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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서상옥
ㆍ작성일	2009-05-02 (토)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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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나와 흙으로 가는 인생
흙에서 나와 흙으로 가는 인생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서상옥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연둣빛 산발치가 날로 푸르러가는 계곡을 오르니 연분홍빛 진달래가 화사하게 반겨 주는 백운산 등성이에 올랐다.

오래전부터 선산일 때문에 신경을 써 오던 터라 올해에는 한식날 5대 선조부터 가까운 종산의 공원묘지에 모시기로 했다. 집안 종사에는 대부분 나이가 많으신 일가친척들이 맡아 왔지만 그 중에서도 종손인 나는 매우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다.

고려 초기 외교가요 장군으로서 993년(성종12년)에 거란군의 침입을 외교담판으로 물리쳐온 지혜로운 용장, 서희 장군의 후예인 우리는 어느 집안보다 가문에 대한 관심과 긍지가 높다.

지리산 줄기로 이어온 전남 광양 백운산은 그 이름만큼이나 웅장하고 아름답다. 이른 봄날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알려진 건강수액 고로쇠 물 생산지로 유명하다. 해마다 제철이 오면 고로쇠나무에서 나오는 약수를 마시려고 관광객들이 그야말로 구름떼처럼 모여든다.

바로 이 산하에 터를 잡아 수백 년의 역사를 이어온 게 우리 서 씨 집안이다. 광양시 옥룡면 입구에 문화재처럼 세워진 서씨(徐氏)제각은 가히 집안의 위력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봄에는 선산일 때문에 모두 바쁘다. 그리고 가을이면 조상들의 시제를 모시노라 온 종손들이 모두 동원된다.

조부님께서는 한학자이셨는데 김제에 있는 친척의 알선으로 후학을 양성하고자 김제로 오신 것이 인연이 되어 나는 전북사람으로 태어났다. 학창시절이나 젊은 날에는 선산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고향에 일가친척들이 있어 그분들이 선영을 잘 관리해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어른들이 거의 다 세상을 떠나셨다. 남은 후손 중에는 내가 유일한 종손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고희를 넘어 희수를 바라보는 나로서는 사회적인 활동보다 대대로 이어오는 조상들의 얼이나 가문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나이가 들면 선조들을 위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하던 옛 어른들의 말씀이 떠오른다.

십여 년 전 일이다 .어머님께서 생전에 유언처럼 가까운 곳에 선산을 마련하여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조상들의 선영을 한곳에 모셔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혀있는 고향에 적당한 산을 구입해 두었다가 어머님께서 소천하셨을 때 먼저 가신 조부모님과 아버님 산소까지 모두 이장해서 가족묘를 만들고 수목을 심어 공원처럼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3년 전부터 부모님 옛 고향에서 선산을 관리해 주시던 노인이 이제는 자기도 늙었으니 가까운 곳으로 모셔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200년 가까이 되는 고조부와 증조부 내외분을 종산 공원묘지에 모시기로 했다.
마침 올해에는 운대가 맞는다고 해서 한식을 전후로 일을 잘 마무리하였다. 이곳 공원묘지에는 이미 이장에 필요한 준비를 다 해놓고 새벽잠을 설친 채 멀리 백운산 고인들이 묻혀있는 선산을 찾았다. 다소 예상은 했으나 평장에 가까운 묘를 상당이 깊이 파헤쳐도 유골은 삭아 없고 하얀 나무토막 같은 유골 몇 개만 남아 흙과 함께 한지에 싸서 모셔왔다. 참으로 허망하였다. 인생의 허무를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하느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마지막에 흙으로 당신의 모습을 빚어놓고 혼을 불어넣어 인간을 창조했다고 했다. 혼이 육신에서 날아가면 흙으로 남는다던가. 인간은 결국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체험하였다.

우리도 머지않아 운명이 바뀌겠지……! 남은 인생이나마 착하고 바르게 살면서 보람 있는 업적을 남겨 후손들에게 본을 보여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9.4.8.)