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가 좋아서 서너 번 다녀온 곳이지만, 가 본 지가 십년이 넘은 듯하였다. 숲정이성당 요셉회가 노인들의 봄나들이로 거제 해금강과 외도를 간다기에 우리부부도 함께 가기로 하였다. 특히 외도는 큰 태풍(나리)으로 볼거리가 파괴 되었다가, 망가진 시설들을 잘 복구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더 가보고 싶었다.
작년 가을부터 긴 가뭄이 계속되어 몹시 비를 기다리지만, 오늘만은 맑은 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러나 일기예보대로 곧 비가 내릴 것 같은 하늘이었다. 은근히 못 간다는 연락이 있기를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어, 아내와 함께 차가 출발한다는 곳으로 갔다.
이번 여행을 추진하는 총무가 회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승차하였는지 일정에 맞추어 곧 출발하였다. 도로변에는 연초록의 가로수들과 봄꽃들이 한창이었다. 활짝 핀 흰색과 연분홍, 붉은 색 철쭉들이 어우러진 화단이 눈길을 끌었다. 고속도로 주변 산기슭에는 초록 잎에 흰 꽃으로 단장한 조팝나무들이, 곳곳에서 무더기로 봄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산청휴게소를 지나자 어젯밤 비가 왔는지 논과 밭이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진주호 상류를 지날 무렵 총무가 마이크를 잡더니, 9시를 기하여 배의 출항(出港)이 금지된다고 하였다. 이어 고성의 공룡 박물관과 남해의 다랑이 마을을 다녀오자고 하여 모두 박수로 동의하였다. 삼천포항에서 푸짐한 생선회와 술을 마시면서 점심식사를 하고 나와, 잔잔한 바다를 보면서 일기예보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밟아 본 적이 없는 고성(固城)땅이었다. 마침 이곳 상족암군립공원에 있는 공룡(恐龍)박물관에서 ‘2009경남고성공룡세계엑스포’ 행사(2009.3.27~6.3)가 열리고 있었다. 산꼭대기에 있는 박물관은 산기슭을 절개하여 만든 주차장에서 하차하여 가야 했다. 절개한 곳은 시멘트 옹벽(擁壁)과 층을 만들고, 그곳에 꽃 잔디가 활짝 피어 보기 좋았다. 옹벽을 따라 나무판으로 만든 길로 올라가다, 경사가 심한 곳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편안하게 박물관으로 들어섰다. 발아래 한려수도(閑麗水道)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고, 외부 시설과 조경이 잘 꾸며져 있었다. 관람 안내에 따라 1~5전시장을 돌아보며 지구역사를 눈으로 읽으며 돌아 나왔다.
공룡공원을 지나 상족암으로 내려갔다. 푸른 바닷물이 일렁이는 넓은 암반에 기암절벽과 계곡이 만들어져 자연경관이 아주 뛰어났다. 산 전면이 층층단애(層層斷崖)로 되어있고, 암벽 깊숙이 동서로 바위굴이 뚫어져 있었다. 밥상다리 모양으로 쌓인 바위라 하여 상족암(床足巖)이란다. 바닷물의 용해작용으로 퇴적암층을 높고 낮게, 넓고 좁게. 구부러지게 굴을 뚫어 놓은 것이 특징이었다. 자연이 만들어 낸 빼어나고 잘 만들어진 기묘(奇妙)하게 생긴 퇴적암 바위들이 많았다. 수억 년 전 살았던 생물들의 몸과 혼이 얽혀있고, 바다이야기들이 쌓여 있었다. 우리 고장 변산반도 채석강도 바닷물의 퇴적과 융기, 침식작용으로 생긴 층인데 조성연대가 궁금했다.
해안을 따라 설치된 판자다리로 만든 긴 탐방로를 따라 가면서, 공룡과 새발자국 화석을 관찰하며 화석의 생성과정을 공부하였다. 굵은 바위들이 쌓인 역암 층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굵은 나무들이 심은 것처럼 띄엄띄엄 연초록 잎을 내고 있어 보기 좋았다. 그 생명력에 놀랐다. 바닷가 경남청소년수련원의 운동장 앞에는 맑고 잔잔한 푸른 물결이 고운 모래알들을 어루만지며 속삭이고 있었다.
남해는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이지만 하동과 남해를 연결한 남해대교(1973년)의 개통으로 육지화 된 곳이다. 삼천포항에서 삼천포대교를 지나 남해로 들어갔다. 이 다리는 경남 사천시와 남해군 사이 모개도, 초양도, 늑도, 창선도 등 4개의 섬을 연결하는 5개의 다리(삼천대교, 초양대교, 늑도대교, 창선대교, 당항교)를 일컫는 이름이다. 총 길이는 3.4km로 1995년에 착공하여 2003년 4월에 개통하였으며 다리의 모양이 각각 달라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2006년)에서 대상(大賞)을 받은 길이었다.
남해가 육지화 된 뒤에 네댓 번 다녀왔지만 다랑이마을은 처음이었다. 설흔산(481m)과 용봉산(412m)이 바다로 내달리는 급경사지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마을이었다. 45도 이상의 비탈에 석축을 쌓아 108층이 넘는 계단식 논을 일구어 산자락을 따라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우리 조상들의 억척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마을은 끝없는 바다가 바로 눈앞이지만, 물살이 세고 연중 강한 바람이 불어 배를 댈 수 있는 선착장을 만들 수가 없다. 고깃배가 한 척도 없으니 경제적으로 어려워 농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동네 고샅길을 따라 해안가로 내려가는데 ‘암수바위’가 있었다. 일명 미륵바위라고도 하는데 수 바위는 남근을 빼닮고, 암 바위는 임신한 어머니의 형상으로 누워있었다. 민속신앙이 살아 숨 쉬는 자리였다. 전국에서 가장 잘 생긴 바위라선지 눈길이 자꾸만 갔다. 바닷물이 철석거리는 해안가의 절경도 뛰어나, 드라이브 길로 잘 만들어져 있어 걷고 싶은 길이었다.
오늘 날씨 탓에 생각지도 않은 고성 바닷가의 공룡박물관과 공룡발자국의 화석, 남해의 마을도 처음 보았다. 돌아본 길에는 긴긴 세월, 지구의 역사가 층을 만들어 놓은 퇴적암과, 암반층에 남긴 화석을 처음 본 곳이라 오래 기억될 것 같았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했던가? 오늘은 일기예보 때문에 코스가 바뀐 게 오히려 더 좋은 여행이 되어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2009. 4. 24.)
공지사항
문화 류씨 이야기
운조루 11대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