과시하기도 했다. 내성적인 성격 탓으로 꿈과 현실과, 사람과 사람 사이가 왜 이다지도 먼가 막연하게 생각하였다.

남이 띄우는 연처럼 멀고 아득히 바라보며 그리워하는 동안 소녀는 내 앞에서 영영 떠나고 말았다. 너무나 순진하고 용기없는 나를 한 없이 미워하며 무주읍 남대천 모랫톱에 누워서 빈 하늘만 처다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었다.

떠나보낸 연에 미련을 두고 막연이 공군생활을 하는동안 한 번 끊어진 연은 되찾지 못하고 이내 거친 숨만 몰아 쉬며 청춘을 보내고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동안 나는 이대로 초부(椒夫)가 되었다. 사는 것이 끊어진 연줄처럼 허망한 가운데 좌절하면서 살아 왔다.

나는 지금도 가끔 연을 날리는 꿈을 꾼다. 그리고 줄이 끊어진 채 산너머로 사라지는 연의 먼 모습을 보게 된다. 꿈을 깨면 언제나 마음이 허전하다. 내 생의 소망이 사라진다. 그리고 가끔은 소녀의 꿈도 꾼다. 소녀와 손을 잡고 산길을 다정히 걸으면서 즐거워 하다가 만일 내가 그 소녀와 결혼을 했다면 내 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끊어진 연줄을 겪은 후 수 많은 인연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내 마음도 무디어져 생자필멸(生者必滅)도 배웠고 회자정리(會者定離)도 알았다. 나에게서 아주 떠나버린 것들은 그래서 모두가 아름답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 고스란히 아쉬움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억은 아름다운 것인가 보다.

내가 처음 띄운 연줄이 끊어지지 않았던들 그것은 나의 기억속의 물체에 불과하다. 연줄의 끊어지는 아픔을 알았기에 나는 성숙해 질 수 있었고, 만남의 즐거움과 헤어짐의 아픔도 배웠기에 끊어진 연줄은 추억이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

(2009.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