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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재훈
ㆍ작성일	2009-05-03 (일)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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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 길
천변 길
김재훈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불가에서는 인생을 구름 한 점 피었다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세상에 와서 내가 만난 사람들, 절친한 친구들이 홀연히 떠나가는데도 세상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는 것을 보면 공감이 가기도 한다. 그래, 삶이란 무에서 유를 거쳐 무로 다시 돌아가는 세상 나들이 같은 것일까.
얼마 전 병을 앓고 나서 건강을 위해 요즘 천변 걷기를 자주한다. 사람이 걷기 좋게 만든 천변 길. 길옆에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은 깊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라 맑게 흐른다.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물살에 맞춰 발걸음이 상쾌해진다. 주로 해넘이 시간대에 걷다보니 저녁햇살이 물위에 보석처럼 빛난다.
늦은 시간이라 걷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부부끼리 한담하며 걷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이를 데리고 나온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달리기 하듯이 부지런히 걷는다. 젊은이들은 자전거로 쌩쌩 달리기도 한다. 나름대로 저녁 시간을 여유롭고 유용하게 즐기는 모습이다.
길가 풀숲 속에는 야생화들이 많다. 그 중에는 앉은뱅이 꽃도 있고 키 큰 코스모스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꽃들의 색깔도 흰 꽃, 분홍 꽃, 자주 꽃 등, 각양각색으로 마치 “저, 여기 있어요.”하며 눈길이라도 한번 보내주길 바라는 것 같다. 그렇게 어울려 있는 모습이 정겹다. 게다가 풀숲은 갖가지 풀벌레 울음소리로 가득하다.
물은 유유히 흐르다가 한바탕 소용돌이를 치기도 한다. 유속이 완만하던 물이 폭이 좁은 곳을 만나면 소용돌이를 치는 것이 사람 마음을 보는 것 같다. 사람 마음도 좁아질 때는 그러하지 않던가. 물은 길 따라 구불구불 흐르다가 갈라지고 합쳐지며 잠시도 쉬지 않고 앞으로 흘러간다. 그 모습이 우리네 인생을 닮았다. 큰 돌 틈 사이에선 하얀 포말이 길게 나부낀다. 부대낀 여운이 오래간다는 말이다. 대지를 적셔주는 물줄기가 마치 몸속을 흐르는 혈관 같다. 하류로 내려갈수록 물은 처음 보다 점점 탁해진다. 도심을 통과하면서 오수가 많이 흘러드는가 보다.
얼마쯤 왔을까. 어디서 역한 냄새가 났다. 둘러보니 옆에 고여 있는 물이 있다. 바닥은 거의 말라 있고 그 위에 풀숲만 무성하다. 왜 물이 여기에 고여 있을까. 죽은 물, 갑자기 혈관을 흐르던 혈액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혈액도 멈춰버리면 이렇게 되는 것일까. 얼마 전 병이 재발하여 입원했던 것도 뇌 속에 있는 피의 흐름이 원활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입원실에 있을 때 옆자리 환자는 출근길에 뇌경색으로 쓰러졌다는데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었다. 내일 일을 모르는 오늘의 삶이다. 생각 같아선 얼른 웅덩이를 이룬 모서리를 파내 물길을 시원스럽게 터주고 싶다.
물은 더 이상 내 곁에 머물지 않고 먼 길로 빠져나간다. 이제 시끄러운 도심을 통과해 큰 강과 합쳐지며 대해로 흘러가리라. 이쯤에서 돌아가야 하리란 생각을 한다. 천변 길은 물길이나 인생행로와는 달리 상류로 다시 돌아갈 수 있어 좋다.
생의 흔적은 어떤 형태로 언제까지 남아있는 것일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천변가의 풀숲은 이제 곧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내년이면 다시 번성할 것이며 꽃도 곱게 피어나리라. 개체는 바뀌나 전체는 변함없는 상시의 모습, 사람의 삶 역시 그러하리라. 그 순환의 수레바퀴 속에 한 때의 삶으로 온 나, 그 그림자가 오늘도 저녁햇살을 받으며 천변 길에 길게 드리운다. 문득 바라본 텅 빈 하늘에 구름 한 점이 새털같이 떠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